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풍년, 체력은 우상향
방금 저도 모르게 '2026년 한 해를 되돌아보며'라고 적었다가 얼른 지웠습니다. 마음이 벌써 한 살을 먼저 먹어버렸나 봅니다. 올해는 달리기 외에도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많았지만, 오늘은 제 삶의 큰 축인 '달리기'를 중심으로 한 해를 정리해 보려 합니다.
올해의 키워드는 단연 '질적·양적 성장'입니다. 제가 낼 수 있는 모든 기록을 경신한 한 해였거든요. 우선 10월 9일, 하프를 넘어 생애 최장 거리인 23.5km를 뛰었습니다. 속도와 거리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오버페이스로 중간에 하차해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나네요. 21km 이후의 세계를 몰랐던 제 불찰이었지만, 덕분에 하프 이상의 벽을 한 번 깨뜨릴 수 있었습니다.
대회 운도 따라주었습니다. 11월 16일 '한강의 기적 마라톤'에서 하프 PB를 달성했습니다. 사실 올해 목표는 상·하반기 각 1회 하프 완주였는데, 애착이 컸던 동대문구 마라톤이 폭우로 무산되면서 아쉬움이 컸거든요. 연말이 가기 전 급하게 신청한 대회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PB를 찍었으니,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입니다. 이 외에도 10km 40분대 진입(50분 언더), 5km 신기록까지 세웠으니 속도와 거리 모두 잡은 풍성한 한 해였습니다.
수치상의 기록보다 더 체감되는 변화는 제 '몸'이었습니다. 한때 30대 중반이었던 VO2max(최대 산소 섭취량)가 목표치인 50을 돌파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떨어지는 게 정상이라는데,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수치를 보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군요. 마치 S&P500 지수처럼 쭉쭉 올라가길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횡보가 아닌 우상향이라는 점에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하체 근육의 변화도 놀랍습니다. 원래 하체가 빈약한 편이었는데, 꾸준한 달리기로 햄스트링과 엉덩이 근육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체력이 좋아지니 자연스레 낮잠이 사라졌고, 최근에는 카페인 없이도 하루를 온전히 버틸 수 있는 '에너지 효율이 좋은 몸'이 되었습니다. (물론 커피 맛은 포기 못 해서 메가커피를 애용하곤 합니다만.)
물론 빛나는 기록 뒤에 아쉬움도 있습니다. 바로 '꾸준함'의 부족입니다. 올해 총 주행 거리는 544.61km. 작년(415.75km)보다 약 130km 정도 늘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부침이 심했습니다. 하프 대회 준비 기간에는 몰아 뛰다가, 봄과 늦가을 이후에는 거리가 뚝 떨어졌죠. 마치 변동성이 심했던 올해 경제 상황처럼 제 러닝 그래프도 요동을 쳤습니다. 대회 참가를 뺀 순수 훈련 거리를 생각하면 '양적 성장' 면에서는 스스로에게 박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네요.
이제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년 버킷리스트를 써 내려갑니다. 내년의 키워드는 '풀 마라톤 도전'입니다. 기록보다는 완주 그 자체에 의의를 두려고 합니다. 상반기부터 차근차근 몸을 만들고, 새 신발도 장만해서 하반기에는 42.195km의 벽을 넘어보고 싶습니다.
올해 부족했던 꾸준함을 채워 넣으며, 풀 완주라는 새로운 기록까지 챙기는 '욕심쟁이 러너'가 되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내년엔 어떤 목표가 기다리고 있나요? 무엇이든 계획하신 모든 일이 성공하는 힘찬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