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감정은 어디로 가는가

말 대신 몸에 남은 것들

by 두부

—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시간


불안해지면 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말을 하지 못한다. 내 안으로 침잠하는 느낌.


불안이 명치 깊숙한 곳에서부터 온몸으로 전이되어 나가는 감각. 불안이 일정 수준을 넘는 순간, 내 사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춘다. 불안이 모든 사고 영역을 점거하면서 생각이 한 지점에서 무한히 반복된다.


이때 언어는 작동하지 않는다. 말이라는 기능 자체가 멀어지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조용해진다. 대화를 피하려는 의도도, 상대를 무시하려는 마음도 아니다.


겉으로 보면 아무 반응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차분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냉정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사고가 같은 궤도를 계속 돌고 있다.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부하 상태다.


예전에는 이 침묵을 내 성격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불안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가 반응하는 방식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다.


불안이 임계치를 넘으면 사고는 효율을 잃고, 판단은 작동을 멈춘다. 그 상태에서 말을 꺼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요즘은 이 침묵을 억지로 깨려 하지 않는다. 말을 해야 할 때와 지금은 멈춰야 할 때를 구분하려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은 아니다.


나에게는 사고가 다시 직선으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에 가깝다.


불안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말이 돌아온다.


그때의 말은 훨씬 느리지만,

적어도 나를 해치지는 않는다.



이 기록은 불안과 침묵, 판단을 미루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