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 살랑이는 청보리밭 시절의 풍경이 문득, 다시 생각나겠다
봄바람 부는 4월의 청보리밭을 지나다가 멈춰 서서 한참이나 머물렀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아니었다. 청보리밭 축제도 없고, 다정한 연인들도 없었다. 문득, 들어가 볼까 하다가 사람이 다닐만한 사잇길이 없어 밭가에서 오래 걸었다. 내게는 아직 여물지도 않은 청보리밭 풍경처럼 푸른 시절의 인연이 있었다.
스승의 부고 소식을 들은 건 몇 년 전 여름이었다. 소설‘광장’의 ooo 작가. 23일 오전 대장암으로 별세. 아침에 신문을 읽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울컥해졌다. 교수님은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에서 그동안 위중했었다고 한다. 신문 상단에는 교수님의 생전 모습이 찍힌 독사진이 실려 있었다.
잠시 사진 속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스물두 살 적 강의실에서 뵈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문학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리숙한 시절. 그분께 가르침을 받게 된 것은 스물 두해 내 인생의 기적이었다.
그때 나는 2학년이었다. 1학년 때는 다른 교수님들께 소설 창작과 이론을 배웠는데, 가끔 나는 빨리 2학년이 되고 싶었다. 2학년이 되면 문예지나 신문에서만 뵙던 ooo교수님 소설 강의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기쁨과 설렘, 호기심, 그리고 조바심으로 다음 해 봄이 올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명동 남산 캠퍼스에 꽃피는 봄이 왔다. ooo 교수님 강의를 고대하는 동안, 봄날 아침의 분위기는 꽃봉오리들 팡팡 터지듯이 내내 한껏 들떴다. 처음 강의실에서 뵈었을 때 신성한 그 무엇과 마주하고 있는 듯이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그분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몸집이 왜소하셨지만, 한국 현대 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그 존재감만으로 위대해 보였다. 어떤 범접할 수 없는 장엄한 세계가 앉아 계신 것만 같았다.
소설이 뭔지도 모른 채 부지런히 써냈던 나는 강의하시는 교수님 가까이 앉을 용기가 없어서 햇볕 드는 창가 쪽 가장자리 중간쯤에 앉아 늘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의 나는 지극히 내성적이어서 말도 없고 부끄러움이 많은 소녀였다. 강의실 앞줄에 앉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구열이 높은 나이 많은 언니들이나 오빠들이었다. 작가가 되려고 예술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나이가 천차만별이었는데, 나는 그들 중에 가장 어린 학생 축에 속했다. 신학대학이나 사범대, 미대 혹은 음대나 공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작가가 되려고 다시 입학한 사람도 있었고, 오랜 직장 생활을 하다 문학에 뜻을 두고 뒤늦게 입학한 사람도 있었다. 재수 삼수를 해서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문학의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 중에 내게 소중했던 것은 좋은 학교에 입학해 훌륭하고 좋은 스승을 만난 것이었다. 내게는 더 없는 행운이었다. 인생에서 어떤 행운을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은 그 행운이 한 세계를 열망하는 존재를 더 높은 곳의 세계로 이끌어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행운만으로 이룩하는 세계란 없다. 눈을 떠 한 세계를 발견하려는 사람에게는 노력과 영감과 재능과 겸손이 필요하다. 그때 그 시절 그것을 모두 갖춘 사람됨에 나는 한없이 부족한 어리고 작은 사람이었다.
ooo 교수님의 강의 시간은 매번 설레고 기다려졌다. 몇 번의 강의 시간이 흘러가고, 종강 무렵이었다. 나는 강의실 창가 쪽 가장자리 중간쯤에 앉아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수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셨다. 나를 보시며 무슨 질문인가 하셨는데 나는 내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물속에 잠긴 듯 귀가 먹먹해서 교수님의 말씀이 하나도 들리지 않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교수님께서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계셨는데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결국 교수님께서 다음 말씀을 이어 가셨다.
그날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그 질문이 들렸다면 대답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시절의 나는 너무 내성적이었고, 너무 긴장했고, 부끄러움이 너무 많았고, 용기도 없었고 모든 것이 미숙했다. 그날 강의가 끝나자 학생들이 가방을 챙겨 나가고 있었다. 나도 가방을 챙겨 강의실 문 쪽으로 이동 중이었는데, 그쪽으로 가려면 교수님이 앉아 계신 책상 앞을 지나가야 했다. 마침 그 앞을 지나려는데 교수님께서 나를 불러 세우셨다. 그러시더니 소설 강의 교재와 출석부를 가리키시면서 인자한 눈빛으로 따뜻하고 친근하게 말씀하셨다.
“이거 들고 나 따라와.”
