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천천히 안단테로 흐르는 반짝이는 물결 위를 흐르고 흐르면서
배는 물살을 가르며 남이섬으로 향하고 있었다. 홀로이거나 포옹하는 연인들과 노부부, 단체 관광객들과 몇몇의 외국인들, 갓 스물 즈음되어 보이는 앳된 소년 소녀들, 군인과 낚시꾼인 듯한 사람들도 몇 타고 있었다. 모두들 가는 방향은 같았으나 다른 방향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뱃머리 쪽에 서서 점점 가까워져 가는 남이섬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배 끝부분에 서서 멀어지는 선착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인들은 가장자리 안쪽에 서서 서로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인 듯이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어떤 아름답거나 동경하는 풍경 쪽을 향해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두고 온 옛사랑일 수도, 미래의 사랑이거나 현재의 사랑의 풍경일 수도 있겠다.
남이섬까지는 금방이었다. 배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천천히 선착장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바라보는 풍경의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조금 빠르게 혹은 느리거나 아주 느리게. 나는 조용하고 좀 느린 사람이었다.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도 천천히, 사랑에 있어서도 천천히, 서두르지 않았으니 지나가는 풍경도 느린 속도로 흘러갔다.
따스한 햇살 아래서 사진을 찍는 젊은 연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부는 바람에 펄럭거리면서 나는 몇 년 전에 보았던 커다란 타조를 떠올렸다. 방목된 타조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나한테로 곧장 뛰어 왔다. 흠칫, 놀란 나는 거대한 타조를 피해 도망치느라 혼이 났다. 아직도 타조가 살고 있을까. 어쩌다 만난 청설모도 다시 볼 수 있을까. 연인들이 걷고 있을 메타셰콰이어 숲길은 여전히 아름다울까. 그런 지난 풍경을 떠올리며 나는 남이섬 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때는 보지 못했던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될 수도 있으리라.
스물하나둘, 아직 앳된 시절 속의 사진을 꺼내 본 적이 있다. 옛날 내 모습이 궁금해서, 어떤 얼굴 어떤 표정으로 살았었나 궁금해서. 또 무슨 색의 옷을 입고 살았었나 궁금해서 사진첩을 넘겨 본 적이 있다. 머리 모양은 또 어떻게 하고 다녔었는지. 그때 그 시절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었는지 그런 게 궁금해서 과거의 흔적을 찾아본 것이었다.
스물한 살 때 내 머리 스타일은 세련되지 못했다. 앞머리를 반듯하게 잘라 부드럽게 끝을 말았고, 뒷머리는 반쯤 묶어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있거나 가르마를 타 초록색 나뭇잎 모양 작은 핀을 꽂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는 물을 들여 짙은 밤갈색 머리를 했고, 시계는 브라운 색 가죽 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언니가 차고 있던 걸 탐난 내가 졸라서 갖게 된 시계였다. 그 시절의 나는 옅은 브라운 색 면바지에 민트색 여름 니트나 옅은 블루 색상 청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다음 장 사진은 대학 시절 교정을 돌아다니다 함께 문학을 공부하던 친한 언니가 찍어 준 사진이었는데, 나는 분홍색 목티에 고동색 겨울 바지를 입고 벤치에 앉아 있거나, 벽화가 그려져 있는 벽 앞에 서 있었다. 입술을 꼭 다물고, 조금 우울한 표정이었거나 햇살 아래 웃고 있었다.
그 시절에 나를 지나갔던 혹은 내게 입혀졌던 색들은 옅은 브라운색이거나 민트색, 흰색이거나 옅은 블루색이었다. 파스텔톤 색으로 물든 내가 수많은 화소들로 모여 이미지화되어 있었다. 그때 그 시절을 떠나온 앳된 나는 지금 여기에 없다. 이미 지나가 버린 나는 이제 다시 오지 않을 풍경으로 남아 있다. 먼 그곳에 영원히 사진 속 이미지로만 머물러 있다. 다만 나는 오랜 세월 후, 다른 색상에 섞여든 그 시절의 나를 익숙하면서도 조금 낯선 풍경으로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시절에는 정확하게 볼 수 없었던 나의 풍경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어떤 색을 가졌던 사람의 시간이 잠시 반짝였음을, 사진첩을 넘기며 다시 추억할 뿐이다.
어떤 시간 속의 삶은 점묘법으로 그려진 그림 같다. 작은 점들이 모여 내 얼굴의 형태를 만들고 주변의 풍경과 사람들을 만들어 나간다. 가까이서 보면 점들의 집합체이고, 멀리서 보면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져 있는 시간이 만들어낸 인상주의 예술작품 같아 보인다. 어떤 풍경은 무채색으로, 어떤 풍경은 유채색으로 선명하게 떠오른다. 시간은 명암과 점의 밀도를 통해 그때 그 시절의 형태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그 시절의 시간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 살아야 했다. 길가에 떨어진 목련 꽃을 보거나 어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나를 흔들 때마다 나는 가끔 먹구름 낀 흐린 하늘 아래 흑백 풍경으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의 나는 빠른 속도로 늙어갔다. 어느 봄날의 아침에는 귀밑머리가 하얗게 새어 할머니가 된 꿈을 꾸다 깨어나 거울로 내 머리카락을 확인해 본 적도 있었다. 꿈속에서는 시간이 몇십 년이나 빠르게 흘렀다. 젊음은 늙음의 시간을 향해 정방향으로 내달리고, 늙음은 돌이킬 수 없는 젊음의 시간을 향해 역방향으로 내달렸다. 꿈밖의 시간은 내가 가는 곳 어디에서나 같은 속도로 공평하게 흐르는 듯했지만, 나는 시간에게 삶에게 속는 줄도 모르고 잘 속았다.
