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예뻤다

당신의 엄마는 어떤 리듬 어떤 이미지 어떤 서정으로 쓰인 시적 울림일까

by 김민율

엄마는 예뻤다




엄마와 나는 똑같은 시계를 차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조금 멀거나 가까운 거리와 시차가 있었다. 엄마가 살았던 시대의 삶을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에게 한 번도 말한 적 없었던 비밀을 내게 털어놓는 어느 날의 엄마에게도 첫사랑의 과거가 있었다는 걸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내게 현재의 엄마일 뿐이었다.

몇 해 전 겨울, 강릉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였다. 엄마와 둘이서 거실에 앉아 귤을 까먹는데, 엄마가 첫사랑 이야기를 했다. 엄마의 첫사랑이라니! 뜻밖이었다. 나는 조금 놀랐고, 가슴이 뛰었고, 엄마가 궁금했다. 엄마가 말했다.

“첫사랑은 잊히지 않지.”

“엄마도 첫사랑 있었어?”

“그럼. 나도 첫사랑 있었지. 스물한 살인가 그랬지. 내 오빠 친구였는데,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약사였어. 결혼하자는 거 내가 자신이 없어서 안 했어. 나는 배운 것도 없고. 그 사람하고 살면 바람피우고 할 것 같아서. 아예 나는 시골로 들어가 살 생각했어. 일만 하고 성실한 사람 만나서 살아야겠다 했는데.”

“아빠는 그래서 만났구나.”

“그렇지. 잘 만났지. 열심히 일하고, 우린 잘 살았지 뭐.”

“응.”

“나는 아빠 잘 만났지 뭐.”

만약 과거의 엄마가 그 사람이랑 결혼했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겠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엄마는 내게 다른 리듬 다른 이미지 다른 서정 다른 울림을 가진 시였고, 고전이었다. 몇 세대를 거쳐 온 새로 번역되어야 할 슬픈 서사였다. 과거 적 아가씨였을 때의 엄마와 할머니가 돼버린 현재의 엄마 사이에는 내가 다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이야기가 어떤 리듬과 리듬 속에서 변주되고 있었다. 내 얕은 언어로는 다 표현 못할. 그래서 나는 어느 여름의 끝 무렵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서 엄마의 말로 엄마를 받아 적는다.

“나, 초등학교 합격했다. 내가 너한테 자랑하려고 전화했잖아. 합격하고 댕겨야지 좀 마음이 편하지.”

“응. 엄마 졸업장 이제 나오겠네.”

“응. 겨울에 한다는 것 같더라고. 학교에서 선생이 안부 차 전화 드렸다고 전화했는데. 또 교무는 전화와 가지고 평창으로 시 쓴 거 상 받으러 가라고 하는데.”

“엄마, 가기로 했어?”

“4일 날 개학하면 학교 가보고. 가는 사람 있으면 가고. 거기 혼자 어떻게 찾아가. 아무래도 가는 사람 있겠지. 학교에서 데리고 갈려나.”

“엄마, 좋겠다.”

“내가 초등학교 졸업장을 딸 수가 있다니.”

“그러게. 올해 3월에 시작했는데, 두 번 만에 그렇게 했네.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민욱이 엄마가 계속 그러는 거야. 아유, 너는 돼. 돼. 다 합격해. 그러더라고. 점수가 모자라는데 어떻게 돼. 아니야. 축하해. 축하해. 그러는 거야.”

“언제?”

“엊그제도 주막거리 내려가는데 그러는 거야. 점수가 모자라는데 어떻게 돼. 아니야. 너는 돼. 돼. 돼. 그날 비가 많이 와서 갈까 말까 하다가 갔단 말이야.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계속 망설이다가 콜밴 아저씨 오지 말라고 대문 앞에서 전화 들었는데 내려 오더라니. 비가 많이 쏟아져서 내가 가지 말까 하고 오지 말라 하려 했더니. 아휴. 모르겠다. 차가 내려오니 일단 가보자 하고 옷도 여벌 하나 다 넣고 신발도 하나 넣고 이래 가지고 갔는데. 교실 들어가니 짐이 많네 이래. 아니, 제가 옷을 넣어 갖고 왔어요. 옷이 젖으면 갈아입으려고. 그랬지. 어떤 여자는 차를 저기 대놓고 왔더니 치마바지를 입었는데 바짓가랑이가 다 젖은 거야. 그 젖은 거 입고 시험 보더라고. 그런 사람도 있었는데. 난 콜밴 타고 가서 바로 거기다 내려놓고 가니까 옷도 신발도 안 젖었어. 올 때도 그렇고. 돈 한 3만 원 없애니 편하게 왔다 갔다 했지 뭐.”

