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한국어
'옹알이가 쉬운 거였어.'
요새 아이가 하는 말의 포장을 조심스레 연다. 혹시 가위로 마구 포장지를 자르다가 선물을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아이의 말속에 숨겨놓은 마음이 무엇인지 알려고 숨죽여 테이프를 떼다가, 한숨과 함께 나온 말이다.
그 시절 낑낑대며 용트림을 하던 작디작은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성대에 힘을 주고 소리를 냈다. 엄마가 말이라고 이름 지은 옹알이다.
심지어 억양도 있었다. 퇴근하고 온 아빠에게 뭐가 그리 신났는지 이제 막 4개월 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하루 일과를 풀어냈다.
우리 부부는 옹알이를 적당히 편집해 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그랬구나~어이구! 모유가 달았어? 엄마가 초콜릿 먹었나? 아.. 그래서 기분이 좋았어?"
아이에게 가 닿을지 말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해석은 우리 몫이었으니까.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면 그게 곧 대화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이가 숨겨놓은 의미가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한다. 머릿속을 사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없는 언어가 있다. 그러면 나는 아이에게 되묻는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고?"
"엄마가 알아내야지!"
내 생각엔 자기도 몰라서 궁색하게 찾은 대안인 것 같다. '마지막에 말한 사람이 이긴 거니까, 내가 이겼지?'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아이는 나에게 덤으로 얹었다.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내고 있다.
#1. 아이의 말에 갑자기 화가 올라온다면
, 만약에 아이가 말을 했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 반박을 하고 싶다면 100%다.
아이가 내 약점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약점에 자극받은 나, 엄마는 약점 속에 휘둘려 있는 것이다.
아이도 안다. 자기가 하는 행동이 잘못된 것을, 그래서 책임을 회피할 합리적 이유를 찾는 거다.
"봤지? 봤지? 엄마가 화내서 내가 이러는 거야. 나 잘못 아니다!"를 숨겨놓고 있는 거다.
나는 마음에 술을 먹여 알딸딸하게 힘을 뺀다. 기분 좋게 취한 마음은 취권을 쓴다. 약간 맹~~ 하게 반응한다. 나는 이제 나를 멀리서 바라본다.
"어~~~? 그래? 그런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2. 나의 자격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자격 없어!" 누가 보면 소중한 사람 죽은 줄 알았을 거다. 바닥에서 하도 목놓아 울어서. 내가 불쌍해 보이길 바라서 아이 앞에서 울었다.
아이는 엄마의 죄책감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죄책감 계정을 영구 삭제하고 아이의 죄책감 파티에 초대를 거부했을 때 비로소 이런 반응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 뭐.. 엄마가 완벽한 사람도 아니고..그치만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
완벽해야 한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엄마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완벽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 내가 아이를 위해 마음 쓰는 그 모든 행위가 엄마이다.
아직 나에게는 아직도 많은 수업이 남아있다. 엄마학개론 수업의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봐야 하고 가끔은 보고서도 내야 한다.
까마득하게 멀리 보이는 종강이지만, 지금보다는 괜찮겠지.
엄마는 더 나은 곳으로 향하는 동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