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와 나, 어쩌면 우리 둘 다 여전히 혼자겠지만
몸으로 경험하는 것들. 이를 테면 내게는 감각기관이 있어 모든 물질적 현상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아침 산책 길에 만난 배지빠귀의 맑은 울음소리에 얼룩진 마음을 씻을 수 있고, 목련꽃 피는 봄날의 풍경을 바라볼 때 환해질 수 있다. 여름의 풀냄새와 수국 향기와 곁에 잠시 머물렀던 사람의 잔향을 오래 담아두고 기억할 수 있고, 살갗을 간질이는 봄바람의 장난질에 기분 좋을 수도, 침이 고이는 무화과 맛에 홀려 여름 내내 탐할 수도 있다.
외로움과 고독은 영혼으로 경험하는 것에 속한다. 그것은 오감을 초월하는 영적인 감각에 의해 지금 나 여기 홀로 있음을 증명한다. 언젠가 목숨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여 이번 생을 사랑하며 살다 존재의 끝에 이르게 되겠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는 데서 오는 사람의 외로움과 고독은 운명처럼 이번 생의 궤도를 돌고 돈다.
“작년에도 혼자더니 올해도 혼자구나!”
사천천 물소리를 들으며 제방 둑길을 걷다가 멈춰 섰다. 물가 근처 바윗돌 위에 두루미가 날개를 접고 고고하게 홀로 서 있었다. 나는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홀로 외로이 서서 널 바라보고, 두루미 너는 어디에서 태어나 여기까지 와서 홀로 외로이 서 있는 걸까.
몇 년 전까지는 사천천에 서 너 마리 두루미가 찾아왔는데, 작년부터 한 마리밖에 오지 않았다. 모두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짝을 찾아 떠났을까. 어느 물가에서 죽어버린 건 아닐까. 청둥오리들은 짝을 찾아 새끼를 낳고 물가에서 노니는데, 두루미만 저 혼자 먹이를 찾는지 긴 부리를 물속에 담그고 있었다. 사진으로 찍어 오래 담아두고 싶었으나 찰칵, 하는 소리에 날아가 버릴까 봐 그대로 두고 보기만 했다. 조금 더 가까이 가 볼까도 했지만 날아가 버리면 못 볼 테니 거리를 두고 오래 머물며 지켜만 봤다. 올해도 너는 짝을 못 찾았구나. 속엣말을 하면서.
언젠가 엄마와 제방 둑길을 걸으며 청둥오리 떼를 구경하던 날이 떠올랐다. 암컷 청둥오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반짝이는 물 위를 떠다니고 있는 걸 바라보는데, 엄마가 말했다.
“수컷은 바람둥이야. 짝짓기만 하고 새끼도 안 돌보고 다른 암컷 찾아간다니까.”
“진짜? 일부일처제 아니었어? 뭐 그래. 지조도 없이.”
엄마와 나는 함께 웃었다.
“엄마, 두루미는 한 번 짝지으면 평생 사랑하다 죽는대. 그래서 나는 새 중에 두루미가 제일 좋더라. 그리고 둘이 오래 산대. 두루미 짝짓기 춤 봤는데 진짜 사랑스럽고 아름답더라.”
두루미 부부의 일생은 시작도 끝도 외롭고 고독한 사랑의 궤도에서 돌고 돈다. 그들은 한 번 맺은 짝을 지키며 함께 새끼들을 돌보며 늙어간다. 어느 양지리 마을에 살던 두루미 부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곳에는 병들거나 다쳐서 날지 못하는 새들을 돌보는 우리가 있었는데, 한 쌍의 두루미 부부도 함께 살고 있었다. 암컷 수컷 둘 다 상처를 입고 회복 중이었는데, 수컷 두루미만 비행할 정도로 회복되어 봄에 시베리아로 홀로 날아갔다. 암컷 두루미는 날개를 크게 다쳐 함께 떠나지 못하고 홀로 남았는데, 다음 해 겨울에 수컷 두루미가 제 짝을 찾아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홀로이다 둘이 되어 시작도 끝도 한결같은 사랑의 일생을 살다 가는 일! 두루미 부부의 성실한 사랑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뛰었다. 그들은 마치 약속된 것처럼 생의 전부를 서로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완성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홀로인 삶에 대해 생각했다. 이곳에서의 생이 끝이 아니라 사후에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다는 천국에 대한 소망과 믿음에 대해서도. 이제 내가 이곳에서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마지막 호흡 때까지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얼마만큼 이루고 완성할 수 있을까. 이번 생과 죽음 때까지 남아있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 이번 생에 무엇을 남기고 때가 되면 떠나게 될까.
불멸하는 삶을, 이름을 남기고 간 고전 작가들이 떠올랐다.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브아르, 바슐라르와 마르셀 프루스트와 카뮈와 조지오웰과 생텍쥐페리와 버지니아 울프와 한나 아렌트, 랭보와 보들레르와 김시습과 이상 등등. 몇 세기가 흐른 후에도 그들은 불멸의 언어로 나의 작은 서재에 배치된 책꽂이에 꽂혀 살아있다.
