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철학 설계 방법론: 프롤로그

당신은 누구의 설계도로 삶을 설계하고 있습니까?

by 백세주
"어떤 사람에게 정당한 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도 정당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만인을 위해 하나의 도덕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보다 높은 인간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 『선악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정답이라는 이름의 집단적 기만

인류의 역사 내내 수많은 현자와 선지자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제각기 정답을 외쳐왔습니다. 서점에는 자기 계발서가 산처럼 쌓여 있고, 도덕과 종교는 이미 완벽한 인생의 답안지를 작성해 두었다고 호언장담합니다. 여기에 현대의 심리학과 사회학, 정신의학에 뇌과학까지 가세해 표준화된 데이터로 당신을 당신보다 더 잘 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그 수많은 정답 중 단 하나라도 당신의 삶을 구원했습니까?

저 역시 그 보편적인 해결책들을 제 삶에 수없이 이식해 보았지만, 시스템은 수시로 멈췄고 엔진은 과열되었습니다. 눈물은 쉬이 멈춘 적이 없고,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발버둥 치며, 수없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다가, 어느새 깨달았습니다. 그렇구나. 인류가 내놓은 정답들은 '보편적 인류'라는 가상의 모델을 위한 것일 뿐, 오직 나라는 고유한 하드웨어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껴온 남의 회로도가 내 인생에도 제대로 들어맞길 기도하는 건 비겁한 시도입니다. 이제 멈춰야 합니다.


설계자의 선언: '설계'의 관점으로 삶 다시 짓기

들어가기 앞서 밝힙니다. 저는 철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철학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시스템의 뼈대를 만드는 설계자(Designer)이고 공학자입니다. 전자회로 설계를 주제로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수년째 나노미터 단위의 오차와 사투를 벌이며 최첨단 반도체 회로의 핵심 구조를 설계해 온 공학자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공학을 수학이나 과학의 연장선으로 보지만, 그 본질은 완전히 다릅니다. 수학과 과학이 절대적인 진리와 보편적인 법칙을 찾아내는 학문이라면, 공학은 제한된 자원 내에서 어떻게든 목적을 달성해 내는 해결의 학문입니다. 수학과 과학의 진리를 등에 걸쳐 메고, 상황에 맞춰 편리하게 사용하며, 오로지 문제 해결에만 집중합니다. 그중에서도, 공학의 수많은 분야 중에, "설계"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것이 변경할 수 없는 제약 조건인지, 어떤 것이 변경할 수 있는 변수인지 정의하고, 그 상황에서 최적의 성능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학문입니다. 그렇죠. 어떻게든 들어맞기만 하면 됩니다. 엄밀한 과정보다 효과적인 결과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결과가 중요한 학문이기에, 과정의 합리성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탄탄한 논리 위에 만들어지지 못 한 방법론은 효과적인 결과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일단, 성공적인 설계를 위해서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봅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니,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지?" 그에 대한 답은 너무 다양합니다. 행복, 성공, 명예, 건강, 사랑, 가족... 우리가 흔히 쫓는 것들, 하지만, 이런 가치들은 사람마다 상상하는 모습이 제각각인 막연한 대상입니다. 흐릿한 목표 위에는 절대로 탄탄한 토대를 쌓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호한 수사들을 모조리 해체하였고, 그 결과, 어느 누가 보더라도 동일하게 인지될 수 있는 실질적인 출력값 '쾌(快)'를 설계의 목적으로 설정했습니다.

