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속도로 날아도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
오월의 햇살 좋은 아침 산책길에 풀숲 가에서 어린 모시나비 한 마리를 만났다. 막 허물을 벗고 날갯짓을 하고 있었는데, 날지는 못하고 바닥에서 파닥이고만 있었다. 소리 없이 날갯짓만 하는 나비가 애처로웠지만 가만히 지켜보았다. 내가 너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날갯짓은 멈추지 않았다. 무한의 날갯짓처럼. 날아오르고자 하는 버둥거림이 가엾어 보였다. 손을 대 날아가게 도와줄까. 몇 번을 망설이다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몇 번의 날갯짓을 반복한 후, 모시나비는 마침내 날아올라 팔랑팔랑거리며 자기 리듬을 찾아 멀리 날아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모시나비에게 무척이나 아름다운 날이겠다. 흰 빛에 홀려 잠시 따라가다가 나는 자작나무 숲길에서 잘 가라고 배웅해 주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있으니 자꾸 어린 모시나비가 떠올랐다.
나는 1980년대 막 허물을 벗기 시작한 어린이였다. 학교는 공산당에 대한 혐오와 증오심을 가르쳤다. 반공 글짓기나 반공 포스터, 반공 표어를 출품한 학생들 작품 중에 우수한 작품을 뽑아 상을 주기도 했다. 나는 포스터물감으로 반공 포스터를 그려내거나 반공 글짓기와 반공 표어를 지어 내어 상을 받았는데, 계몽적인 내 작품들은 강렬한 원색적 이미지와 언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시절 나는 맹목적인 어린이였다. 공산당이 무엇이고,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공산당은 나쁜 것, 증오하고 혐오해야 할 그 무엇이었다. 학교 뒷동산에 이승복 어린이 동상을 세워 놓았는데, 동상에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내게 공산당은 학습된 언어와 이미지로만 존재했고, 실체가 모호했다.
학교에서는 매년 반공 교육 행사를 개최했다. 반공 의식이 주입된 학생들은 누구나 맹목적인 어린이가 되었다. 우리는 올바른 어린이였다. 학교는 언제나 옳다고 믿었다. 어떤 의심도, 어떤 반문도 하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었고, 담임 선생님 말씀이었으니까. 선생님 말씀은 언제나 옳다고 믿었고,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어떤 복종은 어린이의 의무인 것만 같았다.
우리 반에서 나는 글짓기를 제일 잘하는 아이였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현충일이 있는 달 6월이었다. 이번 반공 웅변대회에 내가 나갔으면 한다시면서 내일까지 연설문을 써 오라고 하셨다. 연설문을 써오면 방과 후에 남아서 같이 연습하자고 하셨다.
담임 선생님이 왜 날 지목했는지는 의문이었다. 나는 목소리도 작고, 말도 잘 못하고, 앞에 나서는 것도 부끄러워하는 학생이었는데. 무엇보다도 내성적인 여자 아이였는데 왜 내가 반 대표로 나가야 하는지. 목청이 크고 씩씩한 아이들도 많은데. 어쨌든 내가 지목되었으니 집에 돌아와 빨간 책가방을 내려놓고 방바닥에 엎드려 공책에 연설문을 써내려 갔다. 이승복 어린이 동상에 새겨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문구를 연설문 중간에 써넣으면서 연설문을 마무리했다.
다음날 연설문을 들고 학교에 갔다. 선생님께서 살피시더니 몇 문장을 고쳐 주셨고, 방과 후 교실에 남으라고 하셨다.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텅 빈 교실에 나 혼자 남아 책상 앞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렸다. 담임 선생님이 교실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시더니 교탁 앞에 가서 서 보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내게 연설문대로 웅변을 해보라고 하셨다. 뭐라고 쓰고, 뭐라고 읽으며 주장했는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칠 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선생님은 특정 부분에서 주먹을 쥐고 좀 더 크게 소리치라고 하셨다. 힘껏 소리치느라 목이 아프고 힘도 빠져 시래기처럼 시들시들해져 갔는데 담임 선생님은 더, 더 큰 목소리로 힘 있게 외치라고 다그쳤다. 있는 힘껏 소리쳤지만, 나는 점점 힘이 빠졌다.
