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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C May 14. 2022

내가 사랑했던 문인, 마광수

#문학인 #소설가 #시인 #대학교수

“마광수는 꼭 재평가되어야 해!”


나는 오랜 시간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지인들과 긴 밤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을 터놓는 자리에서는 종종 이 말을 꺼낸다. 문학서를 단 몇 권이라도 읽어본 삶을 살고 있는 지인들에 한해서 말이다. 참고로 나는 광마 선생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진정으로 애정하게 되었다.


광마(狂馬)란 아호로 널리 알려진 마광수는 수년간 내가 시와 소설을 쓰는데 정서적으로 영향을 지대하게 미친 인물이다. 마광수는 야설을 쓰다 투옥되고 연세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직된 이력이 있는 천재성은 있으나 삼류 변태 작가로 국내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마저도 얼마간 함께 동시대를 살아간 이들에 한해서이다. 더구나 2017년 9월 5일 그가 타계한 이후로는 그가 누구였는지 알려질 기회조차 더욱 없어진 듯하다. 능동적인 서칭(searching) 기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마광수는 한국 현대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몹시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그를 떳떳하게 생각하지도 드러내야 하는 인물로 다루지도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와 그의 작품들은 뭔가 은밀히 즐겨야 하고 밖으로 드러내기에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하는 대상일 뿐이다, 아직까지의 한국 사회에서는 말이다.


마광수의 대표작들을 읽어본 이들은 국내에 꽤나 존재한다. 그리고 마광수란 이름 석자를 모르는 기성세대 역시 드물다. 그의 문제적(?) 대표작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와 「즐거운 사라(1991)」가 성인들 사이에서 유명 포르노그라피, 일종의 야설로 많이 읽혔던 이유, 그리고 그 저자가 ‘음란문서 제조-반포(대상서: 즐거운 사라)’란 억지 혐의로 1992년 10월 29일 구속되었던 문학인이자, 국내 상위 3대 종합대학교 중 하나인 연세대학교의 종신직 교수였던 이유가 그 상황에 큰 몫을 한다. 나 개인 적으로 정말 안타까운 점은 다만 거기까지라는 것이다.


마광수는 천재성을 가졌던 비운의 문학인이자, 사회계몽을 절절히 외쳤던 사상가이자, 그리움과 음울함에 사무친 아들이었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어느 누구보다 자신에게 있어 솔직한 사람이었다. 마광수의 삶은 사실 그의 작품들에 많이 사용된 표현 ‘변태적, 음험함, 쾌락’ 등과 다소 거리가 있다. 문학적 도구이자 매체로서 성(sex)을 누구보다 한국 사회에서 자유롭게 또 많이 사용했던 작가였지만, 그의 작품들 본질을 곱씹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문학을 사회 또는 개인의 감정적 배설이라 하지 않았던가. 뜬금없는 듯 하지만, 그렇다면 마광수의 언어(작품)는 ‘문학의 기능(감정적 배설)-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사회/문화심리학’과 관계적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2016년 맨부커상 수상작이 된 후 나는 그 책을 며칠 안 되어 서점에서 구매해 읽었다. 한강의 그 책을 완독 하는데 이틀 정도 소요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몰입도가 높아 책 속 이야기에 빨려 들면서 책을 읽어 나갔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야기를 통해 전달받는 감정적 불편함 그리고 그 작품이 한국 문학계(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던 영향력에 대한 거북함(?)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마광수의 대표작 중 하나를 함께 읽어보라 권한다.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그 두 작가를 다르게 평가하게 만드는 가를 고민해보라는 숙제와 함께 말이다.     




“한국 사회는 차별과 편견이 강하다!”


이것은 내가 내 나라 대한민국에 대하여 평가하는 바이다. 분명 이전 시대보다는 많은 부분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되었고, 그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다만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많이 남았다. 관습적인 것이든, 인습적인 것이든, 새로이 받아들여진 것이든 간에 우리 사회 곳곳에는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존엄성 등을 위협하는 차별과 편견이 뿌리내려 있다. 한민족이란 강한 민족적 정체성이 대한민국이란 국민 정체성과 동일하게 여겨지는 것 역시 내가 문제시하는 여러 것들 중 하나이다. 나의 이 같은 생각과 주장에 많은 이들이 강한 거부감과 반발심을 가질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나 같은 ‘듣보잡’은 다수에게 나의 생각과 주장이 말로서 진중하게 전달될 기회조차 얻지 못 할런지도 모른다.


마광수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과 편견의 희생양으로서 비운의 삶을 살았다. 다만, 마광수는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솔직했고 당당했으며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이 같이 일관성을 잃지 않던 그의 삶의 모습은 지금도 내가 여전히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비록 이름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나, 나 역시 글을 쓰고 출판사의 도움을 받는 경우에는 출간도 간간이 하는 자인지라 출판업계 몇몇 관계자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기회가 간혹 있다.