한 개인의 인생 전체 수명동안 얻을 수 있는 유쾌함은 늘리고, 불쾌함은 줄여, 유쾌에서 불쾌를 뺀 값, 즉, 쾌라는 값을 최대화하는 것. 이것이 제가 설계자로서 설정한 명확한 목적함수입니다. 우리는 유쾌하려고 삽니다. 남들을 위해 내 삶을 다 바쳐내며 괴로워하는 삶조차도, 그것이 옳다고, 내 마음에 거리낌이 없다고 느껴지기에 그렇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삶은 쾌가 최대화된 삶입니다. 그리고, 저는 "나" 자신에게 국한하여 나만의 답을 찾는데 우선 집중하려 하기에, 이 목적을 기준으로 설계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글을 함께 읽어갈 여러분들도, 그 설계 과정을 참고하여, 각자의 인생을 대상으로 동일한 설계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물론, 이 목적함수에 동의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각자의 목적함수를 스스로 정의해 보고, 똑같은 방법으로 각자 나름의 설계해 보면 되니까요.


모델링의 역설: 예측 불가능한 나의 미래

인간은 당장 눈앞의 유쾌함과 불쾌함만 따지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내가 느낄 유쾌와 불쾌를 미리 계산해 낼 수 있어야 생존에 유리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내면에 견고한 믿음 모델을 설계합니다. 이 모델의 목적은 아직 겪지 않은 미래의 시나리오를 가상으로 돌려보며, 어떤 선택이 불쾌를 최소화하고 유쾌를 최대화할지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믿음 모델을 학습이라는 방법을 통해 구체화해 나갑니다. 자신의 경험에서도 배우고, 부모님, 친구, 사회, 교육 시스템으로부터도 배웁니다. 그리고 배운 것에 기반에 행동합니다. 이는 행동 방식을 학습해 가며 최적의 보상을 찾아가는 강화학습의 메커니즘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지만 이 지능적인 학습 과정이 인간의 삶에 적용될 때, 치명적인 설계 결함이 있습니다. 믿음에 따라 행동했을 뿐인데, 어떨 땐, 유쾌라는 보상을 받는 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입니다. 때론, 그 보상이 사후 세계에서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게 사실인지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는 걸로 알지만요. 그렇습니다.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지금의 불편함을 견디고, 아주 먼 미래에나 찾아올 나만의 즐거움을 실제로 확인하고 그 결과를 학습하기까지는 지독하게 긴 시간이 걸립니다. 때로는 그게 사실일지라도, 내가 생생히 느낀 유쾌를 보상 데이터로 획득하여 나의 믿음 모델을 업데이트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반면, 많은 사람들, 즉 군집이 함께 찾아내, 글로, 소리로, 영상으로 쓰여 유통되는 세상의 "정답"들은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우리 뇌에 주입됩니다. 하지만 그 정답이 내게 들어맞아 유쾌를 생성하는지 검증하는 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결국, 쏟아지는 "옳다"는 믿음에 대한 정보들은 "나"에게 적합하다는 검증도 채 되지 못 한채, 아직 실재하지도 않는 미래를 담보로 "나"의 믿음 모델의 빈자리를 먼저 차지해 버립니다. 결국 우리는 나만의 즐거움을 예측할 방법이 없는 상태로 수많은 타인들이 설계한 믿음 모델 위에서 인생을 공회전시키게 됩니다.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 자크 라캉

설계 원칙 제안: 직시, 의태, 그리고 도약

이 뒤틀린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저는 세 가지 단계적 전략을 제안합니다.

첫 번째는 직시, 무엇이 세상이 주입한 정답이고, 무엇이 나의 고유한 감각인지 가려내십시오. 내게 사실이었던 것들이, 실제로는 사실로 "믿고" 있던 것들이 아닌지 점검하십시오. 사실에 기반한 것도 아니고, 내 고유한 감각에 기반한 것이 아닌 것들은, 그저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조차 내가 만든 게 맞는지도 점검해야겠죠. 남들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를 웃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집요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나의 "쾌"에 영향도가 높은 변수들을 골라내고, 그 변수를 제어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설계 방법의 기본이자 시작점입니다.

