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적으로 보아도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림 10-3>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간의 두뇌 구조를 살펴보면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까지의 거리는 눈에서 뒤통수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짧다. 실제로 주변의 친구와 가족, 직장 동료 등 오십여 명을 대상으로 직접 측정해 본 결과, 머리의 앞에서 뒤까지의 길이는 평균 약 24cm였고, 좌우로 잰 길이는 평균 약 15cm였다. 두 거리 사이에는 거의 9cm에 가까운 차이가 있었다.
직관적으로 보더라도 이는 시각 정보가 눈에서 시각피질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시냅스의 수가, 청각 정보가 귀에서 청각피질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시냅스의 수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뇌과학 연구 결과 또한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시각 자극보다 청각 자극에 훨씬 더 빠르게 반응하게 된다. 이는 다시 말해, 인간이 시각 자극보다 청각 자극에 더 쉽게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 우리는 시각 자극보다 청각 자극에 대해 더 많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독보다는 낭독이라는 독서법을 통해 더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낭독의 우수성을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뇌과학적 근거가 있다. 인간의 두뇌는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할 때 가장 큰 인지적 부담을 느낄까? 직관적으로 떠올리기 쉬운 답은 시각이다. 실제로 인간은 외부 세계로부터 얻는 정보의 상당 부분을 시각에 의존하며, 시각 정보를 처리할 때 넓은 범위의 뇌 영역이 동원된다.
이 점에서 시각 정보는 뇌에 상대적으로 큰 부담을 준다. 글자를 눈으로 읽는 과정에서는 시각 정보의 해독뿐 아니라, 의미 분석, 문맥 통합, 주의 조절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처리 과정은 인지 부하를 높이고, 집중력을 빠르게 고갈시킬 수 있다. 반면 청각 정보, 특히 낭독을 통해 전달되는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순차적으로 처리되며, 뇌의 언어 네트워크를 보다 자연스럽게 활성화한다.
또한 낭독은 단순히 듣는 행위를 넘어, 소리를 내어 말하고 그 소리를 다시 듣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 과정에서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작동함으로써 정보가 여러 경로로 뇌에 저장된다. 이러한 다중 감각적 처리는 이해와 기억을 돕고, 동일한 내용을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결과적으로 독서에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이유로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나 긴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처음에는 정독보다 낭독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낭독은 뇌의 부담을 줄이고, 뇌의 작동 방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독서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낭독을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2019년 말까지, 거의 2년간 일반인들과 함께 낭독 중심의 독서 모임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내가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 역시 앞에서 언급한 『낭독은 입문학이다』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일반적으로 낭독 독서 모임은 돌아가면서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이 독서 모임의 운영 방식은 상당히 독특했다. 이 모임에는 낭독을 할 때에는, 다른 회원들의 감정을 최대한 자극해야 한다는 명확한 규칙이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책의 내용이 더 깊이 이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속담이 말해 주듯이, 우리말은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듣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잘한다’와 ‘자알한다’는 동일한 단어이지만, 청자(聽者)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전자의 ‘잘한다’는 화자(話者)의 긍정적인 감정이 담긴 표현인 반면, 후자의 ‘자알한다’는 비꼬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섞인 표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감정 상태로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이를 듣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뇌과학적으로도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이 실린 말은 화자와 청자 모두의 편도체를 강하게 자극한다. 이미 설명했듯이, 편도체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뇌 부위다. 특히 감정이 동반된 외부 자극은 그렇지 않은 자극에 비해 더 쉽게,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이유는 감정 자극을 받은 편도체가 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해마를 강하게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독서 모임에서 감정을 실어 낭독하도록 장려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우리 모임에서는 회원들이 낭독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모든 낭독의 음성을 녹음했다. 이후 녹음된 목소리를 책을 보며 다시 들어 보면, 당시의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면서 독서에 대한 집중도가 눈에 띄게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