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채우는 작은생각 #9>
어느 휴일 아침이었다.
평소처럼 어항 속 물고기(구피)에게 먹이를 주려다 발걸음을 멈췄다.
한 녀석의 움직임이 달랐다.
세로로 몸을 세운 채 거의 미동도 없이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듯 내려가다가,
바닥에 꼬리가 닿으면
다시 수면까지 힘겹게 올라오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마치 그 작은 몸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움직임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였다.
물고기 전문가가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저것은 헤엄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힘을 쓰는 움직임이라는 것을.
한 시간쯤 뒤 다시 보았을 때
바닥에 누워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밤새 저러고 있었을 것이다.
힘겹게 위로 올라왔다가,
다시 가라앉고,
또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하며
자기 방식대로 마지막을 통과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조금 일찍 포기하고 편하게 누워 있었으면 덜 힘들지 않았을까?'
'밤새 저 작은 몸으로 얼마나 힘겹게 버텼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오래 남았다.
본능이었을지 모른다.
의지도, 결심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녀석은 바닥에 닿을 때마다 다시 위를 향해 몸을 틀었다.
가라앉는 쪽으로 흘러가는 대신 다시 한번 위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날 이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예전의 나는 최선을 결과와 연결해 생각했다.
성과가 있어야 노력도 의미 있다고 여겼고,
끝까지 버텨낸 뒤 남는 것이 있어야 그 시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물고기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에게 남은 힘을 다 썼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
자기에게 남은 힘을 끝까지 써보는 모습처럼 보였다.
나는 가끔 하루를 쉽게 흘려보낸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오늘은 그냥 넘어가자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한다.
굳이 다시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최선이란 항상 치열하고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닥에 닿았을 때 다시 한번 몸을 일으켜보는 일,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는 일.
그 반복이 쌓여 하루를 만들고, 결국 삶이 된다.
후회 없는 하루를 산다는 것은
대단한 성취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가라앉는 쪽으로 내버려 두지 않고
한 번쯤은 위를 향해 힘을 써보았는지.
나이가 들수록 최선이라는 단어는 피곤하게 느껴진다.
열정이라는 말은 더더욱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날 작은 어항 앞에서 나는 다른 의미를 배웠다.
최선은 특별한 각오가 아니라,
그날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은 찾아올 것이다.
힘이 빠지고, 굳이 다시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나는 그 작은 장면을 떠올려 보려 한다.
결과를 남기지 못하더라도
한 번쯤은 다시 힘을 써보는 일.
완벽하지 않아도
오늘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