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 잡고 떠나는 첫 일본 여행

낯선 공기 속에 피어날 너의 첫 문장

by 하루담음

지도는 목적지를 가리키지만, 아이의 손은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꽃을 가리킨다.


아이와 함께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던 밤, 모니터의 불빛이 거실의 정적을 깨웠다. 화면 속 '예약 확정'이라는 네 글자가 뜨는 순간, 심장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진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히 여행을 떠난다는 해방감과는 결이 달랐다.


내게는 익숙해진 일본의 어느 거리, 그 낡은 골목의 채도와 편의점에서 풍기던 오뎅 국물의 냄새가 이제 막 세상을 배워가는 아이의 눈에는 어떤 색과 향기로 기록될지 가늠해보는 설렘이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여권을 꺼내 아이의 것과 나란히 놓아본다. 한 번도 도장이 찍히지 않은 깨끗한 사증 면이 마치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갈 백지처럼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행 가방을 거실 한복판에 펼쳐두고 하나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 옷가지는 대충 돌돌 말아 넣으면서도, 아이의 옷은 혹시나 추울까, 혹은 너무 더울까 싶어 몇 번이고 다시 고쳐 넣었다. 작은 운동화 한 켤레가 가방 구석에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니 문득 깨달았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내 손을 잡고 낯선 땅을 처음 밟을 아이의 발걸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도쿄의 화려한 스카이라인보다 기차역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에 더 오래 머물게 될 것이고, 유명한 맛집의 웨이팅보다 공원 벤치에서 나눠 먹는 편의점 푸딩 하나에 더 큰 행복을 느낄지도 모른다. 아이와 함께한다는 건, 어른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세상의 눈높이를 다시 맞추는 일이니까.


낯선 언어가 들려오는 거리에서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리가또"라는 말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 입술을 오물거릴 그 순간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지도는 내 손에 있지만, 정작 우리가 마주할 진짜 여행은 아이가 우연히 발견한 골목길 고양이나, 자판기에서 고른 음료수의 캔 뚜껑을 따는 소소한 순간들에 숨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아이의 뒤에서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기로 했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신기한 것을 발견하면 함께 감탄하며, 그 모든 순간을 아이의 기억 속에 소중한 보석으로 박아 넣어주는 조력자. 그것이 이번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숙제이자 선물이다.


이제 며칠 뒤면 우리는 구름 위를 날아 낯선 공기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고 게이트를 나서는 순간, 우리의 계절은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혹은 조금 더 느리게 흐를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의 여권에 찍힌 파란 입국 도장만큼이나 우리 마음속에도 선명한 추억의 무늬가 새겨지길 바란다. 비행기 창밖으로 펼쳐질 하늘의 파란색이 아이의 눈동자에 오랫동안 머물렀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손등에 온기를 나누며, 각자의 인생에 오래도록 남을 찬란한 한 페이지를 함께 넘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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