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일리아스>

by Henry




그는 눈을 보지 못했지만 세상의 진실을 꿰뚫어 보았다.

호메로스. 바람처럼 사라지는 전설 속에 그가 정말 존재했는지조차 확실치 않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 지금 우리의 가슴에도 파문을 남긴다.


그는 시인이자 이야기꾼이었고 동시에 인간 존재의 비극과 영광을 가장 아름답게 읊은 노래꾼이었다. 검은 파도 위를 떠도는 배처럼 그의 문장은 단단한 땅을 딛지 않고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닿는다. 그는 눈이 아닌, 영혼으로 보았다. 그리고 써 내려갔다. 인간의 싸움, 신의 간섭, 죽음의 그림자, 그리고 그 안에 숨은 고요한 사랑과 슬픔을.


사람들은 말한다. 호메로스는 시각장애를 지닌 채 에게해를 떠돌며 자신의 시를 낭송했다고. 그는 도시마다 불려 다니며 악사를 따라 시를 읊조렸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한다. 그가 떠돌았던 것은 지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었음을. 전장에서 아들의 죽음을 안고 오열하던 프리아모스 왕의 마음, 죽음을 앞두고 친구를 그리워하던 아킬레우스의 고통,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 인간의 진짜 이야기였다.


호메로스는 이야기의 파편을 가슴에 품고, 눈 대신 영혼으로 써 내려갔다. 전쟁의 소리 속에서도 인간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던 사람. 그가 전하려던 것은, 어쩌면 단 하나. ‘신보다 강한 것은 인간의 슬픔’이라는 진실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

한가운데, 인간의 분노와 자존심, 그리고 죽음을 담아낸다.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된 이야기. 분노는 싸움이 아니라, 상실과 배신 그리고 내면의 균열을 상징한다.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재앙이 되었도다.”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서사는,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고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신화를 이야기하지만, 신화에 머물지 않는다. 전쟁터의 먼지와 피, 울부짖는 어머니와 쓰러지는 병사의 체온까지, 모두 살아 숨 쉬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 안에 우리는 스스로를 본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등을 돌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서야 울며 무릎 꿇는 인간의 연약함을.


<일리아스>는 먼 옛날의 전쟁 이야기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분노하며, 여전히 싸우며, 여전히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사랑을 깨닫는다.


호메로스는 묻는다.

“무엇이 인간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힘이 아니라, 슬픔을 견디는 용기. 신의 개입이 아니라, 자기 안의 상처를 직면하는 진실. 그리고 그는 속삭인다.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전장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우리도 전쟁터를 살아간다. 감정의 충돌, 이기심과 양보의 갈림길, 사소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침묵의 싸움.

그럴 때 <일리아스>는 우리에게 말한다. 진짜 영웅은, 분노 속에서 멈추고, 상실 앞에서 울 줄 아는 사람이라고. 그것이야말로, 신보다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라고.


Henry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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