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렌 키르케고르, 덴마크의 한 구석진 골목에서 세상과 어긋난 채 사유하던 한 사내. 철학자이면서도 그는 시인이었고 신학자이면서도 고백자였다. 그는 철학을 논리로 말하지 않았다. 그의 문장은 흐릿한 안갯속을 걷는 새벽 산책처럼 조심스럽고 때로는 예리한 바람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는 신 앞에서 홀로 선 인간의 고독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자기모순을, 그리고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존재의 심연을 노래했다. 삶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결단'과 '신앙'을 통해 건너야 할 깊은 강이라 믿었다.
그는 젊은 날 레기네 올센이라는 여인을 사랑했다. 맑은 눈동자와 따뜻한 손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그녀에게서 도망쳤다. 아니, 스스로 떠났다. 이유는 하나. 자신이 가진 내면의 심연과 고뇌, 그리고 신 앞에서 느끼는 불안의 무게를 그녀에게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별 편지를 쓰고, 그 편지로부터 평생을 글로 속죄했다. <공포와 전율>은 그 고백 중 하나다. 사랑했으나 떠나야 했고, 믿었으나 의심해야 했던 복잡한 심경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쳐야 했던 불가해한 순간과 겹쳐진다. 신앙이란 이해가 아닌 결단임을, 사랑이란 소유가 아닌 떠남임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공포와 전율>은 키르케고르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문학적이며, 가장 신학적인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성경의 아브라함 이야기를 다시 불러낸다.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어떤 논리나 도덕도 설명해 줄 수 없는 그 ‘불합리의 순간’을 파고든다.
“믿음은 이성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더 높은 차원의 이성으로의 도약이다.”
— <공포와 전율> 중
이 책은 종교적 신앙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불안’의 본질, ‘결단’의 두려움, 그리고 ‘도약’의 절망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들 앞에서 느끼는 망설임, 그것이 책의 주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망설이고, 의심하고, 주저한다. 선택 앞에서, 타인 앞에서, 무엇보다 자기 자신 앞에서. 키르케고르는 말한다. 망설임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 증거라고. 불안은 도망쳐야 할 괴물이 아니라, 도약하기 직전의 떨림이며, 인간이 신 앞에 선 존재라는 표식이라고.
<공포와 전율>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진정한 믿음이란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사랑하는 것이다. 설명되지 않아도, 끝까지 붙잡는 것이다.”
우리는 이해하려고 애쓰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사랑도, 신도, 때론 자기 자신조차도. 그런 불확실함 속에서 ‘결단’한다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행동이다.
결국 <공포와 전율>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떠나야 했던 그날,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끝없이 망설였던 수많은 밤들,
그리고 이유 없는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걸음을 내디뎠던 아침.
키르케고르는 말없이 그런 우리를 껴안아준다.
“불안하다는 건, 당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다.”
Hen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