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다방이야기

에피소드 1...

by 소록

그 다방에 들어설 때엔... 박건의 노래 ' 찻집의 고독' 노랫말 가사처럼 근무시간 끝나기가 무섭게 마치 약속이라도 있는 듯 다운타운가 음악다방으로 향하는 건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는 퇴근길다.

맨 구석진 어두컴컴한 자리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 커다랗고 낡은 가방을 툭 내려놓고는 언제나 그랬듯 주변을 휘이익 한번 둘러본 후 시집 한 권과 노트 한 권 외국제 노란 연필 한 자루 올려놓고 한숨 돌리는 것이 오래된 나의 루틴이다.


뮤지박스 앞에 놓인 뤼캐스트 뮤직이라고 쓰여있는 메모지를 여러 장 들고 와 그날에 어울릴만한 곡을 고민고민하며 선곡하여 서너 곡을 신청하고 있노라면 어떤 날엔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그동안 내가 신청했었던 곡들을 DJ들이 선곡하여 들려주어 나를 기쁘게도 하였고 내가 신청한 곡들이 나오는 날엔 뛸 듯이 기뻐서 다방내 공중전화로 달려가 친구한테 전화 걸어 음악을 들려주며 같이 듣하였다...

그렇게 혼자서도 잘 놀고 있노라면 퇴근 후 하나 둘 모여드는 친구들과 커피맛이 어떻고 문학이 어떻고 파가니니가 어떻고 루살로메가 어떻고 전혜린이 어떻고 조병화 시인이 어떻고... 하며 실컷 떠들어 대다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를 읊는 박인희 씨 낭송이라도 흘러나오는 날엔 술을 고파하기도 하고...

모여 앉은 서너 명 중 누구의 신청곡이 먼저 나오나 내기도 하며 혼자인 날엔 A부터 Z까지 스물여섯 팝아티스트명을 적어서 스물여섯 곡을 적어 과시라도 하듯 신청해서 DJ들을 놀래켜기도 하고 그러다 주인아주머니 눈치가 보일 쯤엔 일어나

안양중앙시장통 포장마차로 몰려가 향긋한 멍게며 홍합을 초고추장에 찍어 바닷냄새 그윽이 마시며 음미하노라면 혜경이는 산낙지가 자기 입천장에 마구마구 키스를 해댄다며 호들갑을 떠는 날엔 난 살짝 취한 기분에 싯귀절을 인용해 "그렇게 표현할 줄 아는 너를 위하여!!! 소노 이미 데 잇빠이!!!를 외치며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에 홍합국물을 맛나게 들이켜던 겉멋 잔뜩들은 문학소녀들은...


'시'를 '음악'을 '소설'을 '계절'을 이야기하며 늦은 시간까지 취하는 기분으로 잔뜩 즐기다가 막차시간 임박해서야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아쉬워하며 나 홀로 막차로 떠난 여인 되어 잠실행 버스에 오르면...


노오란 가스등 가로등들이 들러리 되어 나를 배웅해 주는 듯 착각에 빠져들며... 그렇게 한 시간여 안 졸다가 깨다 하며 종점인 잠실종합운동장에 내려 삼전동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추억은 즐겁고도 복한 다시 돌아가고픈 참 좋은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이 그리울 때면 가방을 둘러메고 블랙커피를 탄 텀블러를 들고 설레임 살짝 숨긴 채 무작정 집을 나선다...

또 그때처럼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지며 그 순간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말이다.


p.s 그런 음악다방에서의 추억과 에피소드들이 내가 아직도 즐겁게 살아가는 윈동력이 되는지도 모르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