나는 뜻밖의 말씀에 당황했지만 곧장 소심한 목소리로‘네’라고 대답하고 소설 강의 교재와 출석부를 들고 뒤에서 조심히 따라갔다. 교수실 문 앞에 도착하자 교수님은 강의 교재와 출석부를 건네받으시고, 이제 가 봐도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시절에는 오래 잊히지 않을 그 풍경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잘 모르고 지나갔지만, 졸업 후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문득, 뒤늦게 깨달았다. 스승의 제자에 대한 애정이었음을.
스승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것은 그날의 풍경이었다. 졸업 후에도 몇 번의 신춘문예 낙방과 좌절감으로 우울했을 때, 그 시절의 애정 어린 따뜻함과 다정함이 떠올라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힘이 되었다.
먼 훗날 신춘문예 시로 등단했을 때 연락을 드리고 싶었지만, 구석진 마음 한 쪽에 접어 두었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고, 스승을 거쳐 간 그 많은 제자들 중에 나도 한 명일 뿐일 텐데 기억하지 못하실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혹시라도 기억하신다면 문예지에 발표한 내 작품과 사진을 보면 아실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이미 잊힌 제자이고, 필명을 쓰고 있어서 기억을 못 하실 수도 있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문학에 뜻을 두었던 그 시절. 아직 나의 세계가 한참이나 작았을 때, 거대한 세계와 마주 보는 것이 부끄럽고 용기가 없었을 때 스승께서는 내게 인간의 삶과 사랑, 문학의 본질을 가르쳐 주셨다.
스승께서는 내게 사유의 씨앗을 흩뿌린 사람이었다. 내가 가진 땅은 아주 작았다. 씨앗을 두 손에 공손히 받아 심고 흙으로 잘 묻어 놓은 뒤, 꼬물거리며 싹이 올라올 때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나는 초봄에 세계를 경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스승의 땅은 그 넓이를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넓었다. 수십 년 동안 경작해 온 책들 속에는 시대와 역사와 사랑에 관한 화두가 있었고, 의식의 흐름이 있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스승만큼의 큰 사람이 되지는 못해도, 나는 좋은 씨앗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에 매혹되어 시를 더 좋아하고 쓰던 시절이었으나, 소설에 눈 뜨게 되면서 시와 소설의 경계 그 어디 즈음에서 서성거렸다. 세계의 깊이나 넓이를 갖추지 못한 채 시인이나 소설가가 빨리 되는 일은 겁이 나는 일이기도 하여서, 나는 그보다 좋은 땅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이 먼저 되고 싶었다. 작은 땅에서 자라나는 나무가 몇 m높이까지 자랄지 알 수는 없었지만.
봄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며 흔들리는 청보리들은 제 리듬으로 봄햇살 아래 푸른빛으로 자라났다. 그 시절의 나는 막 씨를 뿌려놓은 작은 청보리밭이었다. 싹을 틔우고 여물 때까지 다 자라나려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지만. 이곳에도 아름다운 청보리밭 축제의 날이 올까 싶기도 했지만.
작아 보였지만 청보리밭은 꽤 넓었다. 깊은숨과 봄바람을 들이마시며 잠시 오래 걸었다. 다 여물 때 즈음 다시 오면 노란 빛깔과 여전히 느린 리듬으로 고요히 흔들리며 보리 이삭이 익어가는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이곳에는 화려한 청보리밭 축제의 시작도 끝도 없다. 오로지 고요한 청보리밭 풍경만 펼쳐져 있다. 마치 마지막까지 써 내려가야 할 미완성 원고처럼.
부고 소식을 들은 후, 스승께서 완성한 몇 권의 책들 중‘광장’을 다시 꺼내 읽으며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되새김질해 보게 되었다. 오랜 세월 후에 나는 시인으로 등단은 했지만, 가끔은 여전히 청보리밭 풍경에 머물러만 있는 듯할 때가 있었다. 쓰는 일은 늘 고독하지만, 그래도 홀로 오래 걷고 싶다. 써내려 가야 할 나의 세계는 점점 푸르고 넓어지리라 믿으면서. 계속 자라고 있는 중인 청보리밭 풍경 바깥으로 멀어지고 싶지 않다.
스승께서는 이제 영영 떠나셨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좋은 스승의 따스한 봄빛 아래서 푸르른 어느 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나의 문학적 삶에서 얼마나 은혜롭고 감사한 일이었던가.
보리 이삭이 다 익을 때 즈음이면 살랑 살랑이는 청보리밭 시절의 풍경이 문득, 다시 생각나겠다. 수줍던 소녀 적, 청보리처럼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오던 그날의 풍경이 오래 잊히지 않을 테니까.
*안녕하세요.
이곳에 찾아 오셔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려요.
17일 화요일 연재는 쉬어야 할 것 같아요.
20일 금요일 연재 때 뵙겠습니다.
즐거운 설 연휴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