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이사

당분간 이사한 집에 머물며 새들은,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며 살게 될까.

by 김민율

봄날의 이사





말벌과 땡삐가 둥지를 짓기 시작할 4월 무렵, 사람들은 집을 구하러 다닌다. 다세대 주택이나 연립주택, 더 넓거나 좁은 평수의 아파트를 찾아 이 동네 저 동네 골목골목을 돌아다닌다. 새들도 둥지를 지을 장소를 찾아다닌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높은 나뭇가지 틈새에 지어진 빈 둥지를 올려다보았다. 허공에 집을 짓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고 불안해 보였다. 빈 둥지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일부 망가져 있었다. 어떤 새일까. 둥지를 버리고 어디로 옮겨가 더 넓은 새 둥지를 짓고 있을까. 새는 옮길 세간도 없으니 이사 가기도 가벼웠으리라.

나도 봄에는 십 년 동안 세 들어 살던 집을 떠나야 한다. 새들처럼 새 집을 찾아 영혼과 몸을, 삶을 옮겨야 한다. 작은 평수의 집을 찾기로 한 날부터, 불필요한 세간들을 정리하고 버렸다. 오래되고 낡은, 더 이상 읽지 않는 책들도 몇 권 버리고 이삿짐을 최소화했다. 이사 가려는 집보다 평수가 더 넓은 집에 세 들어 사는 동안 너무 많은 물건들을 소유하려고 했음을 이삿짐을 싸면서 알게 되었다. 책들을 많이 사들였지만, 집안에 다른 뭔가를 더 많이 사들이고 채울수록 정신적 삶은 빈곤해진다는 것도. 평수가 넓은 집에 산다고 삶이 더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새들은 새들만큼의 넓이로 살고, 사람은 자기만의 삶의 넓이만큼만 살뿐이다.

가난한 새는 지붕도 없는 둥지를 그토록 알뜰하게 부지런히 짓지만 소유하지 않는다. 세상에 그 많은 집 주소들이 등록되어 있어도 새 둥지는 주소 하나 없다. 허공에 둥지를 짓고 사는 새들도 사람보다 더 가볍지도 더 무겁지도 않은 생의 중력을 견디느라 고단할 거였다.

집은 추억과 비밀과 꿈과 내밀한 삶의 풍경이 뒤섞인 공간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겹쳐진 몇 평의 크고 작은 공간에서 어느 봄날 잠시 머물렀던 사람들과의 점심 식사 그리고 작은 파티와 나눈 대화들. 늦은 밤에 꾸었던 꿈들. 고향 마을을 날아다니고 있거나 집에서 보고 싶은 한 사람을 만나거나 여름의 정원 문을 열고 시인들이 모여 점심을 먹는 풍경 속으로 걸어가는 기분 좋은 꿈을 꿀 때도 있었다.

어떻게 살면 좋을까, 궁리하던 밤들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무해한 생각들과 습관들. 크고 작은 계획들. 조용한 아침에 물 끓는 소리와 밥 짓는 냄새. 새벽 기도와 떨어진 눈물 한 방울과 저녁 식탁에 올려놓은 토마토 수프 한 그릇. 잘 마른 빨래냄새를 맡으며 빨래를 개던 저녁의 평온함. 소파에 누워 책을 읽다가 낮잠이 든 일요일 오후의 휴식. 거실에 어슴푸레한 빛과 그림자가 내려앉는 풍경과 조금 가쁘거나 편안한 숨의 리듬. 구석진 곳으로 내몰리던 마음에 내려앉은 먼지를 쓸어내던 저물녘. 그 모든 살아온 삶의 풍경들이 집안 곳곳에 어슴푸레한 무늬처럼 어른거렸다.


잠시 세 들어 사는 집임을 잊고 지내다가 문득, 이사 가야 할 때가 되면 집은 더 이상 안락하고 평온한 일상과 몽상의 공간이 되지 못했다. 곧 새집을 구해 떠나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부동산에 전화를 하고 집을 보러 다녔다. 다가오는 전세 계약 만료일과 임대 보증금을 더 올리지나 않을까를 걱정하면서 며칠 동안 대출을 받아 집을 살까도 고민했다. 언젠가는 영영 떠날 세상인데, 집을 소유해야 할까 싶기도 하다가 사는 동안 오래 머물 집이 없으니 떠날 때가 오면 현재도 미래도 불안했다.

세상에는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평수가 큰 집주인이든 작은 집주인이든 모두가 우주에서 깨알만 한 몇 평 공간을 잠시 빌려 쓰다 갈 뿐이다. 지상에서는 영원한 집, 영원한 소유주로 등록될 수 없음을. 언젠가는 침묵과 고독의 텅 빈 구멍이며, 마지막 공간과 시간 속에 발 디딘 이 생과도 작별해야 할 찰나의 순간을 살게 될 것임을. 그럼에도 사람들은 내 집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나도 가끔은 안전하고 깨끗한 내 집을, 깃털처럼 가벼운 집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집은 현실과 몽상 사이의 흐릿한 경계 즈음에 있다. 과거나 현재의 집보다 먼 훗날 때늦게 옮겨 갈, 나중에나 살게 될 미래의 집이 더 밝고 깨끗하고 더 넓을 것임을 꿈꾸는 사람이었던 적이 있다.

