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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열광의 도가니

가정폭력 생존기 28.

by 소년의 초상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 그 가운데 어린 나도 있었다. 살면서 2002년 월드컵만큼 센세이셔널한 사건도, 이벤트도 없었던 것 같다. 사춘기 남학생에게 뜨거움을 선사했던 2002년 월드컵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2002년 월드컵을 경험한 세대는 정말 축복인 듯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짜릿함과 공동체(?)적 마인드 셋을 함께 준 역사적 이벤트. 크. 다시 생각해도 전율이 돋는다.


월드컵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여기저기 길거리 응원을 다녔다. 당시에는 SNS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길거리 응원 홍보를 했고, 어떻게 알고 찾아가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길거리 응원의 필수품은 단 하나, "Be the Reds" 라는 로고가 박힌 빨간 티셔츠를 한 장만 입으면 됐다. 그 마저도 없으면 그냥 빨간 티만 입으면 됐다. 나는 엄마를 졸라서 시장에서 적당한 가격에 반팔을 구매했고, 그 하나로 신나게 응원을 했다.


처음 조별리그 때는 응원에 그렇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16강-8강-4강으로 쭉 올라갈수록 대국민 열기가 뜨거워졌고, 그에 편승해 응원을 하게 됐다.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때 집 근처 양궁장으로 응원을 갔다. 넓은 곳이다 보니 인근 주민들이 많이 모였다. 그곳에서 처음 길거리 응원을 접했다. 부모님 없이 친구들과 함께 응원을 나온지라 더욱 설렜다. 경기는 90분이 넘도록 승패를 가르지 못했고, 연장전까지 갔는데 박지성 선수가 페널티 박스에서 그림 같은 골을 성공시켜 승리를 거뒀다.


그 열광 속 느낌에 매료되어 길거리 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16강, 친구들과 함께 이탈리아전도 모두 보았다. 이 경기도 연장까지 갔고, 지금은 방송인이 된 안정환 선수가 골든골을 넣어 승리를 거뒀다. 이 경기 역시 드라마틱했기 때문에 전율이 장난 아니었다. 길거리 응원에 나온 사람들 모두가 가족이고 친구였다. 눈을 마주치면 모두가 즐겁게 웃었고, 음식점은 모두 세일을 하고, TV로 보면서 응원을 하라며 문을 열어주었다.




8강 스페인전. 주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말이었기에 친구들 3명과 함께 가까운 시내까지 나갔다. 이미 도로는 통제되어 있었기에 먼 곳에서 버스를 내렸고, 친구들과 멋지게, 신나게 걸어갔다.


메인 스크린 근처에는 이미 많은 인파가 모여 있어서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멀리 앉아 있자니 덥기도 했고 흥미가 반감되는 것 같아 일단 스크린 근처에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오락실로 들어갔다. 이 오락실은 양아치 형들이 많은 곳으로 유명했기에 중학교 2학년인 우리는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했다. 잘못 들어갔다가 삥 뜯길 수 있기에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응원을 핑계로, 즐거운 분위기를 핑계로 오락실에 들어가 한 자리 차지했다.


이미 이 오락실도 전광판에 축구 경기를 띄워 놓았다. 사람들은 게임을 하면서 축구경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응원을 하다가 게임을 하기도 했다. 일석이조였다. 스페인전 역시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5:3으로 대한민국이 승리를 했다. 덕분에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밖은 어두워졌다.


버스도 우회하기에 친구들과 그 먼 거리를 걸어가기로 했고, 재잘재잘 떠들며 집까지 걸어왔다. 오락실에서 돈을 전부 다 써버려서 저녁밥도 못 사 먹은 채 걷기만 했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즐거웠다. 머리에 스프레이를 잔뜩 바르고 나온 촌놈들은 모든 것이 재밌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저녁 9시가 다 되어서 집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오니 아빠는 술에 취해 있었다. 누나는 방에 숨어 있었다. 누나에게 미안했다. 나만 세포 하나, 하나가 증폭되어 즐겁게 지낸 것만 같아 속상했다. 나는 다시 감정을 누르고 집 안 분위기에 동조했다. 방금까지 웃던 얼굴도 싹 가렸다. 그렇게 나는 다시 어두운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누나 미안해. 너무 늦었지."


"아빠 계속 술 마시고 있어. 응원 갔다 왔어? 밥은 먹었어?"


"괜찮아. 엄마 기다리자."


아빠의 술주정을 받아내는 내내 머릿속에는 즐거웠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 짜릿했던 감정이 올라올 때면 닭살도 돋았다. 그런데 눈앞에선 아빠가 고개를 떨군 채 소주만 들이켜고 있었다. 밥은 먹고 돌아다니냐, 어디 갔다 왔냐, 이런 질문조차 없었다. 친구들이 그리웠다.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친구들은 나처럼 이런 순간을 겪는 게 아니라, 집에서 엄마가 차려준 맛있는 밥을 먹고 오늘의 영웅담을 이야기하고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것 같았다. 마음이 너무 쓰렸고, 장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지만 무력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엄마가 퇴근하고 집에 오는 밤 10시까지는 잘 버텨야 했다.


엄마도 2002년 월드컵이든 월드콘이든 관계없이 항상 피곤하고 찌든 삶만 살았을 것이다. 퇴근 버스 라디오에서는 대한민국의 승리 소식이 나오더라도 엄마는 멀뚱이 창밖만 바라봤을 것이다.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지만 어린 자식들이 있는 집으로 가야 하는 마음뿐이었던 2002년이었을 것이다.




그날부터 다시 아빠는 술을 입에 계속 댔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날 며칠을 계속 퍼부었다. 아빠를 제외한 우리 셋은 그렇게 암울한 2002년 월드컵을 보냈다. 4강과 3, 4위전은 응원을 가지 못했다. TV로도 못 봤다. 아빠는 TV가 있는 안방에서 술을 부어라 마셔라 했고, 이따금 잠도 자빠져 잤기 때문에 TV는 언감생심이었다.


김 빠진 콜라였다. 주택가에 퍼지는 응원소리와 환호소리로 축구경기 내용을 짐작했다. 나는 그저 내방 침대에 걸터앉아 바깥소리에 집중할 뿐이었다.


"와!!! 송종국!!!!" 그 멋진 중거리 슛은 며칠 뒤에 봤다. 아빠가 지쳐서 술을 입에서 뗀 건 10일 만이었다. 그때서야 뉴스에서 나오는 '골 모음집'을 보았다. 안방 맨 뒤 시멘트 벽에 기대어 뉴스를 보던 내 모습이 선하다. 그래도 우리의 불쌍함과 억울함에 대해서는 누구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소속감도 없었고, 폭발적인 감정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춘기의 나에게 2002년 월드컵의 거리응원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었다. 내가 정말 붉은 악마가 되어 무언가 뜨거운 것을 느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 대표팀의 힘이 되자"


한 없이 작았던 165cm의 깡마른 불완전한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었고, 군중 속에 숨을 수도 있었다. 거리응원단은 나에게 크나큰 방패였고 가족이었던 것이다. 결국 거리응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중도에 이탈하고 말았지만 그 몇 경기가 내게는 아직도 벅찬 기억으로 남아있고,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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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둘을 키우고 있는 아빠이자 상처가 많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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