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해서 더 찬란한, 우리들의 부르스

실뜨기를 하며 우리의 본질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사랑밖엔 난 몰라!

by 해온 정옥랑

손녀가 색이 고운 기다란 실을 내밀며 실뜨기를 하자고 보챈다. 아주 어릴 적 해보고는 까마득히 잊고 지냈는데, 신기하게도 내 손가락은 실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다. 일부러 못하는 척 장난을 치니, 손녀는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종알거리며 실뜨기를 가르쳐준다. 맑은 눈망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어쩐지 친근하다.

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하모니를 이루며 무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참으로 신기하다. 때로는 별이 되었다가, 때로는 산이 되기도 하는 그 유연성! 그러다 한순간 긴장의 끈을 놓치면 공들인 모양은 이내 허무하게 흩어져 버린다.

문득 어릴 적 친구와 같이 실뜨기 놀이 중 모양이 망가지면 서로 네 탓이라며 눈을 흘기던 기억이 난다. 실 하나만으로도 온종일이 축제였던, 그 순수하고 투명했던 시절이 그립다.

그 작은 손놀림 속에서 나는 시골집 마당의 해묵은 풍경 하나가 떠 올랐다. 추수가 끝난 뒤, 어른들이 볏짚 두 줄을 엇갈려 꼬아 나가던 새끼줄의 기억! 거칠고 투박한 볏짚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길게 이어지던 그 질긴 생명력. 줄이 끊어지기 전, 미리 새로운 볏짚을 덧대어 부드럽게 이어가던 손길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 서로 다른 모양과 결을 가진 이들이 만나 다채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황홀하게 어우러져 부르스를 추다 보면 어느새 서로 닮은 하나의 결로 흐르게 된다.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깨닫는 소중한 진실이 있다. 바로 우리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우리 뇌의 첫 정보가 '사랑'으로 시작되었다는 말을 듣고 펑펑 운적이 있다. 그럼에도 왜 사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건지 답답하기만 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가슴으로 품을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며 그 미움을 나에게 투사하기까지 했다. 뇌교육을 배우고 삶에서 실천하던 중 '삶'도 '사람’도‘ 사랑'도 다 같은 말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본래 모습이 사랑이니까 누군가를 미워하면 괴롭고, 사랑할 때 비로소 행복한 것도.


우리가 갖는 감정은 ’사랑과 두려움‘ 두 가지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러나 각도의 차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어디에서 출발했느냐에 따라 결과는 너무나 달라진다.


뇌는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지 않고 내가 선택한 것을 이룬다. 그래서 인생은 해석이라고 하나보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얀 도화지처럼 감성적인 나와, 현실적으로 이성적 사고를 하는 남편. 서로 너무 다른 우리가 만나 삶의 파고를 넘으며 살아온 지 사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기뻐하며 나누는 사랑도 많았다. 그리고 손을 놓고 싶을 만큼 아픈 순간에도 묵묵히 이어가는 지독한 사랑도 있었다. 그 아픔까지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찬란한 사랑의 완성일 것이다.

요즘은 '사랑밖엔 난 몰라'라는 노래를 자주 부른다. 정말 그렇다. 내가 할 게 사랑밖에 없다. 사랑이 미움보다 더 쉬울 때 까지 참 오래 걸렸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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