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삼켜버린 보통의 날
분명 남편 번호인데, "여보세요? 119 구조대인데요.."
그때는 몰랐다.
이 한 통의 전화가 내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줄은.
아침마다 세 사람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보통의 하루는 딱 3개월이었다.
봄에 다시 보자는 짧은 인사를 끝으로 나의 첫 계약직은 종료됐다. 아이는 겨울방학을 했다. 나의 수술로 크게 상심했던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돈도 벌었겠다,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을 떠났다.
3개월 급여를 탈탈 털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놀러 갈 수 있을 만큼 벌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나에게는 비행기도 타고 물놀이도 할 수 있는, 정상의 몸으로 회복됐음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번 돈을 다 썼으니 다시 일터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3월이 되자 아이는 등교했고, 나는 출근하지 못했다. 회사 매각 방침으로 계약직 고용은 취소됐다. 그렇게 난 다시 집을 지켰다.
나른함이 온몸을 감싸던 평범한 오후였다. 익숙한 진동과 함께 액정에 남편의 이름이 떴다.
'또 무슨 통역이 필요한가?'
한국말을 못 하는 남편은 통역이 필요하면 일하다가도 갑자기 전화를 하곤 했다. 나는 살짝 귀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에—?"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남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119 구조대인데요,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쿵. 심장이 발밑으로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분이 기계에 손을 다치셨고, 지금 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손에 변형이 보이는데 손가락이 움직이긴 합니다. 빨리 ooo 병원으로 오세요. 지금 오실 수 있죠?.."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신 차리고 잘 들으라는 구조대의 말에 애써 병원 이름을 외웠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서 있었다. 마음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게 나한테 일어난 일이 맞아? 왜 또?'
병원으로 가는 길은 지옥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나는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을 되뇌었다.
"팔을 절단한다 해도.. 그래도 괜찮아. 안 죽었잖아. 그게 중요한 거야."
허둥지둥 도착한 건 응급실조차 없는 동네 병원이었다. 진료 창구를 헤매다가 남편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는, 너무나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퉁퉁 부어 내 허벅지만큼 굵어진 팔을 다른 손으로 감싸 안은 채,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여버, 나 갠차나…"
그 순간, 나는 안도했을까? 아니,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 치밀었다.
'… 지금 한국말이 나와?'
이 와중에도 나를 안심시키겠다고, 어설픈 한국말을 내뱉는 저 사람을 어떡하면 좋을까. 눈물이 터져 나왔다.
때는 유례없는 의료파업이 벌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정형외과 의사는커녕, 우리를 받아준 병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성형외과 의사는 엑스레이만 보고 손목 골절인데 괜찮을 거라며 내일 다시 진료를 보라고 했다.
'정말? 이 팔이, 괜찮다고?'
선택지가 없었다. 진통제를 처방받고 팔에 붕대만 두른 채 집에 왔다. 남편은 뼈와 살이 으깨진 고통을 그대로 참아내며 밤을 견뎌야만 했다.
남편은 중국 음식점 주방에서 일한 지 반년쯤 되었다. 하루 12시간, 한 달에 쉬는 날 4일. 쉬는 날이면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사고는 바로 그 휴무 다음 날이었다.
면 뽑는 기계를 청소하다가 행주를 떨어뜨렸다. 기계적으로 다시 행주를 집었을 때는 이미 행주와 함께 팔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피로 누적으로 순간적인 판단도 몸의 반응도 둔했던 것이다.
기계 속으로 팔이 으스러져 들어가던 순간의 고통. 아무리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격리된 제면실에서 남편은 혼자였다.
"라이른—, 지우워—!" (누구 없어요? 사람 살려!)
옆 주방에 있던 동료들은 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 길가에 지나가던 행인이 그의 목소리를 듣기까지, 구조대가 도착해 단단한 기계와 사투를 벌이기까지, 그는 자그마치 30분을 지옥 속에서 버텨야 했다.
다음 날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요골 골절 및 전완근 압궤상'. 손목과 손등은 부러졌고, 근육과 신경이 모두 으깨졌다. 그런데도 의사는 원하면 통원치료를 해도 된다고 했다. 당장 무슨 수술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통원치료라니. 난 바로 입원을 선택했다.
일주일을 기다려도 부기가 빠지지 않던 남편의 팔은 점차 검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제야 의사는 구획증후군으로 발전하면 팔을 절단할 수도 있다면서 수술을 했다. 터질 듯 빵빵하던 남편의 팔은, 고여 있던 혈액을 제거한 후 찌그러진 철근처럼 울퉁불퉁하게 변해버렸다. 전완근의 근육이 모두 짓이겨지고 찢겨나간 탓에 정상적인 팔의 모양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 달의 입원을 마치고 주 3일 통원 치료가 이어졌다. 찌그러진 근육에 붙어 있던 피부는 흐물흐물 벗겨지기 시작했고, 피부가 없는 팔은 재활치료도 시작할 수 없었다.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을 치료사가 주무르기만 해도 피부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틀에 한 번 소독하고 드레싱을 교환하는 감염관리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남편의 찌그러진 팔을 바라보며 계산이 시작됐다. 저축은 석 달밖에 버티지 못한다. 신용불량자인 나는 대출도 못 받는다. 당장 내가 벌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