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중독회로(Emotional Addiction Circuit) 독서법
우리가 독서를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두뇌 부위로는 작업기억과 인지적 통제를 담당하는 배외측 전전두엽(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단어의 음운적 처리와 발화를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Broca’s area), 그리고 단어와 문장의 의미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베르니케 영역(Wernicke area) 등이 있다.
독서를 할 때 눈으로 본 단어는 먼저 후두엽의 시각 피질과 측두엽(시각 단어 형태 영역)을 통해 시각적으로 인식된다. 이후 이 정보는 독자의 독서 능력에 따라 브로카 영역을 통해 속발음으로 처리된다(혹은 의미를 처리하는 베르니케 영역으로 바로 이동하기도 한다).
이렇게 (음성적으로) 처리된 단어와 문장의 정보는 궁상다발(Arcuate Fasciculus)이라는 신경섬유 다발을 통해 베르니케 영역으로 전달된 후 해당 단어와 문장의 의미가 정교하게 해석된다. 이 정보는 다시 배외측 전전두엽으로 전달되어, 문맥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와 전체적인 의미의 일관성이 작업기억 수준에서 통합적으로 판단된다.
물론 우리의 독서 과정에 이 세 부위만이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편도체 역시 독서 중 정서적으로 의미 있는 단어나 경험과 연관된 내용이 등장할 경우, 감정 반응을 조절하는 중요한 일부로 자연스럽게 참여한다.
브로카 영역을 포함한 음성 처리 부위에서 속발음이 이루어질 때, 편도체에서는 과거에 해당 단어나 문장을 통해 경험했던 정서적으로 의미 있는 기억이나 감정이 함께 활성화된다. 여기에 더해 측두엽(의미 기억), 후두엽(시각 기억), 두정엽(주의 및 공간 처리 기억) 등 두뇌의 여러 피질 영역들 또한 동시에 작동한다. 이처럼 독서를 하는 과정에는 두뇌의 수많은 부위들이 병렬적으로 참여한다(이러한 이유로 독서는 어린 자녀의 두뇌를 전반적으로 고르게 자극하고 발달시키는 데에도 효과적인 활동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복합적인 인지 처리 과정에서 속발음은 많은 독자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의미가 낯설거나 복잡한 단어나 문장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독서에 필수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속발음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독서의 깊은 이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속발음은 우리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 즉 마음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참고로 나는 네이버 웹툰 『마음의 소리』의 열렬한 팬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이 속발음, 다시 말해 마음의 소리를 사용하며 살아간다. 상대방과 대화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누군가에게 말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입 밖에 내기 전에, 머릿속에서 어떤 말을 할지를 미리 준비해야만 한다. 이는 일종의 리허설 과정이다. 이는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아무렇게나 내뱉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융이 말한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말을 선택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속발음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사실 이 과정은 의식적인 사고라기보다는, 오히려 무의식의 영역에 가깝다. 직장생활을 하는 교양 있는 성인들이 사회적 대화에 능숙한 이유 역시 이러한 무의식적인 속발음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속발음을 할 수밖에 없는 두뇌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독서를 할 때에도 속발음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발음이 독서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분명히 존재한다. 독서를 하다가 의미가 애매한 단어나 문장을 만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속발음을 반복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독서의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 독서의 재미마저 잃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뛰어난 독서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 또한 반드시 견뎌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점점 더 많은 단어에 익숙해지고, 독서 자체에 흥미가 붙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탄탄한 독서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이미 중독돼 버린 현대인에게는, 이러한 노력을 지속할 만한 인내심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해답을 소리 내어 읽기, 즉 낭독에서 찾고자 한다.
내가 낭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근무하던 도서관에서 우연히 『낭독은 입문학이다』라는 책을 접하면서부터다. 이 책은 낭독이 정독보다 왜 더 효과적인지를 여러 사례를 통해 흥미롭게 설명해 준다. 낭독이라?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영어 과목 하나만큼은 유독 자신이 있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영어는 다른 과목과 달리, 큰 소리로 정확하게 발음하며 공부해야만 실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당시 영어를 공부할 때 항상 목에 무리가 갈 정도로 소리를 높여서 읽고 또 읽었다. 그 결과 영어만큼은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어린 시절, 누구나 낭독에 익숙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는 교양 있는 부모가 있는 가정에 한정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부모와 함께 동화책을 큰 소리로 읽거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친구들 앞에서 책을 낭독해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러한 낭독의 경험은 점차 사라진다. 독서 방식이 기존의 낭독에서 정독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정독 역시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어려운 문장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리 없이 차분히 읽으며 의미를 곱씹는 정독이 필요하다. 그렇게 점점 더 어려운 책들을 읽어 나가며 독서 능력이 쌓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깊이 중독된 현대인에게는 이러한 과정을 견뎌 낼 만한 인내심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독서 능력이 떨어진 현대인에게는, 정독에 앞서 낭독을 통해 독서라는 행위 자체에 먼저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뇌과학적으로, 낭독은 인간의 집중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을 강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독서법이다. 바로 집중력 때문이다. 독서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집중력을 키워야만 한다.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오직 독서에만 몰두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이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낭독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유는 내면의 소리인 속발음을 외부의 소리인 낭독으로 끌어내는 순간, 자연스럽게 독서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뇌과학적으로도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시각 자극보다 청각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길을 지나가는 119 구급차를 떠올려보자. 구급차는 요란하고 규칙적인 경적 소리라는 청각 자극과 함께, 현란하게 깜빡이는 빨간 불이라는 시각 자극을 동시에 사용한다. 그런데 만약 차량에 문제가 생겨 이 두 가지 자극 중 하나만 사용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경적 소리만 울리거나, 혹은 빨간 불만 깜빡이는 상황 말이다. 과연 어떤 경우가 사람들의 주의를 더 끌 수 있을까? 답은 분명하다. 요란한 경적 소리다. 불빛만으로는 사람들의 주의를 충분히 끌 수 없다. 강한 소리가 함께해야만 주의 환기가 가능하다.
더 쉬운 예로, 여러분이 좋아하는 TV 드라마나 유튜브 쇼츠를 시청한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소리도 없이 그저 화면만 멍하니 바라본 채로는 도무지 콘텐츠에 몰입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더 브레인』의 저자인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은 동료들과 함께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다. 100미터 달리기에서 출발 신호로 빛 자극인 섬광과 소리 자극인 총소리를 각각 제시한 뒤, 참가자들이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는지를 실제 시간으로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빛 자극에는 평균 190밀리 초 만에 반응했고, 소리 자극에는 평균 160밀리 초 만에 반응했다. 비록 그 차이는 미세하지만, 사람들은 분명히 소리 자극에 더 빠르게 반응했다. 이러한 이유로 각종 육상 경기에서 출발 신호로 총소리를 사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