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e - wony] 유 퀴즈 온 더 블럭 144회 차준환 선수 편
"저는 잘하는 선수는 아닌 것 같아요. 그냥 항상 노력을 하는 선수 같은데. 뭔가 확 된 게 없었어요.
꾸준히 노력을 해야지 또 하나 완성이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 유 퀴즈 온 더 블럭 144회 차준환 선수 편 중에서 -
여느 때처럼 퇴근 후 누워만 있던 수요일 밤.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특집>으로 꾸린 유퀴즈를 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눈으로는 핸드폰를 보고, 귀만 TV를 향해 있었다. 마지막 출연자는 피겨 스케이트 국가대표 차준환 선수였다. 방송을 보면서 '얼굴도 고운데 말과 마음도 곱네.'라고만 생각하던 찰나, 저 말을 듣고 나서 방송에 집중했다.
“머리는 00이가 좋고, 파들이는 노력형이야”
고등학교 때, 사촌동생과 내게 공부를 가르쳐 주시던 막내 이모부의 말이다. 나는 이 말이 자존심이 상했다. 사촌동생에 비해 별로 똑똑하지 않다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노력형이란 말은, 그만큼 열심히 해서 잘 따라가고 있다는 칭찬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렇게 '노력형 인간'이라는 말에 주눅 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뭘 하든, 한 번에 포텐 터지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은 찾아오지 않았다. 빠르면 한 세 번째쯤 되어야 성과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여태껏 포텐이 터지는 일은 없었다. 새 모이 같은 성과는 내가 '현재 무언가를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가끔은 더 나아가,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나 '꾸준히 노력한다.'라는 게 참 어려웠다. 남들보다 못하다는 열등감과 박탈감이 들어서 오랜 시간 마음이 방황했다.
그러다 일이 정말 안 풀리던 시기. 가장 힘들었던 3년간의 공백기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문득 '내 마음이 될 일도 안 되게 만들고 있다.'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생각이 바뀌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구구절절 쓰진 않겠다. 중요한 건 생각에 전환점이 생겼다는 사실이지 않는가.
지금의 나는 내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내가 제로백이 빠른 사람이 아니다.'라는 걸 인정하는 일이었다.
제로백은 시속 0km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자동차와 관련된 용어로, 100km에 도달하는 시간이 차마다 다르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을 할 때 아이디어를 내거나 처리 속도가 무척 빠른 사람이 있다. 반면에 일에 대한 예열 속도가 느린 사람도 있을 거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요즘에 누군가 아이디어나 레퍼런스를 요청하면 이렇게 답한다. "시간을 주시면, 고민해 보고 정리해서 드릴게요."라고 말이다. 느린 만큼 더 열심히 고민하고, 시간을 투자한 만큼 꼼꼼하게 일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부분에선 일처리 속도가 빨라졌다. 더불어 천천히 노력해서 쌓아 올린 것들을 장점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이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내 마음이 편해졌다.'란 점이다. 덕분에 조급하거나 별일 아닌 일에 요란을 떠는 일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꾸준히 하면 된다.'란 생각에, 뭐든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이러한 생각이 유퀴즈 속 차준환 선수의 이야기와 맞물려 많은 위로가 되었다. 특히 '나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란 자막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 사실 서른여섯이 '노력과 성장'에 어울리는 나이인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 노력은 가치가 있다.'란 의미를 보여준 이날의 유퀴즈는, 이러한 생각을 극복하는데 귀감이 되어 주었다.
또 제목을 '새 모이처럼 나아지는 인생일지라도'라고 지은 건, 차준환 선수의 에너지 모이(?)에 대한 이야기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시합 날 에너지바 한 개를 하루 종인 조금씩 먹는다고 한다. 어떤 날은 다 못 먹어서 버리거나 다음 날 먹는다...(먹보 충격)
그래, 노력형 인간의 삶이란 이런 것일지 모른다. 한 입 베어 먹은 에너지바에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다음 한 입을 위해 인내하는 것. 새 모이 같은 한 입을 먹기 위해 나름대로 '지난한 시간'을 버텨내는 것. 한 번에 다 먹어버리고 싶지만,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것. 그러면 언젠가는 원하는 만큼 마음껏 먹는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
영상 말미에 도핑 논란이 있었던 발리예바와 우리 선수들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유퀴즈 답게 지적했던 영상이 나를 위와 같은 생각으로 이끌었다. 특히 실수에도 후련해 보였던 차준환 선수의 얼굴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나는 여전히 새 모이처럼 나아지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언젠가 새 모이가 모여 전성기를 가져다주길 기다리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