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가 우는 밤에 백리까지 울려퍼져 누군가의 가슴에 가닿아 맴도는 것
세상의 어떤 연인들은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 평범한 이름을 그들만의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으로 만든다. 세상에는 똑같은 이름이 수도 없이 많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순간에는 연인의 이름만이 눈부신 희망이고 미래이며, 사랑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가는 공동 저자다.
어떤 연인들의 이름은 깃털처럼 가벼운 소문이 되거나 오랜 세월 풍화하여 화석이 돼버리거나 다 타버리고 재가 되거나 금세 잊힌 우연한 과거로 남기도 하지만, 죽음 이후에도 잊히지 않을 운명이 되기도, 언약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연인들에게서는 다른 울림을 가진 종소리가 들린다. 연인들은 서로의 가슴에 종을 매달아 놓은 듯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서로에게로 울려 퍼지고 스민다. 기쁨을 슬픔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사랑의 연금술로 서로의 가장 내밀한 영혼에 아름다운 무늬를 짜면서.
어린 연인인 소년 소녀를 만난 건 딸기와 사과 한 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였다. 동네 상점들이 즐비한 길가 한쪽에는 겨울 내내 붕어빵 노점상이 자리를 잡고 붕어빵을 팔고 있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곳을 막 지날 때 즈음이었다. 붕어빵 한 봉지를 들고 키 작은 소년 소녀가 앞서 걷고 있었다. 검은색 패딩을 맞춰 입은 듯한 스물 남짓 되어 보이는 앳된 연인이었다.
소년이 붕어빵 봉지를 들고 소녀에게 붕어빵을 하나 꺼내 건네주었고 소녀는 한 입 베어 물고 있었다. 둘은 가까이 붙어 붕어빵을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다정한 눈짓을 주고받았다. 어린 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다가 슬몃,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둘이 참 예쁘네! 저렇게 예쁘고 어린 연인의 풍경에서는 작은 은빛 종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어린 연인은 서로의 곁에 머물러 어떤 맑고 순수한 사랑의 파동처럼 서로가 서로에게로 울려 퍼진다. 아직은 얕은 울림이겠지만. 저 소년 소녀도 금세 늙어갈 것이다. 잠깐 만나다가 헤어질 인연이 아니라면 조금씩 서로의 주름에 새겨져 잊히지 않을 운명으로 오래 함께 걷게 될 것이다.
어린 연인들에게서는 사랑의 늙음과 죽음은 먼 미래의 풍경처럼 비친다. 그들의 사랑은 과거가 돼버리기 이전, 어느 먼 미래의 먼 곳까지 울려 퍼질 날들을 향해 가고 있다. 겨울 햇빛이 비치는 한낮의 길 위, 아직 녹지 않은 눈처럼 반짝이면서. 오후 3시의 긴 그림자가 점점 짧아지는 때에 이르면 육체의 늙음과 사랑의 죽음에 가닿은 마지막 종소리가 울려 퍼지겠지만.
어쩌면 소년이 소녀보다 먼저 늙어가거나 소녀가 소년보다 먼저 늙어갈 수도 있겠다. 오래도록 함께할 인연이라면, 어느덧 희끗희끗해진 소년 소녀의 정수리에 잔설이 내려앉을 때 즈음 서로의 죽음 가까이서 걸으며 점점 희미해지는 종소리의 마지막 아름다움을 안타까워도 하겠다.
