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성을 대할 때 나타나는 카사노바의 페르소나를 일반 남성의 페르소나와 비교해 보자. 카사노바와 달리 일반 남성은 미녀를 대할 때 대체로 하나의 페르소나를 일관되게 사용한다. 그렇다면 일반 남성이 사용하는 페르소나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헌신과 희생이다. 이는 남성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본능에서 비롯된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보자면 남성에게는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건강한 2세를 얻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구가 존재한다. 여성이 젊고 아름다울수록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이 여성이 건강한 후손을 낳아 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한다. 그 결과 미녀를 만나면 남성은 자신도 모르게 그 여성에게 시간과 에너지, 자원을 바치게 된다(여기서 말하는 ‘미녀’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나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오직 개인의 주관적인 시선에서 예쁘게 느껴지는 여성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일반 남성이 미녀를 대할 때 쓰는 헌신과 희생의 페르소나다. 이 페르소나에는 당연히 상대 여성에 대한 존중과 보호 욕구가 함께 포함된다. 이는 <그림 4-3>의 공감 관련 두뇌 부위들이 활발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반면 카사노바에게는 애초에 2세를 갖고자 하는 무의식적 동기가 거의 없다. 이들에게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에 가깝다. 그렇다면 카사노바가 결혼과 출산을 극도로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많은 독자, 특히 여성 독자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는 현실적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카사노바가 결혼을 싫어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결혼 후 상대 여성이 임신하게 되면 일정 기간 사랑을 나눌 수 없게 된다. 카사노바에게 이 기간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더구나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여성의 체형이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는 카사노바에게 또 하나의 재앙으로 인식된다.
결혼 전까지 여성을 오직 외모 중심의 대상으로만 인식해 왔던 카사노바에게 체형이 변한 배우자는 더 이상 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는 대상이 된다. 이 역시 <그림 4-3>에 제시된 공감 관련 두뇌 회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남성이라면 사랑하는 여성의 외형이 조금 변하더라도 지속적인 애착과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에 카사노바는 결혼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그렇다면 미녀를 대할 때 카사노바가 사용하는 페르소나는 무엇일까? 이는 앞서 설명한 일반 남성의 헌신과 희생의 페르소나와 정반대다. 즉, 이기심과 태만이 카사노바 페르소나의 핵심이다. 성적 능력이 왕성한 시기에 최대한 많은 여성을 만나려는 카사노바에게 이러한 태도는 매우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그는 여성의 성격과 욕구에 맞추어 다양한 페르소나를 연기함으로써 가능한 한 많은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 쾌감을 얻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카사노바의 이기적이고 태만한 페르소나를 남성적인 매력으로 오해한다. 그 결과 자신에게 헌신하는 성실한 남성들을 지루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젊고 아름다울 때 카사노바에게 깊이 빠졌던 여성들 가운데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이른바 ‘퐁퐁남’이나 ‘설거지남’을 만나 물질적으로는 편안한 삶을 사는 여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남성과의 결혼이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오히려 카사노바와의 연애 경험이 많을수록 또다른 카사노바와의 불륜에 빠질 가능성이 정말 높아질 것이다.
사실 카사노바의 삶을 동경하는 남성들이 의외로 많다. 남성 독자분들 가운데에도 분명 그러한 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바에 따르면, 카사노바의 삶은 필연적으로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온다. 또한 평생 쾌락만을 좇다 보니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해 말년이 비참해지는 경우가 많다. 다음 인용문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때 그는 이미 예전의 그토록 세련되고 멋진 모습이 아니었다. 초췌한 몰골에 얼굴은 천연두로 인해 곰보가 되어 있었고 볼이 움푹 들어간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그동안 베니스도 변해 있었다. 그는 가진 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관심을 갖는 여성들도 없었고 지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중략> 그러나 그의 초인적인 정력도 40대에 이르러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물론 그의 회상에서는 49세에 이르기까지 여성 편력을 계속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는 이미 40대에 접어들면서 성적으로 불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너무 과도하게 정력을 낭비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적 쾌락의 길이 막히게 되자 그는 식탐가로 돌변했다. 그리고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는 대신에 하루 종일 펜대를 쥐고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이미 말을 듣지 않는 육체 대신에 그는 상상 속의 에로틱한 회상 장면을 통해서 즐거움을 만끽하며 스스로를 달랜 셈이다.”
— 『욕망과 환상의 세계』 중 —
많은 남성들의 우상으로 여겨지는 지아코모 카사노바(Giacomo Casanova, 1725~1798)의 말년의 모습이다. 그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40대에 이미 성 기능을 상실했다. 물론 여성과의 관계 횟수가 많다고 해서 모두 성 기능 장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융이 직접 상담한 한 카사노바 남성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당시 융은 자신의 아내를 포함해 무려 다섯 명의 여성과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던 남성을 상담한 적이 있다. 이 사례는 『융 심리학 해설』에 실린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바람둥이(카사노바)가 아니에요. 나는 일부다처제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요.”
“그렇다면 X부인은 뭐죠?”
“아, 그 사람! 그 여자는 음악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요. 우리는 간혹 함께 연주를 해요. 그리고 음악이 끝난 뒤에는, 음….”
“그렇다면 G부인은 뭐죠?”
“아, 그녀와는 골프를 함께 쳐요. 골프를 끝내고, 음….”
“그렇다면 미스 O는요?”
“그녀는 저의 비서예요. 간혹 그녀를 데리고 자긴 하지만 그건 바람이 아니에요.”
“그것을 나는 바람이라고 부르고 일부다처제라고 불러요. 당신은 동시에 다섯 명의 여자와 관계를 가지고 있어요.”
“박사님의 말씀이 맞아요. 그런데 그게 좋지 않아요?”
“좋을 것 하나도 없어요. 당신의 태도를 바꿔야만 합니다.”
— 『융 심리학 해설』 중 —
1920년대 유럽에서 살았던 어느 카사노바의 사례다. 융은 이 남성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 남자는 자신의 여자들을 모두 서로 다른 구획 안에, 예를 들면, 음악, 골프, 사무실, 아내 등의 구획 안에 넣어두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의 전체 삶은 수많은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남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한가? 성교 불능이 되어 버렸다. 나도 믿지 못했지만, 그게 사실이다.”
— 『융 심리학 해설』 중 —
이 대목은 이후 설명할 아니마(anima) 개념과 깊이 연결된다. 여기서 융이 말한 ‘구획’이란, 바로 남성 내면에 존재하는 여성성인 아니마가 두 개 이상으로 분열된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남성은 한 명의 여성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오직 하나의 아니마만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 사례의 카사노바 남성은 여러 개의 분열된 아니마를 지닌 상태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수의 여성들과의 관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남성 역시 젊은 나이에 성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