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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속에서 마음을 닦다

by 여운

주말 아침이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를 들었다. 방금 닦은 바닥 위에 아이가 과자를 떨어뜨렸다. 작은 부스러기가 다시 퍼졌다. 예전 같으면 한숨부터 나왔을 장면이다. 그런데 이제 잠깐 멈춰서 그 모습을 바라보려고 한다. 그리고 조용히 다시 닦는다. 마음이 흔들리면 그 마음을 알아차리려 한다.


나는 요즘 집안일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단순히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수행에 가깝다고 느낀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한다. 같은 일을 반복한다. 끝이 없다. 해도 다시 해야 한다. 처음에는 이 끝없음이 나를 지치게 했다. ‘왜 이렇게 반복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반복이야말로 수행의 본질과 닮았다는 사실을.


불교에서는 ‘무상’을 말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그대로 머무르지 않는다. 집도 그렇다. 아무리 깨끗하게 만들어도 다시 어지러워진다. 먼지는 다시 쌓이고, 설거지는 다시 생긴다.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붙잡으려 하기보다 받아들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나는 청소를 하면서 이 무상을 자주 떠올린다. ‘지금 이 상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 생각을 하면 집안일이 덜 버겁다. 완전하게 유지하려는 마음이 조금씩 풀린다. 그래서 지금 이 한 번의 정리에 집중할 수 있다.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은 ‘무아’다. 집안일을 하다 보면 ‘왜 나만 하지’라는 생각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 순간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한 발 떨어져서 보면, 그저 스쳐가는 감정일 뿐이다. 그 감정이 곧 나 자신은 아니다.


나는 요즘 그 감정을 붙잡지 않는다. 올라오면 알아차리고, 그냥 둔다. 그리고 다시 손을 움직인다. 바닥을 닦고, 그릇을 씻는다. 그러다 보면 마음도 함께 가라앉는다.

이 과정은 명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앉아서 호흡을 바라보듯, 나는 움직이면서 마음을 바라본다. 손은 일을 하고, 마음은 그 흐름을 지켜본다.


불교에서 말하는 ‘정진’도 이와 닮았다. 꾸준히, 쉬지 않고 이어가는 태도다. 가사 일은 특별한 성취를 주지 않는다. 대신 계속 이어진다. 오늘 하고, 내일 또 한다. 변화는 크지 않다. 하지만 그 반복이 쌓인다.

이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달라진다.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마음이 덜 흔들린다. 예전에는 귀찮음이 먼저 올라왔다면,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인다.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이어지는 흐름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웃음이 난다. 방금 청소했는데 다시 어질러진다. 빨래를 개자마자 또 쌓인다. 예전에는 허탈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아, 원래 이런 일이었지.’

나는 집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드는 일은 아니다. 대신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일이다. 온도를 맞추고, 공기를 정리하고, 공간을 편안하게 만든다. 가족은 그 안에서 쉰다. 이 일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이걸 생각하면 집안일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삶의 바탕을 다지는 일에 가깝다.

수행이라는 말은 여전히 거창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꼭 특별한 자세나 장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일 속에서 마음을 알아차리고, 조금 덜 흔들리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같은 일을 반복한다. 불법(佛法)을 들으며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한다. 어제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반복 속에서 마음이 조금씩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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