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해서 더 잘 살고 싶어졌다

‘일상’이 된 존재가 나를 더 움직이게 했다

by 쏘야 SSOJA
너무 익숙해서 당연한 줄 알았다.
그저 편안해서 영원하길 바랐다.

1년 전 겨울의 끝자락에 내 마음을 써내려간 문장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이 단어들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다만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나는 한동안 익숙함/편안함낯섦/불편함/새로움은 공존할 수 없다고 믿었다. 양쪽은 독립적인 개념이고,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는 잃는다고. 편안함은 안전이고, 새로움은 위험이고, 익숙함은 정착이고, 낯섦은 떠남이라고. 그래서 삶이 안정될수록 새로움을 덜 욕심내게 되고, 새로움을 택할수록 편안함을 내려놓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받은 한 편지에서, 이상하게 울컥한 문장이 있었다.

변화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요동칠 내 삶의 중심,
잘 살아가고 싶은 또하나의 이유,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세 개의 수식어가 한 사람에게 붙는 순간, 내 안의 개념들이 조용히 뒤집혔다.

삶의 중심일 만큼 일상이 된 존재이자,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에 편안함이 되었고, 잘 살아가고 싶은 이유이기에 또 새로움이 되는—그런 역설이 가능하다는 걸 처음 실감했다.


예전의 나는 ‘일상’을 단단한 바닥으로만 썼다. 낯선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돌아올 수 있는 집, 미지로 디딜 디딤판, 쓰고 떫은 실패를 삼킨 뒤 혀 위에서 굴려 녹일 달콤한 맛. 그래서 나는 형체 있는 것과 없는 것, 사람과 사물, 습관과 보금자리, 단골집과 친구와 연인을 모아 ‘일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일상이 단단할수록, 나는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일상이 단단해졌기 때문에 내가 새로워졌고, 편안해졌기 때문에 내가 더 솔직해졌다.


그는 편지에서 “타인에게 의존하는 건 나약한 것”이라고 믿던 자신이, 나를 만나며 “타인에게도 의지하고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썼다. 그 문장들 사이에서 내가 받은 감정은 “좋은 사람이다” 같은 칭찬이 아니라, 한 개인의 변화에 대한 놀라움에 가까웠다.


사람은 누구나 요동친다. 삶은 계속 변한다.

그래서 ‘중심’은 보통 부담이 된다. 흔들리면 안 될 것 같고, 무너지면 끝날 것 같고, 잃으면 삶이 무너질 것 같아서. 그런데 그가 나를 삶의 중심이라고 부르며 동시에 “잘 살아가고 싶은 이유”라고 말했을 때, 중심은 부담이 아니라 방향이 되었다. 흔들리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돌아오겠다는 합의처럼 들렸다.


그리고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주는”이라는 말은, 포장된 안정이 아니라 진짜 편안함의 정의 같았다. 잘 보이려고 애쓰는 상태에서는 사랑이 긴장으로 변한다. 계속 괜찮은 모습만 보여야 하니까. 그런데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편안함은 이상하게 나를 더 움직이게 한다. 그 편안함을 지키고 싶어서, 내가 더 잘 살고 싶어진다. 그게 새로움이다. 사랑이 나를 눕히는 게 아니라, 나를 일으켜 세우는 방식.


생각해보면 새로움은 늘 불편함과 같이 왔다. 시도가 있으면 실패가 있고, 어떤 실패는 좌절과 낙담의 맛이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삼키기 싫어지는 날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편안함을 찾는다.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 안전한 말투, 안전한 선택, 익숙한 관계.


그런데 한 사람을 ‘일상’이라고 부르게 되는 순간부터는, 새로움의 맛이 달라진다. 그 새로움은 낯설어서 두려운 새로움이 아니라, 살아갈 이유가 생겨서 생기는 새로움이 된다. “잘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내게서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하는 종류의 새로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억지로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사랑받아서 내가 나를 더 잘 돌보게 되는 새로움.


그래서 요즘 나는 익숙함과 새로움을 더 이상 반대편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적어두고 싶다.

내 삶의 중심이 될 만큼 일상이 된 존재는, 나를 현실로 데려온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존재는,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잘 살아가고 싶은 이유가 되는 존재는, 나를 새롭게 만든다.

그 셋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이번 겨울의 가장 큰 발견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대학 졸업과 함께 스스로에게 약속했었다. 편안과 소홀의 경계를 알고, 소중한 것들은 손가락으로 세어 보살피며 살겠다고. 모든 경험과 배움에는 의미가 있음을 인지하고 도전하며 성장하겠다고.


지금은 그 약속을 조금 수정해서, 더 현실적인 문장으로 바꿔 적는다.


편안함을 당연하게 만들지 말 것.

익숙함을 소홀로 바꾸지 말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유가 “잘 살고 싶음”이 되도록 살 것.


내가 배운 공존은 그런 거다.

익숙함이 편안해지고, 편안함이 새로워질 때—사람은 더 인간이 된다.


그러므로 오늘은, 고맙다.

내 삶이 요동치더라도 돌아올 중심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멀리 가게 한다는 걸 알려줘서.

이전 02화목표, 사막의 오아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