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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학×기술 2025 결산과 2026 전망-3부

행성적 지능

by 배준형Joonhyung Bae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지능이란 무엇인가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지질학적 시대. 이 개념은 오랫동안 추상적인 경고로 머물렀다. 그러나 2025년, 기후 위기가 일상의 재난으로 체감되면서, 예술과 건축은 구체적인 생존 솔루션을 모색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카를로 라티(Carlo Ratti)가 큐레이팅한 제19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는 "Intelligens. Natural. Artificial. Collective."를 주제로 삼았다 [14]. 라틴어 'Intelligens'는 '이해하다, 인식하다'라는 뜻이다. 이 비엔날레는 지능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곰팡이의 균사 네트워크, 식물의 뿌리 시스템, 개미 군락의 집단 행동—자연에는 이미 수억 년에 걸쳐 진화한 지능이 존재한다.

비엔날레는 베니스라는 도시 전체를 '리빙 랩(Living Lab)'으로 변모시켰다 [14]. 해수면 상승으로 위협받는 이 도시는 기후 변화의 최전선이다. 전시는 미술관 안에 머물지 않고 운하와 광장, 역사적 건물들 사이로 확장되었다. 방문객들은 자연 지능과 인공 지능이 결합된 새로운 도시 시스템의 프로토타입을 직접 체험했다.


황금사자상: 바레인의 '땀 흘리는 자산'


올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레인 국가관의 "Sweating Assets"는 이 비엔날레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이다 [15], [16].

중동의 고온 다습한 기후에서 냉방 시스템은 필수다. 바레인 같은 걸프 국가들에서 에어컨은 생존의 문제다. 그런데 이 냉방 시스템이 작동할 때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응축수다. 공기 중의 수분이 냉각 장치에 닿아 물방울로 맺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건물에서 이 물은 그냥 버려진다. 바레인 팀은 질문을 던졌다. 물이 부족한 사막 국가에서, 이 버려지는 물을 생태학적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없을까?

"Sweating Assets"는 냉방 시스템의 응축수를 수집해 도시 녹지를 조성하고, 소규모 농업에 활용하는 시스템을 제안한다. 건물이 '땀을 흘리고', 그 땀이 생명을 키운다. 위기의 부산물이 해결책이 되는 역설.

이 작품이 중요한 이유는 예술과 건축이 미적 체험을 넘어, 극한 기후에서의 생존을 위한 실질적인 인프라 기술을 제안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비엔날레가 더 이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의 프로토타입을 선보이는 장이 된 것이다.


바이오 아트의 진화: 미생물에서 우주까지


바이오 아트(Bio Art) 분야에서도 흥미로운 진화가 관측되었다. 바이오 아트 앤 디자인 어워드(Bio Art & Design Award) 수상자들과 안나 베르시니나(Anna Vershinina) 같은 작가들은 재생 건축(Regenerative Architecture)과 엑소바이올로지(Exobiology, 우주 생물학)를 결합했다 [17], [18].

이들의 작업은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첫째, 지구의 자원 고갈 문제를 미생물과 균류를 활용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둘째, 인류가 언젠가 우주로 나갈 때, 어떻게 식량을 생산하고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미생물 정원, 균사체로 만든 건축 자재, 우주 환경에서의 식물 재배 시스템—이 작업들은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가설 검증의 경계에 있다. 예술이 단순히 과학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가설을 '시뮬레이션'하고 '프로토타이핑'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양자 미학의 탄생: 확률의 세계로


2025년은 유엔이 지정한 '국제 양자 과학 기술의 해(IYQ)'다 [19]. 양자 컴퓨팅, 양자 통신, 양자 센싱—이 기술들이 실험실을 넘어 실용화 단계에 진입하면서, 예술계도 양자역학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런던 사이언스 갤러리(Science Gallery London)의 "Quantum Untangled" 전시는 양자역학의 난해한 개념을 예술적으로 풀어냈다 [19]. 양자 중첩(Superposition)—입자가 관측되기 전까지 여러 상태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개념. 양자 얽힘(Entanglement)—멀리 떨어진 입자들이 마치 연결된 것처럼 행동하는 현상. 이 비직관적인 물리 현상들이 시각 예술과 인터랙티브 설치로 번역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양자역학이 예술에 제공하는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이다. 고전 물리학의 세계관은 결정론적이다. 초기 조건을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는 확률론적이다. 관측하기 전까지는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고, 관측 행위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작품이 완성된 순간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관찰과 상호작용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면? "Quantum Tango"가 네 개 도시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며 보여준 것은 바로 이런 가능성이다 [9]. 물리적으로 분리된 존재들이 얽혀 있고, 한쪽의 행위가 즉각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


무중력 예술: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다


2025년은 물리학의 또 다른 최전선—우주 공간—이 예술의 캔버스로 확장된 원년이기도 하다.

2025 오사카 엑스포는 '무중력 예술'을 핵심 콘텐츠로 내세웠다 [21]. 교토 예술대학 교수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토사 나오코(Naoko Tosa)의 "Sound of Ikebana"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미세 중력 항공기(일명 '구토 혜성', Vomit Comet) 내에서 제작되었다.

항공기가 포물선 비행을 할 때 기내에는 약 20-30초간 무중력 상태가 만들어진다. 토사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음파 진동에 반응하는 액체의 움직임을 고속 카메라로 포착했다 [21]. 중력이 제거된 상태에서 유체는 어떻게 움직일까? 지구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형태들이 펼쳐진다. 물방울이 완벽한 구체를 이루고, 색색의 액체가 서로 섞이며 추상적인 조각을 만들어낸다.

마이애미 기반 아티스트 나타샤 차코스(Natasha Tsakos)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MIT 우주 탐사 이니셔티브, 써크 뒤 솔레이유(Cirque du Soleil), 내셔널 지오그래픽, NASA와 협력한 그녀의 프로젝트 "Paraboles"는 무중력 상태에서의 멀티미디어 퍼포먼스다 [22], [23].

무중력에서 인간의 몸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위아래의 구분이 사라진 공간에서 춤은 어떤 형태를 띠는가? 지구의 중력에 적응한 우리의 미적 감각은 우주에서도 유효한가? "Paraboles"는 이런 질문들을 탐구한다. 세계 최초의 무중력 멀티미디어 퍼포먼스라는 타이틀과 함께.

이 작업들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예술이 지구라는 '중력 우물(Gravity Well)'을 벗어나 우주적 척도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 물론 아직은 소수의 전문가와 막대한 자본이 있어야 가능한 영역이다. 하지만 모든 새로운 영역이 그렇듯, 선구자들의 실험이 먼저 있고, 민주화는 그 다음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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