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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때 화장실 가는 남자

그 타이밍, 진짜 신기하다

by 여운

외출 10분 전이었다. 아이 옷을 입히고, 가방을 챙기고, 물통이랑 차키까지 확인했다. 이제 신발만 신으면 끝이었다. 그때 현관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말했다. “잠깐만!”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안다. 화장실이다.


이 장면은 우리 집에서 자주 반복된다. 밥을 먹고 나서도 비슷하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누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향한다. 신기하게도 그 타이밍은 늘 비슷하다. 이제 막 정리를 시작하려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그냥 웃겼다. ‘왜 꼭 지금이지?’ 그런데 반복되다 보니 하나의 패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완전히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하기 싫은 일이 눈앞에 있으면 잠깐 다른 일을 찾는다. 물을 마시러 가거나, 괜히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방식만 다를 뿐, 원리는 비슷하다.


외출 직전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건 충분히 이해된다. 밖에서 불편한 상황을 겪지 않으려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식사 후에도 마찬가지다. 몸의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 타이밍이 집안일 시작과 겹치면, 결과적으로 한쪽이 조금 더 바빠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을 문제로 보기보다는, 생활의 일상적인 패턴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집에는 나름의 규칙이 하나 있다. 이름은 장난스럽다. ‘공정거래 원칙’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먼저 다녀온 사람이 다음 순서를 맡는다. 식사 후에 먼저 자리를 비웠다면, 돌아와서 식탁 정리를 한다. 오래 쉬었다면 다음 일을 조금 더 맡는다. 엄격한 규칙은 아니다. 그때그때 조금씩 적용해 본다.

이 원칙은 종이에 적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하면 충분하다.

“다녀왔지? 그럼 이제 같이 하자.”

이 한마디면 된다. 분위기도 부드럽고, 의미도 전달된다.


생각해 보면 집안일은 완벽하게 나누기 어렵다. 어떤 날은 내가 더 하고, 어떤 날은 상대가 더 한다. 중요한 건 누가 더 했느냐가 아니라, 계속 서로 배려하고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완벽해서 함께 사는 게 아니라, 서로 맞춰가며 함께 산다.”

이 말이 일상에 더 가깝다.


오늘도 아마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이다. 외출 직전에 “잠깐만”이라는 말이 들릴 것이다. 그럼 나는 잠깐 웃고 기다렸다가 말할 것이다.

“다녀와. 그러고 나서 같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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