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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만난 괴물들 시즌 2 - 7화

괴물은 왜 늘 바쁜가

by 초연

그 사람은 항상 바빴다.
회의 사이를 뛰어다녔고,
전화는 끊이지 않았고,
메신저 알림은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말투를 이해해 주었다.
그의 무례함을 넘어갔다.
그의 생략을 합리화했다.

“요즘 너무 바쁘시잖아.”
“원래 저 정도 위치면 그럴 수 있지.”

바쁨은
설명보다 빠르게
사람의 태도에 면죄부를 준다.


그가 날카롭게 말해도
사람들은 이렇게 정리했다.

‘지금 상황이 급해서 그랬겠지.’
‘악의는 없었을 거야.’

그가 약속을 어겨도
이렇게 말했다.

“일이 워낙 많아서 어쩔 수 없었어.”

그리고 그 말은
대부분의 질문을 끝내버렸다.

바쁨은
가장 효율적인 방패다.


괴물은
바쁨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성과 중심의 구조를 이용한다.

일정은 늘 촉박하고

목표는 계속 올라가고

인력은 늘 부족하다


이 구조 안에서
늘 바쁜 사람은
능력자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말은
곧잘 통과된다.

“지금 그럴 여유 없어.”
“나중에 보자.”
“일단 이렇게 가자.”

‘일단’은
결론이 되고,
‘나중’은 오지 않는다.


문제는
바쁨이 지속될수록
사람의 태도도 함께 굳어진다는 점이다.

그는
설명하지 않게 되고,
경청하지 않게 되고,
기다리지 않게 된다.

그런데도
아무도 쉽게 문제 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늘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성과는
사람의 오점을 가린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묻히기 쉽다.


나는 예전에
그 사람의 바쁨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착각했다.

‘저 사람은 정말 일에 몰입한 거야.’
‘나도 저 정도는 이해해야지.’

그래서 나는
기다렸고,
맞췄고,
조정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상해졌다.

그의 바쁨은
줄어들지 않았고,
나의 부담만 늘어갔다.

그는 여전히 바빴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바쁨이 진짜 문제라면
누군가는 멈춰야 한다.
누군가는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괴물의 바쁨은
조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바쁨 자체가
권력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항상 바쁜 사람은
항상 중요한 사람처럼 보인다.
항상 급한 사람은
항상 우선권을 가진다.

그렇게 바쁨은
서열이 된다.


나는 이제
이 질문을 던진다.

“이 바쁨은
일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인가.”

설명할 시간은 없지만
지시할 시간은 있는 사람.

경청할 여유는 없지만
평가할 여유는 있는 사람.

이 조합이 보이면
나는 한 걸음 물러선다.


바쁜 사람은 많다.
하지만
바쁨으로 사람을 밀어내는 건
업무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관계 방식에 문제가 있어서다.

성과는
사람을 증명하지 않는다.
사람을 드러낼 뿐이다. 괴물은 왜 늘 바쁜가.
그 바쁨 덕분에
아무도
그의 방식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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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전략기획 팀장. 일과 관계, 조직과 권력, 기다림과 선택 사이에서 사람이 흔들리는 순간을 오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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