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여기까지 잘 왔어 1부. [에필로그]
2025년 한해는 제가 59년을 살아오던 중
가장 힘들고 긴 한해였습니다.
24년간 지긋지긋하게 저를 스토킹해 온 공황장애도
그 틈을 타고 마치 독버섯처럼
저의 영혼과 육신을 조여왔습니다.
제 마음과 몸은
땅속까지 태워버리는
소위 지중화(地中火)로 인해 어느새 재만 남았죠.
숲에 불이 나는 것은
인간의 입장 에서든, 생태계의 입장에서든
그 순간은 그저 재앙입니다.
하지만 일단 태어난 숲의 불은 장기적으로 보면
새로운 생태계의 태동이자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가 됩니다.
그러기 위해 중요했던 것은
불이 나기 전, 숲의 건강성과 자연성이
얼마나 오래,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내기를 했느냐가 화재 후의 복원력을 결정하지요.
저는 아마도
지난 50여 년의 삶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강인하게 버텨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래서 그 말도 안 되는 공황이란 녀석이
제게 기생하게 되었지만요.
작년 연말.
어쩌면 성경 속에서 가장 비참했던
‘욥’의 마지막 환란 때와 같이
저도 지독한 피부병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좀 차리게 되었습니다.
저를 그 엄청난 화마 속에서 버티게 해준 것은
저의 하나님과 챗GPT였습니다….
참 안 어울리죠?
제가 정신을 찾아갈 무렵
그분들의 소개로 브런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중, 고교 시절
촉망받던(?) 글 소년이었기에
일단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저는 30년 조금 넘게 산과 바다,
그리고 물비린내 그윽한 강을 삶터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대충 깎은 연필 자루와 먼지 나는 옥편을 들고
세로줄 없는 원고지에 보고서를 쓰기 시작하여
지금은 AI 코딩을 통해 모델링을 하기까지
긴 세월, 보고서와 논문에 파묻혀
극과 극의 살아내기를 해왔습니다.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20대 초반부터 제 안에는
삶의 마지막 시절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제게 소명과도 같았습니다.
“결국 나는 책 한 권을 내놓고
내 삶을 마무리할 거야.”
“내가 쓴 글을 보고 이 세상 단 1명이라도
새 생명을 꿈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이런 저의 계획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금 앞당겨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진정성이 표현되려면
30여 년간 길들여진 보고서와 논문의 DNA를
다듬고 깎아야 할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브런치라는 생태계에 들어온 지 이제 한 달여.
그동안 경험했던 SNS와는 많이 다른
브런치 생태계에 들어오니,
마치 고향을 찾아온 연어와 같이 편하면서도
또한 무언가를 생산해야 한다는 숙제도
함께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응, 여기까지 잘 왔어”라는 첫 번째 브런치북은
어쩌면 시험을 보는 듯,
보고서를 내는 듯
브런치다운(?) 글을 쓰는 데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각인(刻印)이라는 단어가 있죠~.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철새도
눈꺼풀이 없어 잘 때도 눈을 감지 못하는 물고기도,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마주하는 부모
혹은 동일 종의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하며
거울 없이 본인의 모습을 인지합니다.
저도 브런치 생태계에서
모든 작가님과 독자님들이
그렇게 보입니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친구이지만,
같은 땅을 사랑하고
같은 물에 서식하기에
보다 더 한 어울림이라 생각합니다.
어찌하다 보니 반성문만 썼던 첫 번째 브런치북.
“응, 여기까지 잘 왔어” 1부. 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두 번째 브런치북에서는
처음이지만 ‘어른동화’를 연재해 보려 합니다.
1부가 조금은 덜 익은 호두알처럼
딱딱하면서도 떫었다면
2부에서는 나름대로의 재미(?)를
더해보려 합니다.
저같이 공황에 힘들어하든
우울, 강박, 공포, 완벽 등등의 아픔이 있던,
누구나 하나씩은 지고 살아가는 ‘마음의 불.’
영겁을 지나,
적응하고 순응함으로써
현재의 삶에서 가장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연의 생명, 그들의 지혜를 통해
남은 불씨까지 진화(鎭火)하고
푸르름의 맹아(萌芽) 틔움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AI가 도저히 해주지 못할
생명의 위로와 쉼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성낙필의 ‘두 번째 브런치북’
‘[어른동화] 응, 여기까지 잘왔어 2부’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