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생긴 작은 우주기지
채아야,
길을 잃게 되면 하늘을 바라봐.
엄마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을게.
너를 기다리는 별 하나쯤은
이 우주에도 있어야 하니까.
내 딸은 우주인이다.
내 품에서 태어났지만
사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하루 종일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카드를 긁고, 눈치를 보고,
내일 일을 걱정하면서 사는 사람인데,
이 아이는
오늘 처음 본 먼지 하나에도 놀라고,
낯선 얼굴에도 웃고,
한 걸음만 내디뎌도 우주를 발견하는 표정으로 산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를
그냥 ‘아기’가 아니라
‘우주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새 직함이 하나 생겼다.
[엄마, 그리고 북극성.]
언젠가 이 집을 떠나
자기 궤도로 멀어져 갈 우주인이
길을 잃지 않게,
적어도 이 집 하늘 어딘가에는
항상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별 하나쯤
필요할 것 같았다.
그 역할을
내가 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키워 보니,
생각보다 북극성은
자주 흔들렸다.
“엄마 오늘 좀 슬퍼.”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날도 있었고,
내가 지켜 준다고 믿었던 집 안에서
내 어린 시절이 불쑥 떠올라
가슴이 저릿해지는 밤도 있었다.
그래도 이상한 건,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준 사람이
어른도, 책도,
조언을 해 주는 누구도 아니라
아직 ‘엄마’라는 두 글자도
제대로 못 부르는 이 우주인이었다는 거다.
이 글은
육아 정보도 아니고,
완벽한 엄마 사용 설명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한 명의 우주인이
지구에서 자라는 기록,
그리고 북극성이 되고 싶지만
가끔 흐려지는 한 엄마의
진짜 속마음을 적어 둔 일기다.
키즈카페에서 또래 우주인을 처음 만난 날,
보행기를 타고 롤 클리너를 끌며
집 안을 야간 순찰 돌던 밤,
“엄마 오늘 좀 슬퍼” 한마디에
조용히 다리 옆으로 와서 기대어 주던 오후까지.
아마 채아는 거의 기억하지 못할 순간들이고,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장면들이다.
나는 이 기록을
언젠가 채아가 크면
한 번쯤 읽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
“그때 엄마는 이런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구나.”
“내가 이렇게까지 사랑받고 있었구나.”
그걸 알 수 있는
작은 증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비슷한 우주인을 키우는 누군가가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우리, 완벽한 북극성은 못 돼도 괜찮다고.
가끔 흐려지고, 울컥하고,
잠깐 숨 고르며 빛이 줄어드는 날이 있어도,
여기까지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이미 그 아이에게는
충분히 밝은 별이라고.
이제부터는
한 명의 우주인이
이 집이라는 작은 기지에서 자라나는 기록을
차근차근 펼쳐 보려고 한다.
매 화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 처음 웃은 얼굴,
오늘 처음 내딛은 한 걸음,
오늘 처음 꺼낸 엄마의 마음 한 조각으로 채울 것이다.
채아는 우주인이고,
나는 그 우주선을 비추는 북극성이다.
이 이야기는
그 둘이 함께한,
아주 작은 우주의 연대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