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목표의 의미
“목적 잃은 이유는 자기합리화에 그치지만, 목표가 뒷받침된 이유는 동기부여가 되더라구요.”
어느 일요일. 스타트업 동료와의 대화 중에 튀어나온 한 문장을 다듬어, 오랜만에 짧은 일기를 남겼다. “우리가 왜 일을 하는가?”에서 시작해 “우리가 왜 살아가는가?”까지 이어졌다. 이래저래 스스로의 생각을 꺼내놓다 보니, 지나온 내 삶이 동기부여보다는 자기합리화를 연료삼아 왔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뭔가가 ‘턱’하고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서 한 번도 이유없이 결정을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결국 무언가를 함에 있어서 명확한 방향을 가진 이유들로 스스로를 설득하지 않은 채 행한다면,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려나 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내 방향을 다시금 날카롭게 재정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
명사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제적 대상으로 삼음. 또는 그 대상.
도달해야 할 곳을 목적으로 삼음. 또는 목적으로 삼아 도달해야 할 곳.
목표라는 단어는 직관적이다. 하지만 각자에게 주는 무게는 가벼운 깃털 같다가도, 들 엄두가 나지 않는 돌덩이일 수도 있겠다. 한 단계만 더 들어가 보자. 목표가 “목적을 이루려 지향하는 대상/도달해야 할 곳”이라면, 목적은 무엇인가.
사전은 “실현하려는 일, 나아가는 방향”이라 한다. 나침반·등대·표지판이 목적이라면, 미지의 동서남북·안전한 항해, 그리고 포근한 집이 목표일 것이다. 결국 목표는 ‘방향을 구체화한 형태’에 가깝다.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는 개인으로, 팀으로 수많은 목표를 세우고 달려나간다. 그리고 그 목표들은 타인이 결코 세워줄 수 없고, 그래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더 효과적·효율적으로 목표에 가까워지는 방법은 분명 있다.
나는 개인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몰입과 회고. 몰입은 비상사태 같은 거랄까. 주변 소음을 차단하고 에너지를 한 점으로 모은다. 근육이 붙고 실력이 쌓이는 시간은 대개 이때 생긴다.
하지만 몰입만으로는 시야가 좁아진다. 그래서 멈춰 회고해야 한다. 내가 어디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 좌표를 갱신하는 일. 두 축이 균형을 이룰 때 속도와 방향이 함께 맞는다.
몰입·회고가 개인의 성장에 필요한 조건이라면, 팀에 필요한 건 얼라인먼트와 시스템이다.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Alignment)를 점검하는 일은 팀의 몰입을 돕고, 그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해주는 장치(시스템)가 팀의 회고를 가능하게 한다.
팀의 목표는 한두 명이 잘해서 이룰 수 없다. 역할과 리듬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해야 한다. 필요한 건 일시적 열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구조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없다면, 그곳을 걷는 이들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목표 없는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길을 잃고, 쉽게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표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오아시스를 향해 걷는다는 그 사실이, 사막 한복판에서도 발걸음을 이어가게 만든다. 설령 우리가 끝내 도달하지 못한다 해도, 설령 그 오아시스가 신기루에 불과했다 해도, 그 길 위를 걸었던 우리를 부정할 수는 없다.
목표는 종착지가 아니라, 방향이다. 때로는 실망하고 좌절할 수도 있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아 또다시 걸어가면 된다. 우리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 어쩌면 목표 그 자체보다, 목표를 향해 걸어가려는 우리의 의지 덕분일지도 모르니까.
당신의 '오아시스'는 어디인가요? 댓글로 좌표를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