“그래도 합격했잖아.”

“합격했으니 내 소원풀이 했다. 이것도 다 네 아빠가 먼저 가는 바람에 이런 것도 이루지. 있으면 병시중 하느라 내가 이 꿈이나 꾸겠나. 꿈도 못 꾸지.”

“상은받으러 가봐. 여럿이 같이 가면. 자신감도 생기고 그것도 경험이잖아. 그런 경험을 해 본 적 없잖아. 상은 무슨 상을 줄려나.”

“안 가도 간 사람들 편에 갖다 주지 않겠나. 4일 날 학교 가보고 갈만 하면 같이 따라가보고.”

“네 명이 간다고?”

“응. 그래서 내 것 읽어 보고 완전 시라고 기자도 그러더래. 신문 기자가 이 분은 누군지 아주 나이까지 묻더라고. 선생이 이건 진짜 시네 이러면서.”

“상패도 주겠지. 한 번 가서 받아 봐. 뭔 상을 주는지.”

“뭔 상을 그런 좋은 거 주겠나. 종이 쪼가리 하나 주겠지. 너네 초등학교 다닐 때도 그런 것도 없었잖아.”

“나는 종이 쪼가리로 상을 받았지. 글짓기 상을 워낙 많이 받았지. 초등학교 때 하도 상을 많이 받아서 글짓기 대회하면 선생님이 운동장에서 조회할 때 오늘 상을 받으니까 조회 시간 때 교장 선생님한테 받아야 하니까 맨 앞 앞줄에 와서 서 있으라고.”

“응. 그러더라고?”

“응. 맨 뒤에 서 있으면 뛰어 나가야 하니까. 맨 앞에 서 있으라고. 선생님은 상 받는 거 알잖아. 그래서 그게 항상 기억이 나. 글짓기 상 이렇게 발표하면 친구들도 내가 다 받을 줄 알고 니, 또 받겠다. 그랬지.”

“그러게. 그렇게 받아도 나는 상을 받는지 뭘 받는지도 모르고 살았잖아.”

“그거 다 가지고 있잖아.”

“니 가지고 있나?”

“응.”

“니 다 가져갔나?”

“응. 강릉 집에 있던 거. 거기 놔두면 없앨 것 같아서.”

“아빠가 하나도 안 없앴지.”

“내가 다 관리해야겠다 싶어서. 초등학교 때랑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받은 거랑.”

“모르고 살았잖아. 사는 데 바빠서.”

“그렇지.”

“맨날 일로 뛰고 절로 뛰고. 내가 글자 하나 볼 생각이나 하고 살았겠나. 일 그만두고 나니까 텔레비 자막에 글자 나오는 거 보니 어, 배울 수 있겠다. 내가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려고 작심했지. 인제는 뭐 다 보니까. 모르고 사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아나. 참 챙피스럽고. 모르고 살면 챙피스러워. 어딜 가서."

“그래도 학교라도 가니 세상을 넓게 살잖아. 넓게 보고 상도 받으러 가고.”

“그래. 상이라고 우스워 가지고. 난 못 가는데요 이랬더니. 아 그러시다고요 이래. 그 선생이 그러겠다. 뭔 상 준대도 못 간다 그러나 이러겠다.”

“다른 할머니들은 가신대?”

“몰라. 가겠지.”

“엄마도 가. 상도 아무나 안 줄 거 아니야.”

“여럿이 간다고 하면 가고, 난 어디 그런데 다니는 게 싫어. 근데 왜 평창으로 오라 그러나.”

“평창에서 성인 대상 뭐 글짓기 공모전 했나 보지. 거기에 선생이 보냈는데 뽑혔나 보지.”

