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 남매의 풀지 못한 수수께끼

by 김이성


누나와는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놀이터에서 모래장난을 칠 때도, 슈퍼에 가서 과자를 고를 때도, 집에서 할 일 없이 그저 앉아있을 때도 언제나 누나와 함께 했다.


어린 마음에 쌍쌍바처럼 붙어 다니려고만 해서 누나는 가끔 나를 귀찮아했다.

친구랑 약속이 있을 때는 동생을 떼어놓으려고 갖은 수를 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누나는 형제 이상으로 엄마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늘 옆에 붙어있어야 마음을 놓았다.


친구랑 말다툼을 하고 돌아왔을 때나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사소한 맞춤법이 어려워 고민할 때도 누나는 척척 알려줬다.

그런 누나의 모습은 어느 누구보다 똑똑해 보였고, 모르는 게 있거나 어려운 게 있어도 누나가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우리 남매는 장난을 치고 떠들며 이런저런 오락거리를 만들어서 노는 시간이 많았다.

심심할 때면 체스를 두기도 하고, 부모님이 각자 외출하고 없는 날엔 함께 개그콘서트 같은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서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면서 그동안 집안에서 쌓인 걱정을 떨쳐버렸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누나는 엄마 아빠의 부부싸움에서 항상 멀찍이 거리를 둔다는 사실이었다.

거실에서 엄마가 하루 종일 폭언을 하고,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온갖 난투극이 일어나도 누나는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모른척하기 일쑤였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누나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나는 홀로 싸움을 말리면서 모든 문제를 덮어써야 했다.


그런 누나의 모습이 싫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공부할 것도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이해하며 견뎠다.


그럼에도 누나와 단둘이 있을 때는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엄마 아빠에 대한 걱정을 자주 털어놓았기 때문에 남매의 관계는 한동안은 좋게 이어졌다.


그러다 스무 살을 넘길 쯤 나에게도 한계가 찾아왔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부모님의 싸움 탓에 마음이 울적해졌고, 끝나지 않는 싸움 때문에 이제 그만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정신과에 찾아가서 약이라도 먹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결국 치료를 시작했다.


가정 불화에 더해 너무나 힘겨운 스스로와의 싸움까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나는 스스로와의 전쟁에서 버텨낼 힘이 한없이 부족했고, 엄마와 누나에게 나의 아픔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요즘 너무 힘들어서 얼마 전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했어...


힘들게 입을 뗐는데, 황당한 반응이 돌아왔다.

엄마는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며 비웃었고, 누나는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봤다.


뭐? 그런 곳에 네가 왜 가? 장난치는 거지?


누나의 그 말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모든 것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삶을 포기하려는 한 번의 어설픈 시도는 다행히도 실패로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혼자만의 어두운 골짜기에서 빠져나온 뒤로 누나와는 말을 섞지 않았다.

가족은 나에게 칼을 내민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온몸을 감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나가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그 당시 내가 느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기 때문에 손길을 쉽게 뿌리치고 말았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나는 썩어서 도려내기에는 너무 검게 변한데다가 싹이 나고 독까지 퍼져서 버리지 않고는 해결책이 없는 오래 묵은 감자처럼 뼛속 깊이 병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누나가 내민 화해의 손길을 뿌리친 그날을 마지막으로 소꿉친구처럼 어디를 가나 함께 했고, 함께 먹고, 함께 떠들고 웃고 놀던 남매는 이제 정답이 없는 수수께끼를 함께 풀어나가고 있다.

아무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그날, 남매 사이를 굳게 묶고 있는 자물쇠도 풀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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