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 우리, 태어나길 잘했어

서로 사랑하라는 진리가 있는 유일한 이곳에. 축하할 만하지 않은가.

by 김민율

제라늄! 우리, 태어나길 잘했어




가끔 나는 침대에 누워 유리 가가린을 생각한다. 20세기 전 세계 헤드라인 뉴스가 되었던, 흑백 화면 속 그의 첫 우주 비행을 떠올린다. 공중으로 쏘아 올려진 우주선이 불꽃을 내뿜으며 지구 밖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떠올릴 때, 나는 오늘 아침에도 이번 생에 살아서 무사히 귀환한 영웅이길 꿈꾼다.

유리 가가린은 평범한 노동자 계급 출신의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단 농장에서 일했는데, 아버지는 목수였고 어머니는 젖 짜는 여자였다. 그는 열여섯 살 때 제철 공장에서 일하다가 스물한 살에 군에 입대해 공군 조종사 학교에 배치되어 실력을 인정받아 다른 엘리트 비행사들과 함께 우주 프로그램의 일원으로 뽑혔다고 한다. 그 후 최초의 우주 비행사로 선택되었는데, 그는 키가 157cm밖에 되지 않아 공군 비행사가 되지 못할 뻔했지만 오히려 작은 키가 우주 비행사에는 가장 적합한 키여서 선택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코스모드롬에서 우주로 날아오르기 전, 그는 우주로 가는 첫 번째 사람이 된다는 것,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은 새로운 발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며 매우 행복하다고 한 사람이었다.

어떤 날은 크게 불행하지도 않지만, 크게 행복하지도 않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신비로움도 없이 무미건조한 일상의 반복이 계속되기도 하지만, 진부하고 평범한 삶은 있어도 하찮은 삶은 없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우주 비행 궤도를 돌며 이번 생에 온 첫 번째 사람인 것이다. 가장 위대한 인간의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벌써 몇 번째 생일을 홀로 보내고 있는 걸까. 생일날 아침에 엄마가 전화를 했다. 침대에 누워 깨어나 오늘도 무사히 살아있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생일인데 미역국 끓여 먹었니?”

“아니. 그냥 밥 먹었어.”

“혼자 있어도 미역국 끓여 먹어야지.”

“응. 있다 나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면 되지 뭐.”

“그래. 생일인데.”

어릴 적에는 생일 때마다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 아침 밥상 위에 올려 주시곤 했다. 이제 멀리 떨어져 사니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은 내 손으로 끓여 먹어야 했지만, 손이 가지 않았다. 미역국은 먹지 못해도 나를 축하하는 마음으로 집 근처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을 사 먹거나, 내게 작은 선물을 하는 것으로 생일날을 보냈다.

생일날 아침에 나는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경건해진다. 이날까지 살아온 만큼의 세월을 되돌아보며 지난날의 나들을 떠올려 본다. 슬픈 날도 있었지. 아프거나 절망스럽거나 고통스러운 날도 잘 견뎌왔잖아. 잘 지내왔잖아. 이만큼의 나로 살아왔으니 오늘은 의미 있는 날이잖아.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 오래 아픈 날 지나고 아침에 눈 뜨면 이제 좀 살 것 같아, 하던 날도 잘 지나왔잖아.


태어났다는 것은 무한한 우주의 틈새에서 모래알보다 작은 자기만의 생의 비밀이 열렸다는 것이다. 첫울음을 터뜨리기 전, 우리는 모두 감춰진 비밀로 엄마 뱃속에서 다만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 거릴 수 있을 뿐이었다. 캄캄한 우주 속에서, 양수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솜털이 뽀송한 태아들은 얼마나 신비로운 빛이었던가. 나 혹은 당신. 우리는 모두 우주의 태동으로써 바깥세상에 신호를 보내곤 하였던 것인데. 누군가 나를, 당신을, 우리의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우리는 침묵 속에서 기다림의 생을 살아간다.