“난 딴 건 몰라도 그 검정고시 시험 본 거나 됐으면. 속으로 어떻게 재수 좋아서 하나 더 맞았으면. 근데 내가 맞춘 것도 몰라. 집에 와서 맞춰 본 게 어느 게 맞았는지 틀렸는지 그것도 몰라. 아무리 답을 적었다 해도. 그러니 모르는 거야. 그날은 정신없이 왜 그랬는지. 왜 틀린 자가 있으면 고치고 싶으면 손들고 하면 되는데. 처음에 전번에 4월 달에 한 거는 다 했으면서 뭐 그런 얘기도 안 해주니까. 무조건 시간 돼서 보라 하니. 가슴이 쿵쾅거리고 머릿속에서 얼마나 쿵쾅거리는지. 아유, 심장이 뛰고 애먹었네야. 보느라고. 근데 내가 학교 다니니 그런 데 가서 시험도 보고 하지. 안 그러면 집에 틀어 박혀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나. 그런데 가면 재밌는 얘기도 듣고. 좀 왔다 갔다 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버스 다니면 좋은데.”

“여기 마을버스가 다니지만 기다렸다 타고 와야 하니까. 아침엔 9시 차 타고 가면 시간 딱 돼.”


한 달 전에는 저녁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일기 쓴 거 있지?”

“응.”

“선생님이 다 모아 가지고 쪼그만 책자를 만들어 주더라. 사진도 찍고. 나하고 할머니들 다 쓴 거 모아 가지고 묶어서 해줬어.”

“시집으로?”

“응.”

“난 뭐 짧게 짧게 썼으니까. 이 선생이 내 시는 뭐에 감동받았냐면. 그래서 신문에다 싣는다고. 기자한테서 자꾸 선생한테 전화 오더라니. 오늘도 우리 시를 싣는다고. 그래서 내 나이를 묻더라. 팔십 두 살 먹은 할머니 둘 하고 나하고 나이를 묻는 거야. 아유. 우린 신문에 싣는 거 싫다고 그랬더니 그 할머니도 그랬더니. 그럼 다른 사람 얼굴을 찍어 넣는다고. 내 시 하나 쓴 거 읽어 줄게.”


마늘밭


점심을 먹고 밭에 나가서 보니

마늘이 파릇파릇 올라온다

이걸 보니 떠오른다

이런 만물들은 봄이 오면

잊지 않고 올라오는데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이상할까

사람은 한 번 가면 오지 못하는데


“이걸 보더니 그 사람들이 진짜 이거는, 이 아줌마는 한 장면을 시로 썼네. 이러면서 기자가 감동하더래. 이 선생도 시래. 오늘 아침에. 내가 맨날 늦게 가거든. 들어가니까 아줌마들이 막 박수치는 거야. 옥동 씨. 시 너무 잘 썼어. 이러면서 그러는 거야. 글을 너무 잘 썼어. 이러면서. 뭔 소리야 내가 이랬더니. 선생님이 저 아래 내려가고 없어. 선생님 말로 그러는데 너무 잘 썼대. 시래. 한 편의 시래. 이러면서. 요전 날에도 나보고 그러더라고. 선생님도 그러는 거야. 나는 이 시가 제일 마음에 든대. 몇 개 중에서 이게 제일 마음에 든대.”

“엄마가 글을 잘 쓰네. 엄마, 계속 써 봐.”

“내가 좀 배웠으면 다 하지. 그래서 아줌마들이 이러는 거야. 어머 저 집은 뭐 시처럼 다 썼네. 재주가 있네. 애들도 다 재주가 있겠다. 이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무 소리 안 했지.”

“딸이 시인이라고 그러지.”

