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네 가족이 모였다.
싸늘한 공기가 살갗을 파고드는 거실의 상 위에는 모카케이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엄마는 묵묵히 성냥 한 개비를 들어 외로이 꽂혀있는 초에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오늘 누구 생일이야? 웬 케이크야? 맛있겠다.
내가 말했다.
누나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엄마, 아빠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가 어색한지 몸을 베베 꼬며 앉아있었다.
응... 엄마랑 아빠가 이제 헤어지기로 했어. 우리 이제 따로 살게 된 거야.
너희들은 아빠하고 잘 살아. 엄마도 혼자서 열심히 살아갈테니까.
아니야, 거짓말이지? 엄마도 계속 같이 살면 안돼?
엄마 가지마... 엄마...
나는 눈물을 떨구며 엄마에게 안겼다.
엄마도 참던 눈물을 주르륵 흘러 내렸다.
누나는 괜스레 짜증이 난다면서 혼자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이별이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고 우리 남매는 아빠와 함께 살아갔다.
아빠는 직장 일을 하면서 자녀를 돌보기 위해서 날마다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몇 년 동안 고생했다.
때로는 화를 못 이겨 우리 남매를 때리기도 했고, 시시때때로 분노를 표출했지만 자식들에게 밥은 잘 챙겨준 아버지였다.
아빠는 가부장적이고, 화가 많은 성격이었기 때문에 우리 남매와 자주 다퉜다.
누나는 한창 친구에 빠져사는 사춘기였고, 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인지 그동안 온갖 폭력을 마주하며 자랐기 때문인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불신이 대못과 같이 박혀 있었다.
아빠는 훈육을 하면서 자식에게 자주 손찌검을 했다.
그럴 때면 차가운 땅바닥에 널부러져 한없이 눈물을 쏟았고, 마음이 겨우 진정되고 나면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엄마가 바로 받을 때도 있었지만, 컬러링을 수백번 들어도 통화 연결이 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불안이 몰려와서 잠을 잘 청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엄마는 자주 술을 마시고 집으로 찾아왔다.
평소에는 맥주 한잔도 못 마시던 엄마였지만, 힘겨운 상황을 알코올에 의존하는지 자주 술에 취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눈을 뜨면 항상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술취한 아줌마의 모습은 그닥 달갑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우리 가족은 몇 년 동안을 가족인듯 아닌듯 어지러이 살아갔다.
어쩌면 두 사람은 이혼이라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연락을 하는 것도, 집에 찾아오는 것도 네 가족이 서로 만나는 일에 규칙은 없었다.
우리의 만남은 항상 갑작스러웠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재결합도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이루어졌다.
몇 해가 흘러도 혼자서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는 엄마.
그런 엄마와의 재결합을 강행한 것은 일방통행인 아버지였다.
엄마도 못 이기는 척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인 듯 싶었다.
이왕 다시 합친 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잘 살면 좋을 텐데, 이전의 실패를 되새겨 보았을 때 부부의 앞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엄마는 그사이 혼자인 생활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한동안 집에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을 땐 마음대로 나가서 한참동안 소식이 끊긴 채로 살다가 돌아왔다.
그렇게 또다시 몇 년의 적응기간이 지난 뒤에도 우리 집에는 평화의 비둘기가 잎사귀를 물고 오지 않았다.
다시 시작된 전쟁.
피 튀기는 싸움과 뼈를 도려내는 듯한 거친 말들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삶이었다.
엄마가 돌아와도 문제, 집을 떠나도 문제였다.
온갖 욕설과 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내가 반드시 지켜야할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다시 되찾은 엄마에게서 사랑을 느끼기도 전에 또다시 부부가 이끄는 불안의 전차를 타고, 끓어오르는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