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고..
어떠한 대상을 바라볼 때, 그 대상 역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때가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에서 그려지는 누군가가 아니라 그리는 화가만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그림과 사랑에 빗대어 여러 방식으로 바라보고 설명한다.
작품 속에서 엘로이즈는 죽은 언니를 대신해 시집을 가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신랑감에게 초상화를 보내기 위해 화가인 마리안느를 고용한다. 마리안느는 초상화를 원하지 않는 엘로이즈를 몰래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때 엘로이즈는 그저 그려야 하는 대상, 객체에 불과하다. 마리안느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엘로이즈를 그리지만, 초상화를 보게 된 엘로이즈는 실망한다. 엘로이즈가 마음을 열고 그림을 그리도록 허락했을 때에야 마리안느는 비로소 만족스러운 초상화를 그려내게 된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바라보죠?"
마리안느는 그림을 그리던 아버지를 따라 화가로 활동한다. 그녀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라는 점에서 주체성을 찾은 인물로 보인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삶을 꾸려나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그녀가 관찰하던 엘로이즈는 엄마에게도, 남편에게도, 마리안느에게도 주체성 없는 대상에 불과해 보인다. 엘로이즈의 하녀였던 소피 역시 신분의 벽에 갇힌 하녀라는 객체로 등장한다.
마리안느의 초상화가 엘로이즈와의 교류를 통해 완성되었던 것처럼 상호 작용은 관계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마리안느, 엘로이즈, 소피만 남게 되자 그들은 각자 주체가 되어 서로를 존중하며 생활하기 시작한다. 세 여성의 상호작용이 느껴지는 그곳은 마치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그들이 보여주는 낙태와 직업, 결혼 등의 에피소드는 당시 프랑스의 시대상, 여성상과 맞물려 더욱 마음을 울린다.
"뒤를 돌아봐."
세 사람은 사랑 그리고 주체성과 관련하여 오르페우스 신화를 언급한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저승까지 내려가 아내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낸다. 그러나 지상의 빛을 볼 때까지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지키지 못해 다시 아내를 잃게 되고, 슬픔에 잠긴 그는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이 신화는 남편 오르페우스의 입장에서 그려진 이야기로, 아내 에우리디케의 주체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엘로이즈는 이를 에우리디케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지상으로 가는 길에서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본 것은 에우리디케가 뒤를 돌아보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리안느와 이별하는 순간, "뒤를 돌아봐"라고 말하는 엘로이즈의 모습은 스스로 이별을 선택한 에우리디케를 떠오르게 한다.
그림과 사랑은 상대가 있는 행위이며, 개인의 관점으로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마리안느가 개인의 관점으로만 엘로이즈를 관찰했을 때 실망스러운 초상화가 나왔던 것처럼, 상대를 그저 내가 사랑하는 대상으로만 인식한다면 그 관계는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없다. 상대방이 나와 같은 수준의 감정에 도달했는지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회하지 말고 기억해"
이별 후, 마리안느는 전시된 그림 속에서 엘로이즈와의 추억이 담긴 책을 발견한다. 엘로이즈는 오페라 공연장에서 마리안느와의 추억이 담긴 음악을 듣게 된다. 그들만이 떠올릴 수 있는 기억에, 두 사람은 웃음을 짓거나 울기도 한다. 이 영화는 사랑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이와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들이 보여준 추억과 사랑을 통해 나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유토피아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