스무 살 이후 즈음부터였다. 서울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이 동네 저 동네 옮겨 다니며 월세방에서 살았지만, 어린 시절의 집만큼 안락하고 안전하며 따듯한 공간은 없었다. 반지하방에서 살 적에는 밤마다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어떡하지, 침대에 올라오지는 않을까, 내 얼굴을 파먹지 않을까, 걱정과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다. 겨울의 방은 어떠했던가. 보일러를 틀어 놓아도 창문 틈으로, 출입문 틈으로 찬바람이 새어들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쓰고 잠을 청해야만 했다.

일 년을, 삼 년을, 십 년을 서울살이 해도 내가 머문 서울의 방들은 아름다워지지 않았다. 월세방에는 따듯한 아랫목이 없었고, 매달 지불해야 할 월세와 공과금 고지서 세금 고지서가 쌓일 뿐이었다. 낡은 주택가 골목을 떠돌다가 언제 이곳까지 기어들어 올 지도 모를 쥐에 대한 공포에 시달려야 하는, 반지하 생활은 늘 균형을 잃은 것처럼 흔들리고 불안했다. 할 수만 있다면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암흑기의 반지하방 생활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도시 어느 동네에서도 가질 수 없는, 저녁 불빛과 깨끗하고 안전한 따듯한 방이 있는 집이 간절해졌다.

반지하방은 깊은 잠을 빼앗아 갔고, 좋은 꿈 대신 악몽을 자주 꾸게 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거나 끙끙거리다가 새벽에 깨어나 뒤척이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가 언니와 나는 연립 주택 2층 두 칸짜리 월세방을 얻어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창으로 햇빛이 드는 밝은 방이었다. 우리가 가진 보증금으로 이 대도시에서 이보다 더 채광 좋은 방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만 같았다. 초록색 작은 대문을 열고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긴 했지만, 볕 드는 방에서 책을 읽거나 시를 쓰며, 꿈꿀 수 있는 나만의 내밀한 공간이 생긴 것만으로도 내게는 좋은 집이었다.

2층 월세방에서 몇 년을 사는 동안 나는 씨방을 꿈꾸었다. 꽃이 될 밑씨를 품은 방! 씨방 속에 웅크린 나는 무엇인가 되고 싶었다. 미래에 무엇이 될지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튼튼하고 아름다운 그 무엇이 되어도 좋았다. 씨방은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하고 완전한 방인 것만 같았다. 언니는 내가 그런 몽상 속의 작은 씨방을 꿈꾸는 것을 몰랐다. 언니가 꿈꾸는 방은 결혼의 방이었다.

서울살이 18년 즈음, 나는 신도시로 이사해 25평 새 아파트에 전세로 살면서 아이들에게 글짓기를 가르치며 살게 되었다. 볕이 잘 드는 집이었다. 베란다 쪽으로 큰 창문이 나 있고 한쪽 벽면에 작고 흰 창문이 있는 침실은 아늑하고 마음에 들었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때 큰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침실 안쪽까지 넓게 번졌다. 오후가 되면 작은 창문으로 한 줄기 햇살이 들어와 신비하면서도 따듯한 우주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집이었다. 가끔은 이런 깨끗하고 따스한 빛의 침실 분위기에 마음이 설레었다. 굴광성의 식물처럼 햇빛을 좋아하던 나는 아침에 깨어나면 햇빛 쪽으로 굽어 눕는 습관도 생겼다.

이제 그 집을 떠나야 했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1억 가까이 올렸고,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다. 최대한 빚지지 않고 지금 가진 돈으로 옮겨 갈 집이 필요해지면서, 몇 날 며칠을 생각했다. 내 집을 가지고 싶다. 빚내서라도 집을 살까. 그러면 이사 다니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다 빚지고 살기는 싫어 당분간은 세 들어 살기로 했다.


빈 둥지만 남겨 두고 떠난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도 언젠가는 새처럼 훨훨 날아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내 이름이 소유주인 집이 영원한 거소인 줄 알고 살다가, 때가 되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다른 곳으로 다른 때로 영혼을, 꿈을 옮겨 가는 것이다. 빈 둥지를 버리고, 그곳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조금 이르거나 조금 늦은 때에 이 생으로부터 다른 생으로 옮겨가는 날이 온다. 살았던 집 구석진 곳마다 깨끗이 청소해 놓고, 불을 끄고 문을 잘 닫아 놓고 간 한 사람의 마지막 풍경이 아름다울 그런 순간을 맞이할 날이 온다. 오랜 연인이었고 부부였던 한 사람이 천국으로 이사 가는 마지막 풍경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배웅할 그런 날. 어느 따스한 봄날의 빈집에서 그리움을 맞이할 날이 기도하는 한 사람에게도 온다. 어느 날 문득, 기억의 서가에 꽂힌 책 한 권을 꺼내 펼쳐 읽듯이 곁에 함께 살았던 한 사람이 남긴 이야기를 다시 읽으며 추억하면서.


봄볕이 따스한 날. 사람들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세간을, 삶을 옮기느라 바쁘고, 새들은 허공에서의 삶을 옮기느라 바쁘다. 당분간 이사한 집에 머물며 새들은,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며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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