나는 꼭 웅변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웅변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시키니까 마지못해 한 것이었기 때문에 흥미도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반 대표로 나가는 것이었으니 힘주어 말해야 할 부분에서는 교탁을 주먹으로 탕탕 두드려 가며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 담임 선생님이 만족하실 때까지. 웅변대회가 있기 전 날까지 방과 후 매일 빈 교실에 남아 연설문을 외우며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어린이에게 정치적 언어 놀이는 지루한 놀이일 뿐이다. 웅변 연습이 반복될수록 교실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강해졌다. 집에 가고 싶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날 기다리고 있을, 흰 털북숭이 새끼 강아지가 보고 싶다. 마을 친구들과 목자놀이도 하고 싶다. 딴생각으로 가득 찼었던 나는 어른들이 만든 정치적 언어 놀이의 규칙에 따르며, 그저 학습된 언어에 맹목적으로 길들여져 갔다.
멀미 나는 교실에서 어린이인 나에게 필요했던 건 정치적 언어가 아니라 감각적 언어의 자유였다. 도랑물에 떠내려 가는 신발을 잡으려 뒤쫓아 가던 일과 빨랫줄에 앉아 지저귀는 참새와 여름 밤하늘의 별무리와 초승달과 마당에 핀 넝쿨 장미에 맺힌 아침이슬로부터 오는 느낌과 감각의 세계였다.
학교에 입학한 후 규범적 언어의 세계로 편입되어 교과서와 교실 안의 언어들을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 나의 허약한 자유는 교실 안에서 길들여지기 시작한다는 것.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규격화된 올바른 어린이로 자라나게 된다는 것.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서 암묵적 동의와 약속으로 꾸며낸 세계에 나는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미래에 어떤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을까? 어떤 이념과 사상을 가진 올바른 어른이 된 걸까?
반공 웅변대회가 시작되던 날, 체육관 강당에 전교생이 모였다. 나는 4학년 2반 대표로 나가 연단에 서서 마이크에 대고 웅변을 했다. 연습한 대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구절을 힘껏 외치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대 뒤 자줏빛 벨벳 커튼 뒤로 퇴장했다. 그날 나는 잘 길들여진 양처럼 올바른 어린이가 된 것만 같았다.
어린이는 어린이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어린이의 첫 번째 의무이고 자유이다. 어떤 정치적 언어와 복종에 의해 만들어진 어린이의 언어는 불행하다. 어린이의 순수한 감정에 정치적인 감정이 뒤섞인다면 어린이의 고유한 정체성은 파괴되는 것이다.
어린이는 미래의 아름다운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을 권리가 있다. 어린이의 순수한 정신은 어떤 정치적 언어 놀이에 의해 타락하기 쉽다. 맹목적인 상태에서 어린 영혼이 지닌 이성의 힘은 정확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나쁜 것과 좋은 것의 구별은 가르치는 어른의 기준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는 것이어서 그 구별이 항상 선한 것도 옳은 것만도 아니다.
어린이에게는 자기 자신의 오감으로 세계를 느낄 자유가 필요하다. 교실 바깥세상에서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낀 것들을 자유롭게 쓰게 하는 것. 나의 언어로 어린이의 정신을 타락시키지 않고 영혼을 부수지 않는 것. 번데기를 찢고 날개돋이를 하는 나비의 고통과 아름다움에 손을 대지 않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된 내가 선생님이 되어 글짓기 교실에서 어린이들에게 베푸는 최소한의 선의였다.
반공 교육이 매년 반복 학습될 때마다 나는 어떤 정치적 언어와 이미지에 길들여진 존재가 되었다. 반공 영화 상영이 있던 날, 우리 반 아이들은 거대한 스크린 앞에 모여 앉아 1987년 대한 항공 kal기 폭파사건을 다룬 영화를 봤다. 폭파 사건은 북한이 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려는 데서 발생한 것인데, 북한 공산당은 사건이 있기 전부터 미리 공작원을 선발하여 용의주도하게 준비시켰다는 것이었다. 공작원으로 선발된 여성은 김현희라고 불리는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비행기에 탑승하여 시한장치 폭발물을 선반 위에 올려놓은 채 아부다비 공항에 내렸던 것이다. 결국 대한항공은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공중 폭파되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비행기가 폭파하자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펄럭이며 불이 붙은 비행기 바깥으로 날아가는 놀랍고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다. 친구들과 나는 너무 놀라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너무 끔찍해서 비명을 지르거나 눈을 감아버리는 친구도 있었다.
