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의 그림자(전쟁과 평화의 신 Janus)
카사노바의 생존심리학
by 카사노바의 생존 심리학 Mar 22. 2026
페르소나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마치고, 이제 그 반대편에 위치한 그림자(shadow)에 대해 알아보자.
그림자란 우리 내면에 숨겨진 어두운 욕망이나 부정적인 성향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그림자는 페르소나의 정반대에 서 있다고 볼 수가 있다. 마치 전쟁과 평화를 동시에 상징하는 로마 신화의 야누스(Janus)처럼, 페르소나와 그림자는 서로 대립하는 특성을 지닌다. 즉,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본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연기하는 것이 페르소나라면, 그림자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지만 드러내지 못한 욕망과 그에 따른 본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그림자는 우리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형성되는 것일까?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성격은 대부분 유년기에 형성된다. 따라서 어떤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는지, 다시 말해 가정 형편이나 부모 관계, 형제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따라 개인이 지니게 되는 그림자의 성격 또한 달라진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비교적 풍족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어두운 그림자를 지닐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물론 융이 직접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평생 어두운 그림자에 지배된 채 힘든 삶을 살아야만 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림자는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오히려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강력한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수많은 인물들의 사례는 이를 분명히 보여 준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청각 장애 속에서도 위대한 음악을 작곡한 베토벤, 가족의 잇따른 죽음과 가난, 질병을 겪으면서도 강렬한 예술 세계를 구축한 뭉크, 흑인이라는 이유로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었지만, 인권운동을 이끌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틴 루터 킹,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음에도 독학과 실험을 통해 수많은 발명품을 남긴 토머스 에디슨, 사생아로 태어나 사회적 제약과 논란 속에서도 인류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 극심한 가난과 정신질환 속에서도 위대한 예술을 창조한 고흐, 그리고 시청각 장애를 극복하고 인류를 위한 사회사업에 헌신한 헬렌 켈러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위인들이 육체적·정신적·환경적 시련을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만약 이들에게 이러한 시련, 즉 어두운 그림자가 없었다면, 아마도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무난한 삶을 살다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이들이 겪은 거대한 시련이라는 그림자는 인류를 위한 위대한 성취를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그림자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창조적 작업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그림자에 짓눌린 채 삶을 이어 가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서는 뇌과학적으로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바로 앞장에서 설명한, 부정적인 감정을 생성하는 핵심 기관인 편도체 때문이다.
융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편도체에는 인류의 조상들이 경험해 온 다양한 감정들이 집단무의식의 원형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뇌과학적으로 보아도, 무의식의 영역인 편도체에서 의식의 중심인 전전두엽으로 향하는 신경 연결이 그 반대 방향보다 훨씬 많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우리는 의식보다 무의식, 특히 그림자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두뇌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인류를 위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은 실로 대단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이제 R의 삶과 꿈을 통해, 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그림자의 모습을 살펴보자. R에게 나타난 생애 최초의 그림자는 분명 부모의 이혼이었을 것이다. 모태 솔로로 결혼한 R의 아버지는 R이 중학교 2학년으로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새어머니라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바람을 피웠고 결국 친어머니와 이혼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예상과 달리 R은 새어머니와 놀라울 정도로 잘 지내게 된다. 그전까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황하던 R이, 갑자기 모범생으로 변신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R에 따르면, 당시 나이가 든 친어머니와 달리 새어머니는 20대 후반으로 젊고 활기차며, 교양 있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독서를 즐기던 새어머니의 영향으로 R은 자연스럽게 책에 빠지게 되었고, 그 결과 학업 성적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고 한다(다양한 독서가 자녀의 학업 성취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새어머니라는 존재는 R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들인 R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처럼 R은 늘 친어머니를 마음속에서 그리워했다. 결국 R은 사춘기라는 심리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시기에, 두 명의 여성을 동시에 마음에 품게 된 것이다(이 점은 이후 설명하겠지만, 남성의 무의식 속 여성성인 아니마가 두 개 이상 형성되는 것과도 연결된다). 다시 말해, 아버지처럼 성인이 된 이후 두 명의 여성을 사랑하게 될 가능성이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후 R은 고등학교 시절 이성 교제를 시작하면서 두 명의 여성을 동시에 만날 때 어떤 감정이 생길지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새어머니라는 감시자로부터 벗어나자, 본격적으로 두 명 이상의 여성과 동시에 만나기 시작한다. R은 두 명 이상의 여성을 만날 때, 자신의 내면이 더욱 풍부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러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더 많은 쾌감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바로 R이 지닌 독특한 그림자다. 사실 “남자는 열 여자 마다하지 않는다”라는 속담처럼, 남성이라면 누구나 많은 여성을 만나고 싶어 하는 어두운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남성은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필요한 페르소나와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에서 비롯되는 죄책감 때문에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