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름> 첫 번째 이야기
엄마를 위해 등산을 간 날, 나는 물 대신 꿀아메리카노를 샀다. 그만큼 산을 깊게 오를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평소 나는 산 아래에만 있는 사람이다. 산은 바라보는 거지, 오르는 게 아니라고 여겼다. 또, 인생 자체가 산 넘어 산인데 굳이 사서 몸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간암 수술 이후, 회복 운동이 필요한 엄마를 위해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가는 길에 모닝커피를 사주겠다던 동생의 설득도 한몫했다. 그래서 단순하게 산책하듯이 적당히 오르다 금방 내려올 생각으로,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그런데 꿀아메리카노를 마신 탓일까? ‘불호’를 외치던 등산이 예상을 깨고 꿀맛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쉬웠다는 말이 아니다. 내 생에 첫 등산 코스는 ‘계단산’이란 별명을 가진 계양산이다. 더불어 나는 저질체력 그 자체다. 별명값하는 산의 계단을 오르며, 내 몸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들었다. 피곤에 찌든 날 꿀아메리카노를 마주한 기분과 비슷했다. 한 번 쭉 들이키면 멈출 수 없는 맛. 적당히 달면서 정신을 깨워주는 맛. 신기하게 미각이 느끼는 커피 맛과 마음이 느끼는 등산의 맛이 비슷했다. 나는 엄마와 동생에게 양해를 구하고 홀로 산을 더 올랐다. 이게 진짜 등산의 매력인지, 아니면 내가 커피 맛에 정신을 못 차리는 건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때 느꼈다. 등산은 꿀커피 맛이 아니라 그냥 꿀맛이라고 말이다. 산과 가까워질수록, 나는 내가 사는 세상과 멀어졌다. 오를수록 작고 좁아지는 세상을 바라보며, 아등바등했던 시간들이 비워졌다. 그리고 마음에 평안함이 채워졌다. 산은 요란하지 않게 요란한 감정들을 가져가고, 꼭 채워야 할 것들로 새로이 채워주었다. 몸만 조금 고생하면 이 과정이 자연스레 이뤄지니, 마음이 꿀천지가 아닐 수 없었다.
이후 나는 주말이나 휴일에 한 번씩 산에 오른다. 산을 오르며 여전히 많은 것을 비우고, 필요한 것을 채우고 있다. 가끔은 새로운 것을 보고, 이전에 본 것들을 잊기도 한다. 덕분에 조금씩 몸과 마음이 동시에 건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산은 오를 때마다 새롭고, 드는 생각과 기분이 다르다. 매번 다른 내 등산의 이유와 기분을 지나치기 아까워서, 기록하기 위해 등산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