일전에 내가 저술한 몇 권의 책을 직접 출간해준 출판사 대표와 점심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그 점심식사는 마광수 선생이 작고한 후 얼마 안 된 시점에 가졌는데, 내가 그의 유작을 읽고 있다는 말을 꺼내면서 그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내 뇌리에 깊게 각인된 그 당시 대화 중 말은 “마광수가 만일 국내 명문대학교인 연세대학교 종신교수가 아니었다면 그의 삶이 어떠했을까? 아마 그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작가로서 다른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즉, 그 출판사 대표의 말은 한국 사회에서 명문대학교의 종신교수로서 가지는 지위와 체면, 사회적 금기 같은 것들이 있는데 마광수는 그것들을 무시한다고 여겨질 수 있는 작품들을 내놓았기에 주류사회의 공격을 받아 철저하게 따돌림받고 매장을 당했다는 의미였다.


마광수의 몇 안 되는 학술에세이 저서 중에는 이러한 고백이 있다. “지인 몇몇이 나에게 성에 대한 책을 이렇게 고상한 언어로 학술적으로 쓰면 문단이나 학계에서 공격도 안 받으면서 좋은 평가도 받고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기기만과 사회적 위선을 동료 교수들처럼 못했던 그는 감추거나 속이거나 포장하지 않았다는 죄를 가진 죄인이었다. 그리고 그 죄는 아직 우리 사회에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진보를 가치로 삼는 정치인, 교육자, 사회운동가 등 상당수는 벤치마크 대상으로서 독일을 자주 언급한다. 지금의 독일 사회는 프랑스로부터 시작된 68운동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그 운동이 지향한 이데올로기는 사회 저변에까지 자리하고 있다. 68운동은 사회·정치·문화적으로 다양하게 표출되었으나 나 개인적으로 이 운동의 핵심가치는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이 가치들은 68운동 이전에도 자유민주진영의 국가들에서 국가체체로 채택된 것들이었으나, 만민의 평등이 전제된 인간 존엄과 그들에 의한 민주주의는 분명 현상적으로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독일은 깨어 있는 시민 양성을 위해 성(sex)과 생태주의, 정치참여를 커리큘럼으로 학교 교육에 포함하고 있다. 이들 중 우선하는 것은 섹스이다. 섹스가 자기 주도성과 책임감을 수반하고 양성화된 사회문화로서 자리를 잡으면 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독일의 68운동 주체들은 알고 있었다. 실제로 섹스는 생명 탄생의 근간인 자기 결정적 행위이며, 타인(사회)에게서 강제되거나 침해되어서는 결코 안 되는 사적 영역임과 동시에 존중되어야만 하는 영역이다.


섹스가 그 자체로서 존중되고, 개인 책임 하에 자기 주도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는 자연스럽게 모든 인간에 대한 존엄과 경의를 가지게 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개인들이 능동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끔 장려 및 독려를 하며 종국에는 자연에 대한 존엄으로 이념을 확장하게 된다. 미국의 히피(Hippie) 문화를 떠올리면 이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쉬울 수 있다.     




독일은 현재 인권 보장과 사회 저변으로의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사회로 소개된다. 독일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몇몇 크고 작은 사회문제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이룬 국가임에는 반론의 여지가 크지 않다. 이러한 사회 근간에는 섹스에 대한 솔직함과 표현, 존중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주의 세력은 독일을 수없이 언급하면서도 섹스에 대해서만큼은 인색하다. 인색하다 못해 몹시 위선적이고 자기기만적이다. 나는 그래서 한국에 진보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마광수를 여전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이러한 한국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 같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한 진보주의자이자 문학이란 수단으로 사회계몽을 지속했던 계몽운동가이었다. 시대의 무지로부터 탄압받았던 지성이기도 했다. 마광수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성해방 및 쾌락주의 계몽에 대한 확고한 신념 이면에 얼마나 외로움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는지 느낄 수 있다.     


한국 문학계가 천재적 시인이었다 평을 아끼지 않는 ‘오감도’의 이상이 살아생전 차렸던 다방‘69’, 성행위를 상징하는 기호로서 이 다방 상호의 기발함에 대해 다시 한번 많은 이들이 찬탄한다. 소설가 한강의 2016년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가 다루는 주인공들의 정신병적이고 반사회적 행동으로서 신랄한 성행위 묘사 역시 많은 이들이 매우 수준 높은 문학이라 평가한다. 이들보다 몇 걸음 더 앞선 입장에서 사회변화를 꿈꾸며 성을 문학적 소재로 다룬 마광수에게는 왜 이리도 가혹한가.


내가 사랑했던 문인, 마광수는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제2의 마광수들이 당당하게 등장하며 한국 사회의 진정한 진보적 변화를 이끌기를 바란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이육사 선생이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음란문서 제조-반포(대상서: 즐거운 사라)’란 억지 혐의로 1992년 10월 29일 구속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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