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여정 09: 호주, 실패해도 괜찮을 것 같은 곳으로
호주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 마지막 보루였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직업을 택해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보지 않는 곳,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여지가 넉넉히 남아 있는 너그러운 사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곳을 '마지막으로 부딪쳐볼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 믿고 싶었다.
두 가지 목표를 품고 비행기에 올랐다.
하나는 평생의 숙제였던 영어와 조금이라도 친해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식물을 돌보던 즐거움을 직업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원예 공부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가능하다면 이민까지도 염두에 둔, 내 인생의 가장 커다란 도박이자 마지막 도망이었다.
바다를 좋아했던 나는 시드니 근교의 작은 해안 마을에 짐을 풀었다.
어학원은 시내에 있어 매일 버스를 타고 오갔다. 예상보다 어학원에는 한국 학생들이 많았고, 낯선 중남미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 기초반부터 시작했다.
문법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회화는 좀처럼 터지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들은 늘 혀끝에서만 맴돌다 공중으로 흩어졌다.
어쩌면 언어의 문제보다, 그곳의 삶에 온전히 섞이지 못하는 내 마음의 속도가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저축해 둔 돈이 있어 생활이 급하진 않았지만, 현지의 삶을 체감해보고 싶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청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첫날부터 청소기 선에 발이 걸려 꼬였고, 팀장의 날 선 핀잔이 날아왔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서글픈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 낯선 땅에서까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결국 나는 하루 만에 일을 그만두었다. 대신 혼자 해안선을 따라 걷는 시간을 늘렸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 내가 견딜 수 있는 삶의 무게가 어디까지인지를 묻고 또 물었다.
처음 석 달은 부모님 또래의 이탈리아 이민 부부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비슷한 정서를 가진 그들과의 대화는 따뜻했지만,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고단함과 지독한 외로움이 묻어 있었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동양인에 대한 미묘한 차별 이야기들은 내가 꿈꿨던 가능성이 사실은 차가운 현실의 벽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시내 셰어하우스로 옮긴 뒤, 룸메이트가 일을 나간 사이 나는 다시 혼자 바다를 걸었다. 그 평온한 풍경 속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나의 미래를 가장 차갑고 현실적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6개월의 시간이 흐르자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무언가를 꼭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진 자리에, 지극히 현실적인 문장 하나가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끝내 찾지 못했다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하자."
호주는 내게 답을 주는 대신, 내가 결국 어느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사람인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짐을 꾸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6개월의 시간은 실패였을까.
아니었다. 나는 단지 답을 찾는 과정을 조금 더 신중하게 미뤘을 뿐이었다.
모든 가능성을 다 건드려보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나에게 맞는 단 하나의 길을 선택할 용기를 얻었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결국 우리는 선택한 것보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더 오래 책임을 진다.”
나는 이제껏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방황의 책임을 져왔다.
하지만 이제는 도망이 아닌,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할 시간임을 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다시 짐을 쌌다.
방황의 마침표는 타국이 아닌, 가장 익숙한 나의 책상 위에서 찍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