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벚꽃 여행, 흩날리는 꽃비 속에서 찾은 삶의 온도

그해 봄 일본 벚꽃, 사라져서 더욱 영원해진 찰나의 기록

by 하루담음

낯선 도시의 공항에 내려 처음 마주한 바람에서 분홍빛 기척을 느꼈을 때, 나는 비로소 봄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실감했다.꽃잎이 써 내려간 문장들, 그 길 위에서 길을 잃다


생의 가장 화려한 소멸을 목격하기 위해 나는 매년 봄, 바다 건너 그 섬나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일본의 봄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정교하게 설계된 연극이며, 아주 오래된 약속이다. 교토의 철학의 길을 걷다 보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벚꽃의 군무가 현실감을 지워버린다. 발밑에 쌓인 꽃잎들은 어제의 바람이 남긴 파편들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카메라 렌즈 속에 그 찰나를 가두려 애쓰지만,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벚꽃의 본질은 소유할 수 없는 '낙화'에 있다는 것을. 벚꽃 아래를 걷는 행위는 타인의 삶에 잠시 초대받아 그들의 가장 눈부신 순간을 엿보는 일과 닮아 있다.


우리는 왜 그토록 이 연약한 꽃잎에 열광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이 우리가 가진 청춘의 속성과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도쿄 나카메구로 강변을 따라 흐르던 연등 불빛과 그 빛에 투영된 분홍빛 일렁임이 선명하다. 벚꽃은 우리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친다. 일 년 중 고작 열흘 남짓한 시간을 위해 나무는 남은 열한 달을 묵묵히 견뎌낸다. 그 기다림 끝에 터져 나오는 개화는 결코 요란하지 않다. 그저 고요하게, 그러나 압도적인 밀도로 세상을 물들일 뿐이다.


바람이 불면 꽃비가 내린다. 그것은 이별의 신호이면서 동시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정중한 인사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지나온 시간들이 겹쳐진다. 누군가와 함께 걸었던 그 길, 혼자서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던 어느 신사의 흐드러진 수양벚꽃. 여행자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은 가방 안의 기념품이 아니라, 마음 한구석에 깊게 각인된 그 분홍색 습도와 향기뿐이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창밖을 본다. 화려했던 축제는 끝났고, 그곳의 나무들은 이제 초록의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벚꽃 엔딩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언제든 그 길 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찰나여서 아름다웠고, 사라져서 영원히 기억될 그 봄의 조각들을 일기장 갈피마다 소중히 끼워둔다. 비워진 자리에 다시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나는 다음 봄의 문장을 미리 상상해 본다.




이전 05화아이와 일본 여행, 가방에 담은 다정한 준비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