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길이 옳은 길이 되게 하라.
"그러게 내가 집 가까운 중학교 간다고 했잖아."
아이는 1학년 내내 자주 울었다.
그 와중에 엄마 마음 아플까 봐, 표현을 길게는 못하고 딱 그 정도만 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얘는 어려서부터 '아프다'는 소리도 잘 안 했다. 어쩌다 '아프다' 하는 날은 열이 이미 39도가 넘는 날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잘 참는 애였다. 그런 애가 '원망'섞인 목소리를 낸다는 건, 내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라는 게- '느껴졌다'.
1학년이 얼마 안 남은 12월, 나는 쓸 수 있는 최대한의 체험학습일을 끌어다 신청했다. 아이가 지쳤고 쓰러질 것 같다는 게 진짜 이유였지만 표면상 체험학습 활동내용은 '친인척 방문'이라고 썼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진짜로 지척에(차로 5분 거리에) 조부모님 댁(이라고 쓰고 시가라 읽는다)이 있었고, 이제 중1 겨울, 초3 겨울을 맞은 아이들을 제 아빠랑 같이 보냈다. 겨울 몇 달 만이라도 따뜻한 곳에서 지낼 최소한의 권리가 적어도 아이들한테는 있다고 생각했다. 바닥난방이 되지 않는 비주거용 오피스텔. 난방공사를 중간에 하는 집도 어쩌다 있었지만 우리는 예외였고, 밖에 나가면 티도 나지 않는 집안의 냉기를 여러 해 버텼으니까, 그 해는 시가에 보내 어른들께 아이들을 마주하게 했다. 어른들은 마지못해 들이셨지만, 그 해는 아이들이 난방되는 아파트에서 겨울을 지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겨울이 됐다. 자신들의 몇 달 불편함을 아이들의 십 년이 넘는 불편함보다 크게 느끼는 할아버지 할머니라니.
여러모로 환경이 척박할 적에, 한 사람의 어른이라도 아이들의 지지대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매일 고군분투했다. 식탁도 없는 주거공간에서 '매일' 아침식사를 챙겼고, 텀블러를 세척해 조립했고, 이불을 털고 먼지떨이로 구석구석을 털어냈다. 청소기가 돌아가지 않는 날이 없었다. 좁디좁은 집이 청소되지 않는 날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으니까, 아픈 날에도 빨래를 개고 널었다. 엄마인 나의 말에 힘이 있기 위해서는, 내 모습부터 '주어진 상황에서의 최선' 그 자체여야 했다.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어른의 힘은 생각보다 크고 강했다. 아이들은 쉽게 불평하지 않았다. 작은 일에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알았다. 자매가 서로 의지해 도울 줄도 알았다. 학교에서 받아온 간식을 꺼내놓고 나눠먹으며 웃을 줄도 알았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당연하지 않은 기적 같은 삶이었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나름의 성장을 해냈다. 남들과 비교되는 시간이 왜 없었겠고, 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겠냐마는- 아이들은 그 속에서도 나름의 생기를 잃지 않았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늘 옳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한 길이 옳은 길이 되도록 (순간적이지 않은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