“그러려고 하다가 뭐 자랑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팔십 두 살 먹은 할머니가 나하고 같은 종씨 거든. 이 씨야. 전주 이 씨야. 그래서 양반의 자식은 달라. 이러면서. 저러인. 내가 이랬더니. 요전에 나랑 둘이 있을 때. 딴 사람 있을 때는 괜히 자랑한다고 그럴까 봐. 상놈의 성 가진 사람은 겪어 보면 다 달라. 그래서 오늘도 이러는 거야. 나는 책을 전혀 안 뒤다 보니 뭐 글 쓰는 걸 알 수가 있나. 이러는 거야. 그 할머니 옛날에 초등학교 졸업했대. 근데 이제 심심하니 나오는 거래. 나와서 그래도 옛날에 배웠으니. 수학 같은 건 잘하더라고. 우리보다 낫고 말고지. 나는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 가지고. 너한테 천까지 써 달라고 해서 두 어번 써 보고 갔으니. 그래도 일십백천만 이거 쓸 줄 알지. 안 그러면 진짜 거기 가서 그것도 못 쓰면 뭐 하나. 큰일이지. 그래서 내가 이 책을 받아 들고 속으로, 그래도 내가 여기라도 오니까 이런 거래도 이렇게 다 실어보고 이러잖아. 혼자 참 가슴이 뭉클하더라. 내 거가 제일 첫 장에 실렸어. 일기 또 써 오래요. 아유, 또 쓰라고요. 할머니들이 다 그래. 안 쓰니 좋고 편한데. 쓰셔야 돼. 그래야 글이 늘어. 그래. 선생님이 일주일에 두 번 쓰는데 뭐 그렇게 그거 하냐고. 내가 그래도 이렇게나마 글씨를 쓸 줄 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내가 안 다니면 이런 것 어디다 써 보고 내 보고 이러겠나. 시 담쟁이 알아? 도종환. 이 시인이 마누라가 죽었대. 그 사람 시를 선생이 겉장에 올렸는데. 그 선생이 나, 참 이 사람 시를 좋아한대. 여기다 올렸는데. 알아? 겉표지에 좋아서 올렸대. 선생이.”

“응. 접시꽃 당신 썼잖아. 그 사람 시집 사서 내가 보내 줄까? 엄마 한 번 읽어 볼래?”

“응. 있으면. 나 참 책을 많이 봐서 이제는 좀 드문 드문 읽어서 그렇지. 이제는 조금 빨라졌어. 자꾸 책을 보니까. 그래서 선생이 나보고 이러는 거야. 국어를 거기서 배우는데 이해를 참 빨리 한 대. 그래서 내가 속으로 내가 책을 많이 보니까 그래도 내가 그 뜻을 이해를 빨리 하는가 보다 속으로.”

“엄마, 꽃이나 나무 보고 써봐. 새 보고 써도 되고. 근데 엄마 제비는 이제 안 오지?”

“응. 안 와. 봄에 와서 날아댕기다가 이제 안 와. 왜냐하면 한 번 와서 집을 지으려고 하니 새 새끼가 얼마나 지랄하는지 새 새끼가 자꾸 쫓은 대니. 지가 들어앉으려고. 그래 가지고 참새 새끼가 저녁때 제비집에 와서 자잖아. 그래서 내가 확 헐어냈어. 똥 싸놓은 거 보면 다르거든. 그래서 참새 새끼들이 오는구나. 그래서 없애 치웠어. 제비도 오지 말아야 돼. 현관문 앞에 지어 놓으니까 추접스러워서. 그래서 언제 오는 거 내가 이래 쳐다보면서, 야, 너네 거다 집을 지으면 어떡하나. 저쪽 가서 지어라. 이랬더니 그만 안 짓는 거야. 저쪽 가서 지어야지 거다 지으면 새끼들이 배기나. 덥고. 이래 쳐다보고 그랬더니. 아빠가 없고는 제비가 안 와. 아빠 있을 때 제비를 얼마나 위했나.”

“그것도 새들이 다 아나 보다.”

“다 알지. 알겠지. 이쪽밖에 장딴지 있는데 그쪽 구석에 와 지으면 되는데 거기 지으니 새 새끼가 자꾸 건드나 봐. 지으려고 지지배배 하고 갖다 붙이더니 고만 안 짓더라고. 참새 새끼가 가만 두나. 새끼 까놓아도요. 참새 새끼들이 막 먹으려고 지랄하지. 잡아먹으려고 하면 어미 제비가 그 앞에 와서 막 돌아쳐. 그면 아빠가 막 작대기를 갖고 참새 새끼 쫓으잖아.”

“그래서 키워 가지고 가고 그래?”

“응. 참새들이 못 됐다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마 홀로 강릉집에 살고 계셨기 때문에 외로운 엄마와 하루에 한 번씩 전화 통화를 했다. 엄마는 내가 잘 살아있는지, 나는 엄마가 잘 살아 계시는지 멀리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가 초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을 하고 며칠 후 저녁에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었다.