어떤 곳에 이르면 어떤 사람들의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르거나 더 천천히 흘렀다. 어떤 사람은 더 빨리 성공하여 축제의 시간을 즐기고, 어떤 사람은 실패의 시간을 견뎠다. 나는 자라날수록 성공에 가까운 시간보다 실패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날이 더 많았다. 계획하고, 하고자 했던 일들이 원했던 때에 되지 않았고, 자꾸만 유예되었다. 언젠가 될 거야, 하는 막연한 희망도 부질없고 무의미하게 생각되는 날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시간은 내가 원하는 속도와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어떤 때의 강물은 너무 빨리 흘렀고, 또 너무 천천히 흘렀다. 이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시간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버겁거나 무의미했다. 나는 다르게 흘러가고 싶었으나 방향 감각을 상실한 조타수였다. 방향을 잃게 되면 잃은 만큼의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이 많아졌다. 매 순간순간을 목적을 잃고 떠 있는 배에 의지해 어디선가 순풍이 불어와 뱃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실패한 시간 앞에서 나는 무기력하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방향 잃은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일 수 없다. 더 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도 없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가능성도 사라진다. 그러면 나는 며칠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잠해 있다가 다시 조타실의 키를 잡고 방향 감각을 되살리려 마음을 다잡는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조급해하지 말고, 불안해하지도 말고, 나는 나만의 속도로 기분 좋은 속도로 나아가는 것. 걸어가도, 뛰어가도, 달려가도 나만의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끝까지 가는 것이 의미 있는 거라는 것. 중요한 것은 눈치 보지 않고 진실로 나다운 삶을 진정성 있게 사는 거라는 것. 키를 놓지 않는다면, 내게도 인생이 좋은 것을 주지 않을까 믿으면서 계속 항해를 떠나다 보면 어느새 자기만의 어느 때, 어느 아름다운 섬에 이르게 될 거라는 것. 그곳에서 수많은 화소로 완성한 또 다른 삶의 풍경과 이미지를 보게 될 거라는 것.
조르주 쇠라는 점묘법으로 그린 독특한 화풍으로 자신만의 그림을 남기고 단명했다. 그는 몇 작품밖에 남기지 않고 죽었지만, 그의 천재적 발상은 그만의 천재적 시간을 만들어냈다. 캔버스 위에 원색으로 미세한 점을 촘촘히 찍어 완성된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이라는 작품은 빛과 명암으로 그려낸 점묘화의 새로운 느낌 속으로 감상자를 매혹시킨다.
처음에 점묘법은 어떤 영혼도 감정도 없는 그림이라고 비판받았다고 한다. 출렁이며 반짝이는 물결 위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누군가의 시간은 남과 똑같은 형식과 기법의 시간을 거부하고, 오직 자신만의 형식과 기법으로 흐른다. 그래서 그는 자기만의 예술 기법을 발견하는, 독특하고 유일한 삶의 시간을 발명해 자신이 만들어낸 아름다움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똑같은 시간의 흐름은 없다. 시간을 부리는 재주가 있는 사람은 열등하게 살지 않는다. 재능이 없어서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주어진 크고 작은 재능을 발견하지 못해 독특하고 유일한 자기만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명작을 남길 시간은 짧든, 길든 누구에게나 선물처럼 주어져 있다. 거저 얻은 시간을 어떻게 나만의 시간으로 발명해 갈 것인지는 자신의 세계를 보는 눈에 달려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삶에 있어서는 천재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어떤 창의적인 기법의 시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가 삶의 독특함과 유일함을 완성할 수 있게 하리라.
선착장에서 아주 멀어진 배는 아득히 먼 생의 어느 한 때를 떠나온 것만 같았다. 아주 천천히 안단테로 흐르는 반짝이는 물결 위를 흐르고 흐르면서. 남이섬이 가까웠다. 사람에게로든 꿈꾸는 것에게로든 어떤 장소로든 어떤 아름다운 미래로든지 생의 어느 한순간에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가끔 의문이었으나 어쨌든 긴 여행 중에 무사히 미래의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 모든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고, 삶의 방향도 틀렸다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던 순간도 있었지만, 지금 가고 있는 곳은 옳은 방향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을 작은 품에 다 끌어안고 따스한 햇살 아래 서서 한 사람을 떠올렸다. 지금 이곳에서 내 생애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 풍경을 보게 된 건 기적이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친절한, 눈부신 당신이라는 봄햇살 같은 사람 풍경! 여름에 처음 만난 그 사람 빛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