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과 기세, 그리고 관형사

by 윤세영


아침부터 보일러에 이상이 생겨 난리도 아니었다.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에 발도 젖고 기분도 덩달아 눅눅해졌다. 이 기분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무슨 이야기가 좋을까, 기분 이야기가 나왔으니 기분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그럼 기분이 좋아질까?


얼마 전 쇼츠에서 한 출연자가 “기분이다!” 외치는 걸 봤다. 왜인지 귀여워서 기분이다! 따라 외쳤는데, 이내 ‘기분’과 ‘이다’ 사이에 슬쩍 보이는 틈에 눈길이 갔다. 기분도 엄연히 명사고, 명사에는 보통 서술격 조사 ‘이다’가 활발히 결합하여 서술어의 자리에 놓이니까 언뜻 뭐가 이상한가 할 수도 있겠지만, 기분이다! 이 말은 성공이다! 완성이다! 같은 맺음의 말들과는 조금 다르다.


기분의 의미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으면 검색하면 다음과 같다.


기분¹

명사

1. 대상ㆍ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

2.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분위기.

3. (생략)


우리가 일상에서 주로 사용하는 의미는 1, 2번으로 기분에는 보통 그것을 꾸미는 수식어나 설명하는 서술어가 따르기 마련이다. “벅찬 기분이야.”라든지 “기분이 안 좋아.”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떤 기분인지, 기분이 어떠한지가 아닌 단지 ‘기분이다!’라니. 이 호기로운 외침이랄지 선언은 앞뒤 다 필요 없이 오로지 내지르는 기세로 느껴져 꽤나 ‘이 시대의 표현’ 같다. 쓰고 보니 “기세다.” 역시 그 맥락이 비슷하다.


기세(氣勢). 언젠가부터 눈에 자주 띄는 단어다. 기분과 마찬가지로 보통의 쓰임은 어떠한 기세인지, 기세가 어떠한지 수식어나 서술어와 함께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요사이 “**는 기세지!”라든지 “기세다, 기세!” 같은 표현이 자주 보인다. 대부분의 발화가 그렇기야 하지만, 점차 너도 나도 모르겠는 와중에도 느껴지는 그 무엇을 알아서들 표현하고 이해하라는, 느낌적 느낌의 대화가 발달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기분이다!”도 “기세다!”도 정말이지 흐릿한 듯 본격적이다. 도저히 내 입으로는, 기세다!까지는 외치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기세다 앞에, 어떤 말을 놓을 수 있을까. 오랜만에 크게 주저함 없이 멋대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이 기세 앞에는 어떤 관형어를 놓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수식어를 생각할 때, 마땅한 관형사가 잘 떠오르질 않는다. '무슨 기세'나 '어떤 기세'처럼 헤매는 말이나 떠오를 뿐 성질과 상태를 내보일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그렇다. 실상 관형어의 자리에는 관형사보다 형용사의 활용형이 더 많이 자리한다. ‘세찬 기세’나 ‘당당한 기세’ 모두 형용사 ‘세차다’와 ‘당당하다’에 관형사형 전성어미 ‘-ㄴ’이 결합하여 관형어로 쓰인 예이다. 평소에 잘 보이지도 않는 관형사.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저 두 헌 집을 봐.


쓰고 보니 국어에 존재하는 모든 관형사를 다 쓴 것만 같다. 막상 관형사가 무어냐 묻는 이들에게 대답할 수 있는, 단박에 떠오르는 예가 ‘정말로’ 많지 않단 사실을 지금 다시 깨닫는다. 국어의 관형사는 전체 어휘의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표제어, 부표제어를 모두 합하면 1,584개 정도인데, 그중 대다수는 또 파생접미사 ‘–적’이 결합된, 문장의 쓰임에 따라 명사와 관형사로 통용되는 단어들이다.


관형사는 생산성이 적다. 그도 그럴 것이, 형태가 고정적이어서 새로운 어휘를 활발하게 생산해 낼 수도 없고 부사와는 달리 그 어떤 조사와도 결합하지 않는다. 이미 예전부터 내려온, 융통성도 없고 내성적인 소수 집단. 그래도, 이런 재미없는 관형사에도 내게 있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하나 있다. 그조차도 관형사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 쓰임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잠시, 위의 짧은 예문으로 돌아가서. ‘집’이라는 목적어이자 명사를 수식하는 관형사 '저, 두, 헌'은 각각 지시 관형사, 수 관형사, 성상 관형사이다. 의미를 기준으로 한 관형사의 하위 분류인 이 관형사들은 이 순서대로 보통 놓인다. 어휘에 따라 가끔 예외적으로 배열되어 쓰이는 경우들도 있지만 대개가 저렇다.


수식하는 대상의 속성으로부터 가장 먼, 단지 그것의 위치를 가리키는 지시 관형사를 꾸밈을 받는 말로부터 가장 멀리에 놓고, 대상의 상태와 성질을 의미하는 성상 관형사를 피수식언 가장 가까이에 놓는 것이 관형사 사이에 정해진 규칙. 관형사는 재미가 없다 해놓고도 이런 점잖고 정갈한 부분 앞에선 제법 매력적인걸? 싶어진다.


오늘은 이렇게 가라앉은 기분을 회복하려 엉뚱한 기세로 관형사에까지 당도했다. 이 한 문장에도 관형사는 끝내 없지만, 지금 이 문장에는 또 작고 소중한 관형사가 두 개나 있다. 아니 방금 세 개. 또 네 개. 무얼까.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