“민욱이 엄마가 뭐라는 줄 아나 나보고? 니 이제 글씨 다 아니 어깨 쭉 펴고 댕겨. 그래 내가 언제 기울이고 댕겼나 이랬더니. 내가 단지 그랬지. 글 모르니까 어디 가면 뭐 쓰라 하면 겁나고 하마 벌벌벌벌 떨리고 이래. 오늘 공부하러 어제 온 할머니가 나하고 동갑인데 하나 들어왔어. 근데 여기와 앉아 있으니 심장이 막 떨리고 죽겠대. 나도 그랬다고 그랬더니까 오늘도 그러는 거야. 떨려 죽겠다고. 그래도 수학 곧잘 하던데 뭐. 나보다 낫더라 수학하는 거 보니. 자기는 검정고시 합격하는 게 원이라서 왔대. 졸업장이 별 것도 아니지만. 근데 일기를 써서 갖다 줬더니 어제도. 내가 요새 방학 때 써 가지고 갔더니. 오늘 아침에 한 세 장 읽어 보고 날 보고 그러는 거야. 이 분이 일기 쓰는 건 진짜 내가 마음에 들어요.”

“선생님이?”

“응.”

“한 번 읽어 봐 봐.”

“가만있어 봐. 제목 밭에서 이래 놓고,”


오늘은 배추를 심었다.

심다 심다가 떠올랐다.

남편이 있으면

다시 밭을 갈아서 심어야 하는데

내가 장포 괭이를 쪼아서 심으려니 너무 힘들었다.

사람이 없으니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 좋네”

“이런 일기는 진짜 마음에 든대. 사람이 꾸밈이 없이 살아온 내 그걸 썼기 때문에. 또 하나는 밭 이래 놓고는,”


무씨를 심고 나니

비둘기가 씨를 파내어 먹으려고

밭에 와서 앉는다.


옛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있다.

비둘기는 눈이 안 보인다고 하던데

어떻게 저렇게 잘도 알고 와 찾아오는지 신기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나 짐승이나

살아남으려고 난리들이다.


" 또 이거는 산."


오늘 아침에는 산에 도토리가 잘 달렸나 하고 갔더니

아직 시늉만 생겨서 쳐다봤더니

다람쥐가 먹고살려고

나무에서 왔다 갔다 살피느라 정신없다.

나 역시도 먹고살려고 살피러 갔으니

참 내 마음이 좀 그랬다.


“엄마, 다 잘 썼다. 다 시 같다.”

“그래? 그래서 선생님이 그러는 거야. 이 분은 일기를 쓴 게 다 하나의 시라고. 내가 그래서 이분 글을 참 좋아한다고 그래.”

“그래? 엄마. 열심히 써봐. 나중에 묶어서 책으로 만들어도 되겠다.”

“그래서 내가 저기다가 내가 살아온 걸 조금씩 쓰고 있는데. 아 그것도 쓸려니 고개가 아파서 못 쓰겠다. 골이 아프고 머리가 아파서. 덥긴 하지. 조금 쓰다가 저 책상에다 놔뒀어. 생각해서 옛날 살아온 거 자꾸 써야 되는데. 생각해서 써야 되는데 급하니까 그냥 앉아서 생각나는 대로 썼더니 글이 왔다 갔다지 뭐. 차근차근히 이어서 써야 되는데. 이 말했다 저 말했다 하면 안 되잖아.”

“시로 쓰는 거 아니야? 산문 쓰는 거야?”

“응. 긴 글. 이어서 쓸려고. 내가 살아온 거.”

“대단하네. 이제는 그런 것도 쓰고.”

“아니, 어떨 땐 마음이 슬프고 앉아 있으면 우울하면은 내 살아온 그게 자꾸 떠오르는 게. 한 번 써 보자 해서. 요전에 시작해서 조금 쓰다 말았어. 여기는 내가 낼모레 갖다 낼 거. 옛 생각.”


어릴 때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산골 삼척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이야기하던 생각이 났다.

산골에서 살 때는 무서웠다.

밤만 되면 호랑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단다.

그리고 진짜 있었던 일이다.

이웃 아주머니가 친정에 다니러 갔다가

호랑이한테 물려 갔고

집에서 기다려도 오지 않아 찾아가보니

저고리를 벗겨서 나무에다 걸쳐 놓고 사람은 없었단다.


“엄마 실제 있었던 얘기야?”

“응. 외할머니가 얘기했어. 진짜래. 이거 내가 일기로 썼어. 호랑이가 물어 갔는데 친정 길로 집안사람이 자기네 집에서 안 오니까 찾아 나섰지. 산길로 가다 보니까 저고리는 나무에다 걸쳐 놓고 사람은 없더래. 그래 가지고 그 집에서 동지 때만 되면 팥죽을 쒀서 함지박에다 내놓으면 호랑이가 먹고 간대잖아.”