그러니까 나는 탄생부터 기다림인 것이다. 생명을 향한 기다림에서 시작되어 죽음을 향한 기다림으로 끝나고 말 인생일지라도. 간절하게 태어나기만을 기다렸던,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 단 하나의 나라는 사람의 빛이 세상에 왔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태아 시절만큼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시간이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태어날 때 이미 핏덩어리 고통을 경험하게 되지만, 아기의 눈에 처음 비치는 세상은 태어남과 살아간다는 의미에 관하여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두근두근거리는 심장처럼 그저 세상은 두근두근거리는 자기만의 생의 리듬을 보여줄 뿐인 것이다.

첫 두근거림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후, 때로는 세상에서 겪어야 했던 병과 슬픔과 절망으로 병원에서 지하철에서, 혹은 버스 정류장이나 사람들이 붐비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눈물에 섞이는 시간이 더디게 갈수록, 고통의 몸이 점점 자라나 감당하기도 버겁게 거대해질수록 첫 두근거림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욕망이 커다래져 갈 때도 있었다.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육체와 영혼이 맨 처음이었던 때로 돌아가서 다시 처음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갖고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다른 생의 리듬으로 두근거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한 때 그런 자궁으로의 회귀 본능이 꿈틀거리던 시절을 지나는 동안 몇 번의 생일이 지나갔을까.


병을 얻고, 못난 나여도 아름답다고 어여삐 여겨 주시며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신이 곁에 있기에, 나는 다시 첫 두근거림을 기억하며 지상에서의 몇 번째 생일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다. 어느 날 문득,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고 축하해 주는 일. 내가 나를 기억하고 오늘까지 살아 있어 주어서 고맙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는 일. 그런 날이 인생에 몇 번 온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몇 명의 선한 자매들이 카페에 모여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켰다. 같은 신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안에는 어떤 선한 빛과 친절과 사랑의 테두리가 둘러쳐져 있다. 그들은 나조차도 잊어버리고 지나갈 뻔했던 날이 많았던 나의 탄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감사와 기쁨과 사랑이 선한 공동체의 테두리 안으로 번질 때 시간의 순수한 빛이 우리를 에워싼다.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손뼉 치며 우리는 함께 기뻐하고 웃는다.

물리적 시간 안에서 우리는 한 번 밖에 태어나지 못하고,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필연적인 운명을 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에 대한 가장 절실한 순간을, 처음 사랑에 빠져 두근거리던 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고, 사랑만이 인생의 진리라고 믿게 되는 순간 속에 나는 살게 되는 것이다.

태어남도 죽음도 결국엔 이 생에 잠시 왔다가 가는 사람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의 축제로 완성되는 것. 이제 내게는 몇 번의 음력 생일이 더 남아 있을까. 어떤 생이 비밀을 감추고 설렘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어제는 실패했지만, 오늘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게 숨이고, 희망이다. 이번 생에 대한 사랑과 성실성이 나를 더 먼 곳으로 데려가 어떤 반짝이는 세계를 보여줄 거라 믿으니까. 생일날 아침에 엄마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듯이, 생의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부지런히 따라가 볼 것이다.


볕 드는 봄날의 담장 아래에 누군가 제라늄 화분을 옮겨 놓았다.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제라늄일 뿐인 제라늄이 비로소 꽃을 피웠다. 제라늄! 우리, 태어나길 잘했다. 서로 사랑하라는 진리가 있는 유일한 이곳에. 축하할 만하지 않은가. 제라늄과 나의 한 번뿐인 이번 생을! 작디작은 모래알만 한 생일지라도. 영원 속의 눈 깜박할 한 순간만 살다 갈지라도. 이번 생을 선택한 적 없고, 태어나야만 살아가야만 했더라도. 제라늄! 봄볕이 따스하다. 오늘은 우리의 생을 축하하자! 병들어 죽지 말고, 내일 아침에도 볼 수 있게. 안녕? 인사할 수 있게. 볕 드는 봄날의 담장 아래에 잘 살아있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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