반공 영화를 본 후, 그 강렬한 장면들이 잊히지 않았는지 종종 전쟁 나는 꿈을 꾸었다. 6. 25 전쟁이 꿈속에서 다시 발발해 피난을 가고 있었는데, 나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폭탄 터지는 소리와 총소리를 피해 도망 다니다가 깨어나곤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날에도, 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가끔 북한군이 쳐들어 오지 않을까, 정말 전쟁이 나지 않을까, 지레 겁에 질려 불안에 시달리곤 했다.
아이들을 만나 글쓰기를 가르친 지 20년이 되었다. 가끔 아이들은 부모님이 이렇게 저렇게 말씀하셨다며 특정 정당을 지지하며 내게 정치적 입장을 물어오기도 했다. 나는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게는 아이들만의 감각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 그들만의 고유한 세상을 이해하고 그들만의 감각적인 언어로 글을 써내려 갈 수 있게 돕는 일이 중요했으니까.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저녁밥을 먹을 때나, 어느 날 문득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누워 있다가 그날 만난 아이들을 떠올렸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개똥으로는 태어나기 싫다는 아이. 돌덩이로 태어나 계속 부서지고 부서지고 싶다고. 그러면 내가 모래알처럼 많아지잖아요, 하던 아이. 영어시험을 빵점 맞았다고 선생님한테도 혼나고 엄마한테도 혼나겠다며 영어시험지로 비행기를 접어 창문 밖으로 날려 보냈다는 아이. 매일 밥 주면 한 번 먹고 안 먹는다고, 도롱뇽을 상자 속에 가둬 놓고 일주일 굶겨 봤더니 밥을 엄청 먹는다고 앞으로는 일주일 굶겨 놓아야겠다는 아이. 보름달에게 학교 숙제가 너무 많다고 수학 숙제 좀 적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는 아이. 자기가 키우는 앵무새 이름이 사과와 하늘이라며 자기가 이름을 지었는데 하늘이가 더 잘 놀아줘서 더 좋다는 아이. 수업 시간에 제일 싫어하는 수학 교과서만 보면 머리가 헤롱헤롱 해진다는 아이.
어린이는 어린이만의 무궁무진한 삶의 기쁨과 언어와 세계가 있다. 어른이 침입해 빼앗으면 안 되는 그들만의 작은 언어의 정원이 있다. 어느 봄날인가 여름날인가. 공원의 작은 정원에서 아이들은 흙을 만지며 논다. 벌레를 잡고 나비를 쫓아다닌다. 철쭉과 매화나무 화살나무와 앵두나무가 자라고, 수국과 수선화와 자목련과 능금꽃이 피는 그곳에서 저물 때까지 논다. 때가 되면 열매를 따 먹고 두 손에 씨를 받기도 할 것이다.
아름다운 정원에는 표준 텍스트가 없다. 어떤 맹목도 교훈도, 학습된 언어도 없다. 자연의 감정과 질서와 느낌과 감각의 세계를 펼쳐놓은 곳이니까. 감각적인 경험의 언어와 아이들만의 고유한 삶의 문법이 있을 뿐이니까.
어른이 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아름답고 책임 있는 일은 꿀벌이 붕붕거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그들만의 언어의 정원을 빼앗지 않고 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언어로 아이들의 세상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표준 텍스트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선생님. 이렇게 쓰는 거 맞아요? 이렇게 써도 돼요? 묻는 아이 앞에 정해진 글의 형식과 문법에 맞춘 표준 텍스트를 펼쳐 놓지 않는다.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써 보라고 한다. 어린이는 이미 어른이 된 나보다 천재적인 언어 감각이 있으니까. 동시도 나보다 잘 쓴다. 다만 나는 정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열어주고, 막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어 잘 날아오를 수 있게 지켜봐 줄 뿐이다. 수천 번 수만 번의 작은 날갯짓 후에 마침내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갈 수 있게. 그 아이만의 특유한 무늬를 가진 아름다운 날개가 다치지 않게. 어린이에게는 이미 자기만의 세계를 감각하는 더듬이가 있고, 겹눈으로 보는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 좀 느려도 재촉하지 않는다. 허물을 벗고 자기가 날아갈 수 있는 만큼의 비행 속도로 날아갈 수 있게 지켜봐 주는 것뿐.
느린 속도로 날아도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서툰, 지금의 나의 삶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