“왜 그렇게 해?”

“그게 방법이래. 옛 어른들이. 호랑이가 먹고 가는 게 죽은 사람이 와서 먹고 가는 거지. 호랑이가 다 뜯어먹었나 봐. 실제 그랬대. 외할머니가 얘기하더라고. 그 옛날에 내가 큰집에 가니까 얘기하더라고. 금집이라고 그 아래 있어. 그 집 며느리가 친정 가다가 그랬다잖아. 옛날에는 그랬대. 그래서 외할머니가 얘기하던 게 떠올라서 오늘 썼어. 그래 이 여자들이 내 거는 다 시라고. 나보고 똑똑하다고. 어떻게 그래 잘 쓰느네. 아 그래 내 배꼽 잡았네. 잘 쓰긴 뭘 잘 써. 나 생각나는 대로 썼지. 여기 또 하나 아빠 그걸 하나 또 썼는데.”


집에서


오늘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니 어두웠다

그래서 남편 생각이 났다.

매일 일찍 일어나 문 앞에 앉아

날이 언제 밝아지나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 짓을 하고 있다

습관은 어쩔 수 없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선생이 이걸 읽더니 그래. 이런 건 정말 꾸밈없이 어떻게 이렇게 잘 짓느네. 그래 한바탕 또 웃었잖아. 그래서 오늘은 개학이라고. 한 시간 동안은 이런 거 읽고 얘기하고 이랬어. 딴 사람들 것도 읽고. 그래서 날 보고 선생이 이 분 글을 내가 참 좋아한다고. 그래서 내가 속으로 어머, 내가 저런 글 쓴 게, 저 글을 알아보고 읽어 준 게, 내가 그래도 글을 제대로 썼구나 속으로. 옛날 살아온 거 이런 거는 안 써. 내 속을 다 보여주는 것 같아서. 저 공책에다 내 혼자 가만히 써 놓지. 일기를 두 번 써오라는 데 귀찮다. 그 선생 나올 때는. 처음에는 내가 일기 써오라고 해서 쓸 게 없다고 딱 두 줄이나 세 줄을 썼거든. 오늘 그것도 보여 주더라. 이 분이 처음에 두 줄 세 줄 써오더니 점점 늘어가서 점점 많이 써오지 않느냐고. 새로운 아줌마들 보라고. 처음에는 다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쓴다고.”


엄마는 가끔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쓸쓸한 뒷모습으로 앉아 알밤 껍질을 까다가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하고 싶은 공부나 실컷 해봤으면 좋겠어.”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은데?”

“노래 가르쳐 주는 강사. 노래도 가르치면서 돈도 벌고 그런 사람 보기 좋더라고.”

엄마는 노래를 좋아했고 가수처럼 잘 불렀다. 아가씨 적에는 이미자나 나훈아처럼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도 했다. 과거적 아가씨였을 때의 엄마와 할머니가 돼버린 현재의 엄마 사이에는 내가 다 알지도 못할 긴 이야기가 빼곡했다. 엄마라는 신화 이전의 엄마는 내게 침묵으로만 존재했다. 말해지지 않은, 혹은 생의 어느 순간에 문득 말하고 싶은, 그러나 어떤 비밀은 영원히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로만 간직해 두는 게 더 아름다울 과거의 엄마들. 당신의 엄마는 어떤 리듬 어떤 이미지 어떤 서정으로 쓰인 시적 울림일까.

나는 엄마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와 시차를 좁히며, 내 앞에 펼쳐진 엄마를 읽는다. 첫사랑에 빠진 스물한 살의 엄마를. 초등학교 검정고시 문제집을 풀던 엄마를. 교자상 앞에 앉아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을 베껴 쓰는 엄마를. 거울을 보면서 늙으니까 자꾸 쭈글쭈글해지고 못생겨진다는 엄마를. 당신과 나의 엄마이면서 동시에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엄마만의 고유한 이야기로 살아온 엄마를. 때로는 우울의 리듬으로 슬픔의 리듬으로 경쾌한 리듬으로 장엄하고 웅장한 리듬으로 가난의 리듬으로 첫사랑의 리듬으로 살아온 엄마를. 한 때 아이였고, 소녀였고, 여자였던 엄마는 예뻤다. 미래에도 내게는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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