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니다]
2023년 연말을 마무리하면서,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과 함께 읽었던 책. 애정하는 동생 H가 선물해 준 특별한 책이기에 기록을 남겨본다.
H가 이 책을 선물해 준 이유는 네컷 만화 '행복한 고구마'의 영향이었다. 만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삼 밭에서 태어난 고구마는, 스스로를 인삼이라고 착각한 채 행복해한다. 그런데 인삼 하나가 그를 곱게 보지 않는다. 인삼으로 태어나는 건 특권인데, 인삼도 아닌 주제에 행복해 하는 고구마의 모습에 자신이 불행한 감정을 느낀 탓이다.
'아무나 인삼이 되어선 안된다.'라며 고구마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인삼은, 결국 진실을 전하기로 마음먹는다. 너는 인삼이 아니고, 고구마라고. 하지만 고구마는 개의치 않고, 자신이 고구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 다시 행복해한다.
H는 이 만화를 메신저로 보내주면서 "우리는 행복한 고구마가 되고 싶은데, 세상이 고구마가 될 수 없게 만든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당시 우리는 아침드라마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꼭 믿기 힘든 사회적 이슈가 아니어도, 우리의 삶이 그런 것 같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행에만 깊이 빠져드는 시기가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는 전체적으로 이 '행복한 고구마'와 같은 책이다. 귀여운 그림체로, 이번 생은 그런대로 살만하다는 메시지를 유머러스하게 전달한다.
지난 연말에 이 책을 읽으면서, 매년 망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내 인생을 누군가 명랑만화로 그려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라는 말이 떠올랐다.
꼭 내 이야기 같은데, 작가의 드립(?)을 통해 남의 이야기처럼 낄낄 웃으면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립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매일 인생이 망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나도 이러려고 이렇게 사는 게 아니다!"라고 외치는 작가의 글과 그림에 몇 번이고 빵 터져서 '드립'이란 단어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쓴 도대체 작가처럼, 자신의 삶을 시트콤처럼 풀어내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다. 일상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무겁게 사는 성향인지라,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이러한 성향이 드러난다. 별거 아닌 이야기를 심각하게 털어놔서, 만남을 망쳤다는 생각에 자책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때문에 시트콤 같은 일상을 만들어 내는 입담과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물론 그러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도 견디기 힘든 순간들을 겪었을 것이다. 그럴 때 가끔은 "에라이~ 되는대로 살자."라며, 흐린 눈을 하면 망한 것 같은 인생도 정말 망하지 않고 지나가는 게 아닐까?
어쩌면 '되는 대로 사는 인생'은 '순리대로 사는 인생'으로 바꿔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삶의 순간 순간에 깊숙히 들어가지 말자. 가끔은 띄엄띄엄 보고, 흐린 눈을 해도 좋다. 도대체 작가처럼 '나도 이러려로 이렇게 사는 게 아니다!"고 당당하게(?) 외치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면 힘들었던 순간들도 결국엔 자연스레 흘러가게 된다.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를 읽고 나서, 평소 좋아하는 마스다 미리 작가가 생각났다. 일상의 반짝임을 찾는 부분에서, 도대체 작가의 개그력이 더 돋보이지만!(ㅎㅎ) 나와 반대 성향인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겨울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간중간, 적당히 진지하게 인생의 통찰력이 담긴 글들도 있다. 때문에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책'이라는 말이 이 책에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