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하지 못한 하루

딸의 한마디, 그리고 침묵

by 얼웨즈 Always
"완벽한 문장은 도달점이 아니라 방향이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처음으로 돌아가는 초대장이다."


노트북이 부팅되지 않는 순간, 세상은 잠시 멈춘 듯했다. 며칠간 새벽을 쪼개어 쓴 원고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듯한 절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골프 연습장에서 무작정 공을 후려치며 마음을 비우자, 오히려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절망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노트북 전원을 눌렀을 때, 화면은 끝내 깨어나지 않았다.

검은 화면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요했다. 나는 몇 번이고 전원을 껐다 켰다. 팬이 돌아가는 기척도, 익숙한 부팅음도 들리지 않았다. 기계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나의 초조함은 짙어졌다. SSD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설마’에서 ‘아마도’로, 다시 ‘확신’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다.

검색창에 비슷한 증상을 수없이 입력하고 '복구'라는 단어에 매달려 보았지만, 화면은 끝내 반응하지 않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고장 난 것은 단순한 부품 하나가 아니라, 지난 며칠간 내가 공들여 쌓아 올린 '시간' 그 자체였다는 것을.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한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고치고 또 고쳤다. 겨우 마음에 드는 단락이 완성되면 그날 하루는 조금 덜 헛된 것 같아 안도하곤 했다. 그렇게 모은 문장들이 한순간에 휘발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하늘이 노랗다'는 관용구가 왜 생겨났는지 온몸으로 실감했다.


눈앞이 흐려졌다.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내 안의 빛만 툭 꺼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다고 데이터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모니터를 노려본다고 0과 1의 조합이 되살아나지도 않았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디든 움직여야만 했다.


무작정 발길이 향한 곳은 골프 연습장이었다. 고무 매트의 케케묵은 냄새와 약간의 먼지가 섞인 공기 속에 섰다. 폼을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저 클럽을 움켜쥐고 눈앞의 공을 향해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공은 제멋대로 날아갔다. 왼쪽으로 크게 휘어지거나, 매트에 튕겨 바닥을 기었다. 정타는 거의 없었다. 평소라면 교정해야 할 동작을 복기했겠지만, 그날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방향도 거리도 중요치 않았다. 공이 맞는 순간의 둔탁한 타구감과 짧은 비행, 그것이면 충분했다.


수십 번을 휘두르자 가슴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조금씩 흩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분노인지 허탈함인지 모를 감정이 공과 함께 멀리 날아갔다. 완전히 개운해지지는 않았어도, 막혔던 숨은 조금 깊어졌다. 어쩌면 우리는 살면서 이런 방식으로 감정을 소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말로 풀 수 없을 때는 몸을 움직이고, 생각이 엉킬 때는 단순한 반복으로 마음을 비워내는 법을.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니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황을 설명하자 돌아온 첫마디는 예상보다 건조하고 명확했다.


"백업은 해두셨어요?"


없다는 대답 뒤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어지는 딸의 핀잔. 자신은 논문이나 중요한 자료를 정리할 때 반드시 클라우드와 외장 하드 등 여러 곳에 이중 삼중으로 저장해둔다고 했다.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왜 그 기본적인 일을 미뤘을까. '설마'라는 안일함이 만든 구멍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어느덧 딸은 나를 가르치는 위치에 서 있었다. 어릴 적 숙제와 준비물을 챙기던 내가, 이제는 기본을 지키지 못한 아이처럼 훈계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누군가는 나보다 더 단단해지고 영리해졌다는 증거 같아서.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정돈되었다. 내 노트북 화면은 여전히 검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잃어버린 문장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 문장을 빚어냈던 '생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의 뼈대는 여전히 내 머릿속 어딘가에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내 방을 나와 아들의 방으로 향했다. 군대에 간 아들의 빈자리가 고스란히 남은 방. 주인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던 아들의 컴퓨터 전원을 눌렀다. 웅하고 가벼운 진동과 함께 모니터가 환하게 밝아졌다. 내 노트북이 끝내 보여주지 않았던 그 '빛'이 그곳에 있었다.


아들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완성되었다고 믿는 순간에 가장 나태해졌던 것이 아닐까. 문장이 제법 괜찮다고 자만했을 때, 더 나아질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렸던 것은 아닐까. 기계의 고장은 그 오만을 강제로 흔들어 깨운 경고였다.


글쓰기는 본래 불완전한 작업이다. 완벽한 문장은 도달점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가깝다. 우리는 늘 모자란 상태로 다음 문장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이번 일은 나를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려보냈다. 초고를 쓰던 겸손한 마음, 단어를 고르던 신중한 태도, 한 문장에 오래 머물던 그 집중력으로 다시 시작하라고 말이다.


나는 브런치에 올려두었던 이전의 글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이미 공개된 문장들 속에서 다시 씨앗을 찾는다. 그때는 미처 잇지 못했던 생각, 짧게 언급하고 지나쳤던 단어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잃어버린 원고 대신, 더 단단한 새로운 연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삶은 때때로 예고 없이 멈춘다. 기계의 고장, 관계의 균열, 혹은 계획의 취소로. 우리는 늘 준비되지 않은 채 그 멈춤을 맞이하지만, 돌아보면 그 순간은 종종 삶의 방향을 다시 잡는 이정표가 되어주곤 한다.


내 노트북은 여전히 꿈나라에 있지만, 나는 아들의 도움으로 다시 세상과 연결된다. 비어 있기에 다시 채울 수 있고, 사라졌기에 더 좋은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아들이 건강히 돌아와 이 자리를 되찾을 때쯤, 나의 문장들도 더 깊고 단단하게 여물어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자판 위에 손을 올린다. 이번에는 문장이 먼저 깨어난다. 그리고 조용히 저장한다. 한 번 더, 그리고 또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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