어린 연인은 사거리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걸었고, 나는 왼쪽 방향으로 걸었다. 얼마 안 가서 과자점을 지날 때 어린 연인들의 미래로 금세 건너온 듯한 다정한 노부부를 만났다. 남편은 과일 몇 가지를 담은 봉지를 들고 있었고, 아내는 채소 몇 가지를 담은 봉지를 들고 가까이 붙어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에 비하면 노부부의 걸음걸이는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데 반나절이 걸릴 것만 같이 더디고 느렸다.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의 걸음걸이에 익숙해져 편안해 보였다. 남편이 서서 신발을 고쳐 신으면 아내도 서서 기다렸고, 아내가 외투 주머니 속에서 뭔가 찾으려 서면 남편도 기다리고 섰다. 서로 재촉하지 않는, 그런 서로를 향한 느린 기다림이 애틋해 보였다. 노부부는 그림자와 걸음걸이까지 닮아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해 질 녘의 아름다운 노을 풍경을 배경으로 은은한 저녁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서로 다른 목소리, 서로 다른 높이의 음을 가진 늙은 연인인 노부부가 오랜 세월의 흐름에 서로의 몸과 마음이 부대끼며 진심으로 서로의 주름 속으로 스며들어 만들어내는 어떤 아름다운 화음이었다.
사랑의 멸망은 곧 존재의 멸망이다. 육체적 죽음이 우리를 끝끝내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한 적 없는 삶의 무의미가 인생의 아름다움을 낭비케 하고 존재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어린 연인인 소년 소녀와 늙은 연인인 노부부 그리고 금방 둥지에서 날아오른 까치 부부도 진심으로 서로 사랑할 때 멸망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살아있을 수 있다. 사람에게든 새에게든 존재의 본질이 사랑임은 영원한 진리여서 그토록 서로가 서로의 연인으로 만나 인연을 맺고 살다 가는 것이다.
육체적 죽음은 마지막 사랑의 아름다움을 파괴할 수 없다. 어떤 불도 어떤 지옥도 파괴하지 못할 전설적인 사랑의 풍경은 수세기가 흐른 후에도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고 기억된다.
내게는 강렬한 사랑과 죽음의 풍경이 시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는 폼페이의 연인에 대한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수 세기 전에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인해 멸망한 폼페이의 연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껴안고 화석이 되어 있었다. 육체는 썩어 없어지고 빈 공간에 석고를 채워 원형 그대로 보존된 연인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사랑과 죽음에 관한 이미지 중 가장 참혹하지만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웠다. 화석이 된 연인들은 서로의 죽음 속으로 스미며 신화적 사랑이 되어 영원한 잠 속으로 사라졌다.
뜨거운 화산재와 불 속에서 그들을 구원한 것은 사랑이었다. 세상에서는 이미 사라진 연인이지만 그들의 사랑은 멸망하지 않았다. 참혹한 죽음조차도 떼어놓지 못하는 사랑의 풍경은 어떤 절대적인 마지막 사랑을 완성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연인의 육체도 이름도 폼페이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마지막 때에 서로의 죽음까지도 사랑한 연인의 사랑은 잊히지 않고 여행자들에게 영원한 사랑의 경이로운 풍경으로 남아 있다.
우리를 영원히 죽게 하는 것은 사랑의 부재다. 사랑의 부재는 어떤 영혼도 구원할 수 없음을. 인간의 숭고함과 위대함을 지킬 수 없음을. 폼페이의 연인은 참혹한 마지막 사랑을 껴안고 미래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증거 한다.
지난 9월 즈음, 균열을 우려해 타종이 중단되었던 에밀레종이 22년 만에 울렸다. 종지기가 12번에 걸쳐 종을 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종 앞에 모여 맑고 웅장한 울림에 스며들었다.
어떤 연인들의 진정한 사랑은 서로 다른 두 소리가 섞인 맑고 아름다운 울림이다. 큰 울림으로 울려 퍼졌다가 잦아들었다가 다시 우우웅, 하고 커지고 작아지고 다시 커지며 서로의 곁을 맴돈다. 천년을 넘게 울려 퍼지는 에밀레종처럼 존재의 본질은 사랑의 울림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세기가 지난 후에도 어떤 사람들은 그토록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의 울림을 찾아 헤맨다.
귀뚜라미가 우는 밤에 백리까지 울려 퍼져 누군가의 가슴에 가닿아 맴돌고 맴도는 것. 잦아들고 나서도 사랑의 생애에 오래도록 긴 여음으로 스미는 것. 사람에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큰 울림이 있다면 그건 맑고 부드럽고 신비한 전설적인 사랑의 울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