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에는 어쩌다 한번씩 앰블란스가 섰다. 다른 아이들은 좀처럼 듣기 힘든 사이렌 소리였지만, 나에게는 이상하리만큼 익숙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에는 경찰이나 구급대원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엄마 아빠는 119를 불러야 할 정도로 날마다 치고받고 싸웠다.
때로는 부부 중 한 사람이 피를 흘리는 날도 있었고, 구급차를 타고 실려 가는 날도 있었다.
경찰이 와서 마치 난장을 만든 아이들 앞의 근엄한 어른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고 해도, 어느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서있는 가벽으로 전락할 뿐이었다.
하지만,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보다 가장 가슴 아픈 사실은 어떤 어른도 나를 그 끔찍한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구출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집에 오면 경찰차가 와있을까? 구급차가 와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부부 싸움에는 온갖 폭력이 난무했고, 가족들 사이에 하루 종일 폭언이 오갔다.
나는 그 사이에서 늘 중재자였다.
어느 날은 싸움이 이른 아침에 시작해서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했는데, 거실과 안방에서 오가는 난투극에 편안히 쉴 수도, 잠잘 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계속해서 싸움을 말려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정말 끔찍하다.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집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욕망도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부모님의 싸움을 말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계속 떠안고 살았다.
특히, 엄마는 그 상황을 철저히 이용했다.
엄마는 늘 아버지의 외도를 의심했는데, 그 가운데서 나를 증인으로 세웠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엄마가 의부증이 있다고 반박했다.
나는 모의 재판에 참여한 예비 변호사처럼 엄마를 대변해야 했고, 아버지의 잘못을 나무라거나 지나치다 싶을 땐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말렸다.
때로는 중재자 역할을 하느라 학원을 가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엄마가 외도녀로 의심되는 여자의 집에 찾아갈 거라면서 수업을 쉬게 시켰기 때문이다.
누가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
싸움은 밤새 아무리 말려도 끝나지 않았다. 심할 때는 두세 시간밖에 잘 수 없을 정도였다.
가장 끔찍하고 창피했던 기억은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 정도로 큰 싸움이 매일같이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대문도 열고, 창문도 열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도록 절대 닫지 마!!!
엄마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창문과 대문을 열고 계단 바깥 복도를 지나서 멀리 주차장과 골목까지도 다 들릴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문을 닫으려고 해도 닫지 못하게 막아섰다.
아버지는 엄마와 나를 밀치거나 뺨을 때렸고, 엄마는 쉬지 않고 세상에 있는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일 년 365일 중에서 단 하루라도 조용하고, 평온하면 그것은 꿈에 그리던 기적과 같은 날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며 가족이라는 족쇄에 묶인 채 살았다.
끝날 것 같으면서 끝나지 않는 전쟁은 나에게 수많은 상처를 남겼다.
언젠가는 끔찍한 시간이 끝나고 우리 가족에게도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그것이 지푸라기와 같은 생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