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고대의 문장이 오늘에 도착할 때

10. 고대의 문장은 오늘을 어떻게 건너오는가

by LumiTo

영적인 언어를 현재형으로 바꾸는 일



오래된 언어는 왜 아직도 우리를 멈춰 세우는가


나는 한때

고대의 문장들이

이미 역할을 끝내 언어라고 생각했다.


너무 오래되었고,

지금의 삶과는 속도가 다르고,

현실을 살아내는 데에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말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경전은

존중의 대상이었지만

함께 살아가는 언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문장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설명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현대적으로 번역되지 않아서도 아닌데

왜 사람들은

이 오래된 문장들 앞에

다시 서게 되는 걸까.


고대의 문장들은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방법을 제시하지도 않고,

정답을 앞에 내밀지도 않는다.


그 대신

사람이 언제 흔들리는지,

어디에서 자신을 잃는지를

놀랄 만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하다.


욕망이 앞서가는 순간,

균형이 무너지는 흐름,

이미 지친 상태에서

계속 선택을 강요받는 장면들.


시대는 달라졌지만

사람이 무너지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문장들은

해결책으로 남아 있지 않고,

질문으로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는 지금

어떤 상태로 이 문장을 읽고 있는가.

이 언어를

무엇으로 이해하려 하고 있는가.


고대의 문장이

오늘까지 건너올 수 있었던 이유는

완성된 진리를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매번 다른 삶 앞에서

다시 열릴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장들은

지금의 삶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삶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비춰볼 수 있는 자리에

조용히 놓여 있다.


그래서 고대의 언어는

과거형으로 남아 있을 때가 아니라,

현재의 삶과 접촉하는 순간에

비로소 살아난다.


해석했을 때가 아니라,

잠시 멈춰 서게 만들 때.

아해했을 때가 아니라,

지금의 선택을

다시 보게 할 때.


나는 이제

이 문장들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삶과

어디에서 닿는지를

가만히 지켜본다.


고대의 문장은

오늘을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할 뿐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 영적인 언어들이

추상으로 남지 않기 위해

어떤 태도로

삶 안에 놓여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 언어들을

어떻게 현실의 선택과 감각 속으로

옮길 수 있을지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려 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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