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일기 2: 아침엔 정전, 저녁엔 웃음

오늘도 감사한 하루

by 신의주

계랑기 교체 작업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정전, 단수 시작이라 아이의 김포 할머니집으로 피신가기로 했다.


10시 전에 식기세척기 작동이 완료 되도록 한 번 돌려놓고 싶었다.

남편이 8시 57분쯤 설거지를 하다가, 다 돌아가려면 10시 넘을 수도 있는데, 오후에 돌릴까?
했으나 오후로 일을 미루고싶지 않았기에 헹굼추가 없이 하면 1시간 안에 돼.
라고 말하고 9시 조금 전에 작동시작 버튼을 눌렀다.

작동한 지 5분쯤 지났을까, 공사 안내문에 붙어있던, 정수조가 있으니 수도는 바로 끊기지는 않을 것 이라는 말이 생각났고 식기세척기를 멈춘 후 헹굼추가를 한 뒤 다시 시작 버튼을 눌렀다.

단호박죽이 먹고싶어 아침 요리를 간단히 마치고 옷, 칫솔 등을 챙겨 9시 50분쯤 나가려고 했다.
"식기세척기 다시 돌렸어?"
남편이 물었다.
응 생각해보니까 바로 단수된다고는 안해서.
근데 이것도 전기로 돌리는 거잖아
아 맞네..
"애앵~"
우리가 빠른 톤으로 큰소리로 말하니 상황이 긴박해 보였는지 아이가 울음모드에 들어갔다.
아니야 공주야 엄마아빠 얘기하는 거야

일찍 나간다고 나갔는데 이미 엘리베이터가 멈춰있었다.
"투배 엘베 작동 안한다. 음쓰 놓고 갈게 냉동실에 넣어줘."
"정전돼서 냉동실에 넣으면 냄새 많이 날 것 같은데"
"애앵~"
큰 소리로 우리가 아침부터 얘기하니 싸우는 줄 알았는지 공주가 날 쳐다보며 울기 시작한다.
하.. 하는 수 없이 짐가방에 음쓰봉까지 들고 딸의 손을 잡고 현관문을 닫았다.
짐들고 가방메고 십여층을 내려가야한다는 부담감이 확 스쳐왔다.
공주야 엄마아빠가 큰 소리로 말해서 놀랬어?

봐바 지금 엘리베이터가 멈췄잖아, 원래같으면 우리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는데 오늘은 전기가 나가서 계단으로 가야해. 엄마랑 아빠가 그 얘기 한거야. 나가자 하는 1층까지 내려갈 수 있겠어? 설명해주고, 큰 소리로 말해서 공주가 놀랬구나 다음부터는 엄마 아빠가 소근소근 얘기할게 하니 공주가 다음에는 소근소근 얘기해~
ㅋㅋㅋㅋ 너무 귀여웠다. 수차례 반복 설명을 하니, 지속적으로 담에는 소근소근 얘기해~ ㅋㅋㅋㅋ 따라하는 공주 ㅠㅠ
대화하면서, 하나둘셋 계단 숫자 세면서, 어 여기는 할머니집 8층이네 하고 숫자도 보면서, 짐을 든 왼 팔이 아파올 때쯤 반대로 짐을 옮겨들고 공주와 자리를 바꿔 반대손을 잡고 쉬엄쉬엄 내려갔다.

1층에서 음쓰를 버리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려 했는데 1층에 도착하니 등은 땀으로 젖었고 짐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벌써 공사를 시작한 건지, 매연냄새가 너무 나서 나갈 수 없었다. 지하로 한 층 더 내려가서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와 잠시 음쓰통 앞에 정차한 뒤 음쓰를 버리고 산부인과로 출발했다.

2주마다 방문하는 정기검진.
31주가 넘어선 아이는 1.9kg에 머리둘레는 32주 크기로 잘 크고 있다고 했다.
태아의 항체를 위해 백일해 주사를 5만원 주고 접종해야했고, 초음파 비용까지 9만원 넘는 금액을 바우처로 결제했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짐싸고 계단내려오기부터 목이 말랐기에 시원한 음료가 생각났다. 11월 말의 날씨가 이런가 싶을정도로 덥다고 느껴졌고 하얗게 덮인 미세먼지 때문인지 긴팔 하나만 입어도 충분한 날씨에 더 갈증이 났다.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공주와 책을 잠깐 보고 서로 5권씩 빌려 차에 타고 카페 드라이브 쓰루를 경유지로 추가한 뒤 출발했다.

점심 12시쯤이라 도로의 통행은 매우 좋았고 먹고 싶었던 코코말차를 손에 들고 공주에겐 크로와상을 하나 준 뒤 김포로 출발했다. 엄마사랑해요 아빠사랑해요와 장난감기차, 아기학교 노래를 번갈아 여러번 들으며 도착한 곳은
어머니와 전화를 하여 결정한 집 앞 만두집이었다.
떡만두국은 짭짤했고, 오면서 빵을 먹었던 공주는 떡,만두,면의 공주가 좋아하는 조합의 메뉴였으나 국물만 떠먹고 말았기에 식사는 쏘쏘했다.