이번 생의 끝까지 잘 살아야 한다면, 만약 그래야만 한다면, 삶을 낭비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쓸모없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것. 오직 세속적인 성공만을 위해 이번 생을 탕진한다면 이후에 남은 것은 외로움과 고독뿐이겠지.
그러니 나는 잘 살아가는 일, 잘 사랑하는 일, 내 이름에 부끄러움 없이 주어진 나날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일에 몰입하고 싶다. 고전 작가들만큼 뛰어난 작품은 남기지 못하더라도, 의미 있는 책 한 권을 완성하는데 몰입하는 삶에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 이 삶이 영원하지 않더라도. 죽은 후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에 외로움과 고독을 양분 삼아 나는 나를 성실히 잘 길러내고, 잘 살아내는 일에 부지런하고 싶다.
어느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무렵에 창문을 닫으려다 높이 뜬 달을 올려다본 적이 있다. 희끄무레한 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형태로 자라나고 있는 듯도 하고, 이미 완성된 형태를 지워가고 있는 듯도 했다. 삭에서 망으로, 망에서 삭으로. 인생은 끊임없이 달의 주기처럼 차올랐다가 기운다. 사랑도, 예술도 주기적으로 변하는 달의 형태를 닮았다.
몇 년 전 2월 첫날에는 35년 만에 슈퍼문과 블루문이 겹친 개기월식이 있었다. 늦은 밤이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구름이 차츰 걷히면서 드러난 보름달을 구경했다. 구름에 반쯤 가려져 흔들리는 것 같은 붉은 달이 하늘에 매달아 놓은 풍경처럼 걸려 있었다. 생전에 붉은 달은 그날 처음 보았다. 찬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드는데도 창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창문을 닫으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추위에 떨면서 살갗이 에리도록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달구경을 했다. 달은 조금씩 그림자에 가려져 가고 있었다. 얼마 후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집 베란다에 나와 붉게 변한 블러드 문을 구경했을 테고, 어떤 사람들은 과학관에 올라가 탄성을 지르며 망원경과 카메라로 달의 색과 형태를 구경했을 테다. 그날 생전 처음 보는 개기 월식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사람의 인생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면, 하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자정을 넘어 달이 지구 그림자에서 벗어나 개기일식은 끝이 났다. 이제 슈퍼문과 블루문이 동반된 개기 월식을 보려면 2037년은 돼야 했다.
달을 바라보면 외롭고 고독해진다. 그믐달 즈음에 바라보는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 초승달은 어떤 생의 가능성을 열어주어 보름달이 되기까지 점점 자라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무언가를 완성하고 난 후의 생은 차츰 기울어 그믐달의 형태로 되어가다 마침내 사라진다. 그믐달이 되어가는 과정이 더 외롭고 고독하다. 이제 무엇의 형태가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남은 삶의 형태가 조금씩 망각이라는 그림자로 지워져 갈 때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이 그믐달로 접어든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완성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완성하지 못한 채, 기울어가는 사람인 것 같았다. 시를 씀에 있어서도 나는 좋은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한 현실은 때로 슬프고, 외롭고 고독한 일이었다.
달은 공전한다. 이번 생도 공전의 궤도 위에 올려져 있다. 외로움과 고독은 닫힌 고리 안에서 시작과 끝을 향해 돌고 도는 것만 같다.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외롭고 고독한 사람은 이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묶여 있다.
목련 꽃 피는 어느 봄날에 깨어나면 나 혼자였다. 혼자여도 괜찮았다. 조금 외롭지만 나는 씩씩하고, 자기 앞의 생을 위해 태어난 날에 감사했다. 어쩌면 이 우주에 나라는 사람은 유일한 존재이기에 더 외로운 건지도 모르지만. 살아있음의 고독과 아름다움이 내게는 큰 축복이다. 잘 살아있다는 것은 이번 생의 시작과 끝의 의미를, 사랑하며 사는 일과 한 사람의 외로움과 고독을 잘 이해하는 일일 테다.
두루미는 한참 동안 따스한 겨울 햇살 아래 머물다가 커다란 흰 날개를 펄럭거리며 반짝이는 물 위로 날아올라 낮은 비행을 시작했다. 내 시선은 느린 날갯짓의 리듬을 쫓았다. 두루미는 점점 더 높이 날아올라 상류 쪽을 향해 날았다. 엄마는 두루미가 오봉 저수지 쪽에서 내내 지내다가 오후 나절 따뜻할 즈음에 사천천으로 잠깐 내려와 있다가 간다고 했다. 혼자 왔다가 혼자 날아가는 두루미의 아름다운 비행을, 점점 멀어져 점으로 보일 때까지 바라보다가 뒤돌아서서 나는 사천 진리 바다 쪽을 향해 홀로 걸었다. 내일도 봤으면. 내년에도 내후년 겨울에도 봤으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 둘 다 여전히 혼자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