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름> 두 번째 이야기
"언니, 개들도 올라간다!"
산 정상에 가기 전, 마지막 쉼터까지만 오르는 내게 동생이 한 잔소리다. 산에는 주인을 따라온 반려견이 많다. 그 멍멍이들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웃는 얼굴로 열심히 산을 오른다. 주인과 함께 하는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하는지 정상까지 곧잘 오른다. 뿐만 아니라 아주 어린 아이들도 씩씩하게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나는 개들도 애들도 오르는 정상에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사실 한 번 도전했었는데 중도에 포기했다.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했지만,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말에 엄마는 "원래 산은 그렇게 계속 오르는 거야. 그러다 보면 정상에 다다르게 돼."라고 말했다. 그래서 초보등산자들이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어요?"라고 물으면 "얼마 안 남았어요"라고 답하는 게 보편적인 거짓말(국룰)이라고 했다. 처음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가는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정확하게 알려줘야지, 왜 고생을 시킨단 말인가.
산 아래에서 나는 늘, 무엇이든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이은 불행을 겪으며 학습된 강박관념이었다. 어떤 일이든 머리를 바짝 굴려서, 한 치 앞을 제대로 파악해야 덜 고생한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모르는 길을 가는 건 늘 스트레스였다. 몰라서 얼마나 더 고생할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홉 번째 도전에 도착한 산 정상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모르고 가는 게 약이다.
몰라서 시작했지만, 결국엔 알게 된다.
산 아래의 삶도, 산을 오르는 일도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차피 모르는 데 그냥 계속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 안다고 해서 그 길이 순탄한 게 아니다. 겪어 보지도 않고 아는 척을 하는 건, 마음에 쓸데없는 고민과 걱정을 만든다. 어차피 알게 될 것들은 자연스레 알게 된다. 결국엔 산 정상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나는 고되게만 느껴졌던 산 아래의 삶을, 산 위에서 바꿀 수 있었다. 오르다 보니, 산 아래의 삶과 산 위에 깨달음을 자꾸 비교하게 된다. 등산 한 번에 이토록 생각이 많아서, 사서 맘고생 하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 질문에 나는 한결 같은 대답을 할 예정이다. 가지 않는 것보다, 가는 게 덜 고생이라고. 그러니 누가 뭐라건 계속 오를 거라고 말이다.
산에서 겪은 에피 추가)
물론 주인과 강아지가 등산에 고통(?)을 느끼는 광경을 보기도 한다. 첫 등산에서 홀로 산에 좀 더 올랐을 때, 지친 얼굴로 주인의 품에 안겨 내려오는 웰시코기와 더 죽어가는 얼굴을 한 그의 주인을 목격했다.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지,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서 큰일날 뻔했다. 정말 산은 여러모로 재밌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