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하나의 길을 택하지 않는다.

비효율 속 회복력

by 강재훈

숲 해설가인 후배에게서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그 안에는 나무보다 훨씬 작은 존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람에 실려 날아가고, 동물의 털을 따라 옮겨지고, 새의 배 속을 지나 이동하는 씨앗들의 이야기다

어떤 씨앗은 땅에 닿자마자 싹을 틔우고, 어떤 씨앗은 몇 해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뿌리를 내린다. 숲에서는 모든 씨앗이 한 번에 싹을 틔우지 않는다. 만약 숲이 한 가지 우월한 종만을 선택했다면, 한 번의 가뭄이나 병충해만으로 숲 전체가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숲의 힘은 효율이 아니라 다양성에서 나온다. 겉보기엔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래 살아남기 위한 치밀한 생존 전략이 숨어 있다.

책을 읽다가 ‘베트 헤징(Bet-hedging)’이라는 말을 알게 됐다. 생태학에서 출발한 개념인데, 한 가지 선택에 모든 것을 걸지 않고 여러 가능성에 나눠 대응하는 생존 전략이다. 요즘은 투자나 삶의 태도를 설명할 때도 자주 쓰인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한 길만 보고 달려온거 같다. 방향을 정했으니 속도만 높이면 된다고 믿었다. 다른 길을 기웃거리는 건 시간 낭비였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속도를 늦추고 나서야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기록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됐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며 그 시간을 추억할 수 있게 됐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지인의 추천으로 블로그에 비공개 글쓰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나만 보는 글이었다. 그러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문장을 다듬기 시작했다. 문장을 정제하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고, 시야도 맑아졌으며 마음도 한결 차분해졌다.

이제 나도 숲과 같은 삶을 바라본다. 빨리 자라는 나무 한 그루에 모든 걸 걸기보다는, 각기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자라는 나무들이 어우러진 숲. 그리고 한 때의 효율이나 성과보다는 흔들린 뒤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력을 품은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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