두 번째는 의태, 우리는 군집 최적화의 혜택을 보며 쉽게 생존하고 있습니다. 설계 기술은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적합한 답을 찾는 것이지, 조건 자체를 바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적자생존하지 못 한 개체는 비정하게 도태시켜 버리는 것이 군집의 논리이기에, 나의 고집스러운 믿음을 들이밀며 저항하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군집의 지혜는 평범한 개인보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내 가죽의 색과 비슷하면서도 마음이 가는 군집의 수풀을 하나 골라 그곳에 숨어 미래를 함께 계획하십시오. 나와 맞지 않는 세상의 믿음과 나를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지만, 세상과 불필요하게 부딪히지 않을 만큼의 최소한의 행동 규칙을 설계하며, 에너지 누설을 막는 것이 의태의 핵심입니다.

세 번째는 도약, 의태로 보존한 에너지는 진짜 유쾌함을 위해 투입하십시오. 유쾌함을 제공하지 않는 요소들은 관심을 줄 필요가 없는 대상입니다. 때로, 의태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내가 세워둔 행동 규칙이 필요하지 않은 귀한 순간이 옵니다. 그 순간엔, 그때만큼은, 부정확한 나의 믿음이 외치는 '옳지 않다'라는 의견은 잠시 묵살해 놓고, 온전히 나의 유쾌에만 집중하는 사소한 죄악을 저질러봅시다. 오랫동안 수풀에 웅크려 사냥감을 기다리던 표범처럼 도약해봅시다. 유쾌는 오랜 기간 인내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적합히 설계해 둔 행동 규칙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믿고, 그 순간을 즐깁시다. 이 과정은 마치 돌연변이 유전자처럼 삶의 진화 방향을 수정해 더 나은 최적점인 대유쾌로 도달하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 됩니다.

이제 이 세 가지 단계—직시, 의태, 그리고 도약—를 당신의 삶을 설계하는 과정에 직접 사용해 볼 차례입니다. 그 과정을 돕기 위해, 제가 적용해 온 사례들을 앞으로 하나씩 소개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각자의 환경에 맞춰 파라미터를 조정하며, 오직 당신에게만 최적화된 유쾌함의 회로를 직접 설계하고 증명해 나가길 바랍니다.


마이크로 클러스터: 한계를 돌파하는 연대의 힘

거대한 군집 시스템 안에서 홀로 개별 최적화를 고수하는 것은 무모한 낭비입니다. 때론, 시스템의 거대한 흐름에 홀로 저항하며 발생하는 자원 소모가 우리가 얻으려는 유쾌함보다 커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만의 '마이크로 클러스터(Micro-cluster)'를 제안합니다.

"지혜가 평생의 행복을 위해 마련한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의 소유다." - 에피쿠로스

이곳은 사소한 죄악을 온전히 공유하는 인생 설계자들의 연대이자, 세상의 잣대가 닿지 않는 안전한 격리 실험장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각자의 고유성을 고백하고 데이터를 함께 검증하며, 혼자서는 막연했던 사소한 죄악을 함께 실행할 동지를 찾습니다. 서로의 실행 데이터를 공유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도약을 지탱하는 백업 시스템이 되어줄 때, 우리의 유쾌함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될 것입니다.

저는 이 연대 속에서 여러분들의 인생철학 설계 조력자가 되고자 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삶에서 발생하는 노이즈를 걸러내고 수율을 높여주는 오류 수정 코드가 되어줄 때,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유쾌함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나와 닮은 주파수를 가진 이들과 연결되어 압도적인 대유쾌를 향한 도약을 시작하십시오. 이 길은 가장 영리하고 위대한 동행이 될 것입니다.


반갑습니다. 공학자의 시선으로 삶을 다시 설계하는, 백세주입니다.

짧은 프롤로그만으로는 충분히 담아낼 수 없는 설계 방법론의 도출 과정을 철학과 심리학 이론들을 살짝 곁들여가며 앞으로의 연재분에서 생생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유쾌히 춤추며 고된 여정을 함께 떠나봅시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