근처 소아과에서 대충 봐주는 영검에 질려 김포사는 동서에게 추천받은 소아청소년과로 오후 3시에 영유아건강검진을 가기로했다.
짐을 옮기니 땀 나는 옷에서 냄새가 나는 듯 해 샤워를 마치고, 어머니의 휴대전화와 tv를 연결 하는 것을 도와드리고(성공하진 못했다) 보니 2시 10분쯤이 되어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내 옷을 입고 공주야 나가자 하고 공주를 보았다.
차에서 짐을 내릴 때 조수석 발 밑에 어 이거 오랜만인데 싶은 파란색 바탕에 노란 오리가 그려진 파우치를 들고왔더니 공주가 그것을 열고 여름에 갖고다니던 여벌 옷을 꺼내 입고있었다.
빨간 레이스 달린 긴팔 원피스 위에 다 헤진 노란색 반팔이라니 ㅋㅋㅋ
웃음이 절로 나왔고 나보다 더 외모와 옷차림에 신경쓰는 할머니는 이거 벗자 하며 노란 티를 잡아당겼으나 아냐 아냐!!
하고 외치는 공주로 인해
나늠 그냥 가자 하고 말해버렸다.ㅋㅋㅋ
공주는 스스로 반팔도 입었겠다, 양말도 신었겠다, 한 손에는 소삼이를 안고 '나는 됐다!'하는 당당하게 뒤돌아 저벅저벅 장화를 신으러 현관으로 갔다.


할머니는 못내 아쉬운지 인형을 챙기고 문 앞까지 걸어가 신발 신는 손녀를 계속 쳐다볼 뿐이었다.

외출길에 하나뿐인 손녀를 예쁘게 꾸미고 싶은 할머니 마음과 이 나이대 아기가 할 만한 행동을 받아들여주긴 해야는데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병원이라는 낯선 곳에 들어온 공주는 말을 삼가고 눈으로 접수대 쪽을 쳐다보고 있었고, 발달검사를 위해 만난 남자 선생님 앞에서도 두 손을 모아 잡고 돌리는 등 어색한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블럭 색을 말해보세요
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세요
등의 주문에도 묵묵부답이다가 선생님이 나나 할머니와 얘기 하며 시선을 거둔 동안 슬쩍 블럭도 만져보고 연필이나 공도 쥐어보고 했다.
10.5키로그램 정도, 86.3cm 라 키 몸무게, 영양 상담을 원했으나 그보다 기본적인 성장발달 수준을 체크 받는 느낌에 아쉬웠으나 공주와 할머니와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한 것 같아 괜찮았다. 영양, 식사 상담은 좀 더 전문적인 사람에게 갔어야했구나 싶었다.
이어서 여자 의사가 있는 방으로 가서 공주의 코, 귀, 다리 등을 확인했다.
똥꼬도 예쁘네 라고 말해서 너무 귀여웠다. ㅋㅋㅋ
예쁘게 잘 크고 있다는 말에 뿌듯했다.

할머니집 가서 두부과자 있나 물어볼까 하고 공주가 점심때부터 말했기에
어머니 공차에 가면 두부과자 있어요, 공주야 밥 먹고 병원갔다가 두부과자 사러가자, 해서 공차가 어디있나 검색하니 이마트 안에 있었다.

두부과자 먹고싶다.

계속 노래를 불렀다. ㅋㅋㅋ
어머니께서 건너편 이마트에 가서 애기 부츠 있나 보자, 라고 하셔서 차로 이동했다.

어머니와 공주 먼저 내리고 나는 폰,카드,차키,여벌바지 하나가 든 파우치로 간단히 가방을 챙겨 차 문을 잠근 뒤 어디로 갔을까 하며 매장입구로 향했다.
어머니께서 공주를 안아올려 카트 앞 아기의자에 태우시려는 모습인데 어? 방향이 어색한데, 싶었다.
아기의자에 공주 발이 닿자, 반쯤 접힌 엉덩이를 으쌰으쌰 돌려 할머니를 뒤돌아 본 자세의 공주가 할머니 방향으로 돌아 다리 넣는 구멍을 찾아 발을 내리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ㅋㅋㅋㅋㅋ
엉거주춤 엉덩이 돌리는게 너무 귀여워 웃으며 다가가니
하하하하
나보다도 더 크게 웃으시는 할머니
어 다리넣는데가 왜 없지
해서 우선 올려보자 했더니 알아서 도네
ㅋㅋㅋㅋㅋ
나 왜 방향을 착각했지
너무귀여워 하하하하
똑순이네 우리 애기 ㅋㅋㅋ

