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도 폭설이 내렸다.
시카고에서 맞은 첫 눈, 나는 그 12월을 잊지 못할 것이다.
"자기야! 눈 온다"
컴컴한 방 안, 이불 속 누워있는 내게 다른 기숙관에서 살고 있는 그 사람은
내 속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듯 밝은 문자를 남겼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표현 조차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피폐한 상태에 놓여져있었다.
일분, 십분, 삼십분, 한시간.
얼마나 누워을까, 인간의 본연적인 욕구인 사랑조차 갈망하는 법을 잊은 사람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궁금해하는 모순을 보여주었다. 천천히 흰색 시트 위에서 48키로라는 여윈 몸을 일으켜 창가쪽으로 갔고, 타들어가는 나의 마음과는 너무나도 정반대인 아름다운 도시의 정경에 두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으며, 상한 음식을 잘못 먹기라도 하였다는듯 먹은 것도 없었지만 무엇이라도 게워내어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눈이 오지 않았다면.. 차라리 눈이 온 세상이 어두컴컴하고 아름답지 않았다면 조금 나았을까, 이 아름다운 정경은 세상이 나를 조롱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받게 하였고 그렇게 점점 병들어가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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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방문 앞 회색 목도리와 검은색 코트를 입은 그 사람은 너무나도 밝았으며 이 세상 어떤 미소보다도 환한 미소를 띄우며 눈 구경을 하러 가자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아직도 그 따뜻한 온기를 잊지 못한다. 세상의 끝, 갈대로 간 마음의 낭떠러지에 선 나에게 그 온기는 세상 어느것보다 달콤하였으며 구원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정도니까.
사브작, 뽀드득.
세상에서 가장 차가웠던 나라는 존재에게 다가와준 온기와 함께 밟는 시카고라는 회색 대도시의 첫 눈은 너무나도 강렬하였다. 실제적으로 한국의 폭설에 비해 어마어마한 양의 눈이 왔고, 시리고 아릴정도로 순수하게 하얬던 눈이 나의 발목까지 덮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나의 옆,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 중 하나인 사람의 온기조차 나는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병들은채 거짓웃음만을 띄워야했고, 나는 점점 병들어가고 있던 그 해, 겨울
누구에게도 진솔하지 못하였던 첫 눈 그날 밤.
내 마음에도 폭설주의보가 울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