스스로 착 비틀며 카트의자에 들어간 공주가 너무 웃기고
마침 그걸 목격한 나도 당사자인 할머니도 공감대가 하나로 형성되어 한참 웃으며 같은 말 또하고 또하며 입구로 들어갔다.
에스컬레이터 내리자마자 공차가 있었으나 지금 과자를 먹으면 저녁을 안 먹을 것 같아서 어머니께 어쩌죠 했더니 우선 신발 보러가자 하셔서 이동했다.
어! 공주 우산이네
공주야 우산 무슨 색 할래
하며 공주가 좋아하는 보라색 우산을 건넸더니 이거 오아(노랑) 이라고 했다. 더 작은 사이즈에 버튼식이 아니라 밀어서 펼치는 아기용 파스텔톤 노랑주황 우산이 있어 건넸더니 아니 이거 오아 하며 피카추 우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리고 아기용 장갑도 노란색으로 깔맞춤 선택한 공주의 취향을 존중해줬다.

부츠와 겨울에 입을 공주 옷과 바지 여러벌을 사주신 어머니께 공주 어린이집 입학 선물로 할머니가 멋진 옷 많이 사주셨네 우리공주 어린이집 적응 잘하고 잘 다니라고
했으나 졸려서 공주는 엄마 안아 가자 를 반복했고 차에 타자마자 거의 바로 눈을 감았다.

차에 타서는, 엄마 아까(까까)

어 두부과자 안샀네

ㅋㅋㅋㅋㅋ

나랑 어머니는 또 동시에 폭소를 했다.

깔깔깔깔

두부과자 생각이 났어?
졸리니까 안전벨트를 하려니 애앵 하며 못하게 하고 할머니가 쳐다보니 보지마 라고 하는 등 ㅋㅋㅋ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보였다.

세상은 재밌는 일이 많으면서도 벅차고 나는 졸리고 충분히 오래 참았고 할머니랑 엄마가 같이 있고 두부과자를 얻지 못했고.. 감정이 들쑥날쑥 할 모습이 훤해서 너무 귀여웠다.

자고가고 싶었으나 내일은 오전 9시부터 바빠 하셔서 눈치껏 집에 가겠다고 했고, 쇼핑 후 시간이 5시가 다되어가서 수육 삶아주겠다고 말씀한 어머니였으나 너무 피곤하실 것 같아 집에가서 오빠랑 시켜먹을게요 김치만 주세요 라고했다. 김장김치와 쌀을 얻어 다시 집으로 운전대를 잡으니 피곤이 강하게 몰려왔고 오늘 운전 많이하네 나, 싶었지만 공주가 자니까 괜찮아 했다. 올때는 30분 갈땐 5시 넘어 출발하니 1시간 10분도 넘게 걸리는 길이었다.

자다가 남편 전화에 깬 공주는 잠깐 애앵 하더니 진정했고 광주 할머니와의 전화에서 끊을 때 할머니 다음에 또 전화께요 라고 스스로 말해서 하하하 또 웃음바다에 내 마음은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가득찼다.
너무 배고팠던 나는 남편과 수육에 쌈을 맛있게 싸먹었고 공주도 상추고기쌈, 막국수 몇 가닥을 먹었다.
아직 나는 맛있게 먹고 있었으나
빼줘
하는 공주를 아기의자에서 내려주고 손을 닦여주니 보여주께 하면서 쇼핑백에서 사온 옷을 하나씩 꺼내 바닥에 늘여놓는다.
남편이 시장에서 물건을 사오면 꼭 하나씩 식탁에 꺼내 예쁘게 진열하는데, 그 모습과 겹쳐 보여 웃음이 났다.
치워 치워
하며 장난감을 옆으로 밀어 공간을 확보하고 옷을 다 꺼내 펼쳐놓은 다음 하나하나 짚으며 바지, 옷, 옷, 사자바지, 세트 세트 한다 ㅋㅋㅋ

집 안에서 행복하게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의 아이지만 남편의 유전자도 반이 있음을 다시 생각했다.

오늘 하루가 길었지만 해지고 난 뒤 저녁 모습의 우리집이 참 예쁘게 보였고 몽글몽글한 감정이 올라오며 넣는 고기쌈과 차는 주수로 배는 불러오고 그저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공주는 뭘하든 귀여움 폭탄이고,
양쪽 할머니들은 보고 또 봐도 또 보고 싶은 공주를 보는 순간순간마다 사랑이 줄줄 흘러넘치는 사람이고,
나는 그 사이에서 그 장면들을 다 지켜봐주는 따뜻한 엄마였다.


종이블럭으로 오르락내리락 몇번 하다가 양치를 하고 책보고 자러 들어갔다.
'하머니 하버지 약속하고 저나하자(전화하자)'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공주 오늘 병원가서 검사도 너무 잘 받았고 할머니가 예쁜 옷도 사줬어요~

오늘도 알찬 하루,
할머니 덕분에 더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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